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서울·부산시장 보선을 앞두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당내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6일 부마항쟁 기념식장을 찾은 김 위원장의 발언이 파장을 불렀다. 당시 김 위원장은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에는 내가 생각하는 후보는 안 보인다”며 “3~4선하고 이제 재미가 없으니 시장이나 해볼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선 안 된다”고 말했다.
툭 던진 한 마디에 당 중진들은 들썩거렸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1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김종인 위원장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김병준 전 위원장은 “당에 서울·부산시장 감이 정말 없다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문을 닫아라. 무슨 낯으로 국고보조금을 받고 지도자라고 얼굴을 들고 다니느냐”고 비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경선준비위까지 만들어놓고 경선 후보들을 ‘죽여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홀로 누구를 낙점해 데려오겠다는 의지로 밖에 더 읽히겠느냐”고 주장했다.
또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에도 인물이 있다. 음악으로 말하면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잘 연주할 연주자들이 있다는 뜻”이라며 “문제는 오히려 지휘(=김종인 위원장)다. 연주자를 무시하고 홀로 박수받을 생각에 이 곡 저 곡 독주(獨奏)해 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이 사람 저 사람 줄이나 세우고 있다”며 “사람을 키우는 것도 지도자의 책무인데, 당에 사람이 없다는 ‘자해적 발언’을 앞세울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평소 김종인 위원장과 각을 세워온 3선의 장제원 의원도 김병준 전 위원장을 거들었다. 장 의원은 이날 “가는 곳마다 자해적 행동을 하니 걱정된다”며 “격려를 해도 모자랄 판에 낙선 운동을 해서야 되느냐. 당 대표가 왜 이렇게 내부 총질을 하는 지 모르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다른 중진 의원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공정한 판을 깔아줘야 할 김 위원장이, 본인의 입맛에 맞게 경선판을 좌우하려는 인상이 든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김 위원장에 대한 당 인사들의 불만이 수면 위로 오른 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김 위원장이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며 당 정강·정책을 개정했을 때, 또 ‘기업규제 3법’에 찬성하고 나섰을 때도 당내에 부정적 기류가 흘렀다. 특히 김 위원장이 강도 높은 당무 감사를 벌인데 이어, 적극적인 호남 우대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서도 일부 영남 의원들 사이에서 볼멘 소리가 터져나온다.
최근 김 위원장은 호남 출신 정양석 전 의원을 사무총장에 내정하고, 다음 총선에서 비례대표 25%(20 순번 이내)를 호남 인사로 채우는 안을 내놨다. 이에대해 당 안팎에선 “당 기반이 취약한 김 위원장이 당 장악력 높이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 영남 지역 재선 의원은 “당 외연을 넓히는 건 좋지만, 영남이나 기존 당 인사들을 구태 세력 취급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최근 북한의 공무원 총격, 옵티머스ㆍ라임 사태 등 여권에 악재가 속출하고 있지만 제1 야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은 뜨질 못하는 상황이 ‘김종인 흔들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참신한 후보를 앞세우고, 호남 등 당의 취약점을 바로 잡아야 보선은 물론 대선까지 분위기를 끌고 갈 수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판단”이라며 “경선은 룰에 따라 진행되고, 특정 후보를 낙점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반면 다른 당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그립(grip)을 강하게 쥘 때마다 당에 탈이 나고 있다. 쇄신도 좋지만 당 구성원들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생략돼 있다”고 비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