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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검찰개혁 떠내려가고, 대선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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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라임 주범의 손편지 공개..윤석열에 대한 공격 내용 담겨 #법무부 '윤석열 겨냥'수사방침..윤석열 '중상모략' 반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뉴시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뉴시스]

1.

마침내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일요일인 18일 정면충돌했습니다.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주범격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공개한 옥중편지 때문입니다. 옥중편지는 16일 서울신문에 공개됐습니다.
5페이지의 손편지인데, 내용은 한 마디로 윤석열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2.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A변호사 소개로) 윤석열과 가까운 검사를 룸살롱에서 접대했는데, 나중에 진짜로 라임 수사팀 책임자가 되더라.
-(A변호사가) 수사 책임자와 얘기 끝났다. 윤석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을 잡아달라. 그러면 윤석열에 보고해 보석으로 풀려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강기정에 5000만원 주었다고 거짓말했다는 취지)

-야당 정치인에게 수억원 돈 주었다는 얘기했는데 수사도 안하더라. 반면 여당 의원에게 돈 준 액수(250만원)가 작다며 부풀리게 하더라.

-언론의 카더라식 토끼몰이와 검찰의 짜맞추기식 수사를 직접 경험하면서, 검찰개혁은 분명히 이뤄져야한다 생각했다. 추미애 법무장관 사태를 보면서 내 사건을 지켜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모든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본인은 라임 사태 전주이거나 몸통이 절대 아님.

3.

옥중편지 바람에 주말이 분주했습니다.
추미애 장관은 당장 감찰을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가 18일 법무부 발표문입니다.

‘김봉현을 직접 감찰조사했다. 의혹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김봉현의 얘기가 맞다는 뉘앙스입니다.
구체적으로 윤석열 총장을 겨냥해 ‘야권 정치인과 검사 비위 사실을 보고받고도, 여권인사와 달리 철저 수사를 지휘하지 않은 의혹 등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총장이 여당은 철저수사하라고 지시하면서 야당과 검사는 봐주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법무부는 ‘별도의 수사주체와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봉현이 폭로한 비리를 따로 수사하겠다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윤석열이 수사대상에 포함되겠죠.

4.

윤석열 총장은 법무부 발표가 나오자 마자 반박했습니다.
대검찰청 명의 입장문에서 ‘총장에 대한 중상모략’이라고 받아쳤습니다.
동시에 총장이 직접 언론과의 통화에서 ‘턱도 없는 이야기’라며 적극 부인했습니다. 총장이 언론의 취재요청에 직접 실명으로 응답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그만큼 화가 났고, 사태가 급박하다는 의미입니다.
윤석열 입장에서 볼 때, 지금까지는 주변을 압박해온 국면이라면 이번엔 직접 본인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위기감을 느낄 겁니다.

5.

이런 과정에서 법무부의 반응은 상당히 비정상적입니다.

첫째, 이렇게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김봉현의 편지가 나오자마자 이틀만에 검찰총장을 수사하겠다고 나서는 속도감. 검찰총장보다 사기꾼을 더 믿는 느낌입니다.

김봉현은 편지에서 ‘추미애 장관에 대한 동병상련’이 폭로의 배경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검찰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추미애의 목소리를 냅니다.
편지의 말미는 ‘본인은 라임사태의 몸통이 아님’입니다. 추 장관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는 처벌을 모면하기위해 뭐든 해야할 처지의 범죄혐의자니까요.

6.

둘째, 김봉현이 주장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매우 중대한 문제인만큼, 사실관계를 엄중히 따져보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그런데 수사권은 검찰이 가지고 있습니다. 총장은 관련된 의혹에 대한 철저수사를 이미 지시해두었습니다. 검찰은 몇차례 인사로 장관이 장악했습니다.
만약 수사가 부실하게 진행된다면 장관이 나서야겠지만, 불과 이틀만에 총장을 수사하겠다고 먼저 나선 모습이 너무 성급합니다.

그래서 야당에선 벌써 ‘시나리오 냄새가 난다’며 특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7.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추미애 장관은 지휘권을 발동해 별도의 수사기구를 꾸릴 겁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총장이 동의하거나 요청하는 형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입장에선 거부하기 힘든 모양새입니다. 자신이 비리 혐의자인데 수사를 거부하는 건 명분이 없습니다.

윤석열이 별도 수사팀에 동의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겁니다.
이미 추미애 장관은 정치적으로 결론을 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지금까지 분위기로 봐서는 윤석열을 총장에서 내쫓는 것이 검찰개혁의 완결이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8.

문제는 어떤 모양새로 내쫓느냐는 것이겠죠.
윤 총장은 이미 야권의 대권후보입니다. 추미애 장관이 그렇게 키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그 싹을 자르자면 윤 총장을 불명예 퇴진시켜야 합니다. 김봉현의 편지는 그 출발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정치 안한다’‘정치감각 없다’고 해온 윤 총장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정치를 해야 하는구나’‘정권을 잡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굳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찰개혁은 떠내려가고 대선국면이 시작된 느낌입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