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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이 본 SF물, 미국서 리메이크…17년 만의 변신, 나도 궁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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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의 2003년 장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 신하균‧백윤식 주연으로 사회비판 메시지를 SF적 상상력과 스릴러‧코미디 감각으로 버무렸지만 개봉 당시 전국 관객 7만에 그쳐 '저주 받은 걸작'으로 불린다. [사진 네이버영화포토]

장준환 감독의 2003년 장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 신하균‧백윤식 주연으로 사회비판 메시지를 SF적 상상력과 스릴러‧코미디 감각으로 버무렸지만 개봉 당시 전국 관객 7만에 그쳐 '저주 받은 걸작'으로 불린다. [사진 네이버영화포토]

“(흥행 실패로) 이 영화에 빚진 마음이 있었는데 할리우드에서 다시 만들게 되니 스스로도 궁금하다. 미국사회 나름의 문제가 있고 전 지구적 영향을 끼치는 국가니까 그런 배경에선 어떤 이야기가 될지. 기존의 미국식 수퍼히어로물과 변별되는 지점은 분명히 있을 거다.”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하는 장준환 감독 # "미국사회 문제 담은 새로운 이야기 구성" # 춘천영화제서 디지털 리마스터링 상영도 # "SF란 제3 시선으로 우리 성찰하는 장르"

2003년 개봉 당시 전국 관객 7만명에 불과했지만 한국 SF영화사의 기념비적 ‘똘작’(똘끼 충만한 작품)으로 불리며 매니어층을 형성한 영화가 있다. 2017년 723만 관객 흥행 ‘1987’을 만든 장준환(50) 감독의 장편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다. 영화는 최근 CJ ENM이 투자‧제작하고 ‘미드소마’의 아리 에스터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아 장 감독이 직접 연출하는 식의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결정된 바 있다. 장 감독으로선 17년 만에 새로운 시대‧배경‧배우들로 SF에 도전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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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제7회 춘천영화제 ‘한국 SF의 스펙트럼’ 포럼에 참가한 장 감독을 따로 만나 소회를 물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쪽과 화상협의만 하는 단계”라면서도 “에스터 감독이 영화학도 시절부터 이 영화 팬이었다더라. 여러 장르가 섞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졌다는 데 특히 흥미를 보인다”고 말했다. 또 “리메이크 예산이 크진 않겠지만 당시에 기술적 한계로 인해 구현 못한 장면들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의 장준환 감독이 17일 강원도 춘천시 메가박스 남춘천점에서 열린 제7회 춘천영화제의 특별포럼 '한국형 SF 스펙트럼'에 참석했다. 한국형 SF의 이정표로 손꼽히는 '지구를 지켜라'는 17년 만에 장 감독이 직접 연출하는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결정돼 현재 미국 측과 제작 협의단계다. 춘천=강혜란 기자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의 장준환 감독이 17일 강원도 춘천시 메가박스 남춘천점에서 열린 제7회 춘천영화제의 특별포럼 '한국형 SF 스펙트럼'에 참석했다. 한국형 SF의 이정표로 손꼽히는 '지구를 지켜라'는 17년 만에 장 감독이 직접 연출하는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결정돼 현재 미국 측과 제작 협의단계다. 춘천=강혜란 기자

전날인 16일 메가박스 남춘천점에선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지구를 지켜라’가 17년 만에 첫 극장 상영됐다.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믿는 괴짜 병구(신하균)가 권력형 비리에 힘입어 회사를 키워온 유제화학 강만식 사장(백윤식)을 외계인이라고 믿고 납치해 벌이는 소동극이다. ‘미저리’급 감금 스릴러에다 기상천외한 고문 코미디가 뒤섞인 가운데 병구의 불우한 성장‧가정사와 탄광 및 화학공장 노동자의 산업재해 고발 등 지금 봐도 녹슬지 않은 문제의식이 빛난다. 훗날 ‘1987’로 이어지는 광주 민주화항쟁 부채의식도 70억년 지구 회고 속에 슬쩍 등장한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GV)에선 병구와 순이의 순애보 등 영화의 다채로운 측면이 활발히 논의됐다.

장준환 감독의 2003년 장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 신하균‧백윤식 주연으로 사회비판 메시지를 SF적 상상력과 스릴러‧코미디 감각으로 버무렸지만 개봉 당시 전국 관객 7만에 그쳐 '저주 받은 걸작'으로 불린다. [사진 네이버영화포토]

장준환 감독의 2003년 장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 신하균‧백윤식 주연으로 사회비판 메시지를 SF적 상상력과 스릴러‧코미디 감각으로 버무렸지만 개봉 당시 전국 관객 7만에 그쳐 '저주 받은 걸작'으로 불린다. [사진 네이버영화포토]

장준환 감독의 2003년 장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사진 네이버영화포토]

장준환 감독의 2003년 장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사진 네이버영화포토]

장 감독은 “원래 외계인을 그리려고 만든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제3의 존재에겐 어떻게 비칠지를 고민했다”면서 “찰리 채플린이 말했듯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지금 봐도 충격적인 ‘지구 폭파’ 결말에 대해선 “SF 상상력의 장난기가 30% 있던 건 사실이지만 그보단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다”면서 “병구 같은 미치광이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우리가 과연 행복할 수 있나 하는 메시지였다”고 돌아봤다.

‘지구를 지켜라’는 그때까지 ‘우뢰매’ 시리즈 등 어린이‧청소년용에 국한됐던 한국 SF장르를 한 단계 높였지만 후속 파급력은 내지 못했다. 장 감독 본인도 2010년 근미래 옴니버스 단편물로 강동원‧송혜교 주연의 ‘러브 포 세일’(2010)을 만든 걸 끝으로 SF에 손대지 않았다. 최근 MBC‧웨이브 합작의 ‘SF8’ 시리즈가 좋은 반응을 얻고 연내 우주블록버스터 ‘승리호’(감독 조성희)가 개봉하는 등 SF 트렌드가 대세로 떠오른 게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는 “우리 기술력도 늘고 SF장르팬이 늘어나는 등 변화가 쌓인 결과”라면서 “팍팍한 리얼리티 기반의 이야기들을 넘어서서 다른 장르를 즐기는 여유가 생긴 것 아닐까”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요즘은 마블 시리즈 등 수퍼히어로물 중심으로 오락적 즐거움을 주지만, 사실 SF의 핵심은 과학적인 것을 소재로 우리 자신을 성찰하기”라고 덧붙였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의 장준환 감독이 17일 강원도 춘천시 메가박스 남춘천점에서 열린 제7회 춘천영화제의 특별포럼 '한국형 SF 스펙트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춘천=강혜란 기자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의 장준환 감독이 17일 강원도 춘천시 메가박스 남춘천점에서 열린 제7회 춘천영화제의 특별포럼 '한국형 SF 스펙트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춘천=강혜란 기자

‘국내 첫 SF영화제’로 탈바꿈을 선언한 춘천영화제에선 장 감독의 아내이자 배우 문소리가 주연한 SF8 시리즈 ‘인간증명’(감독 김의석)이 90분 길이 확장판으로 독점상영되기도 했다. 신설된 경쟁부문엔 장·단편 합쳐서 175편이 출품되는 등 특히 젊은 세대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이동윤 프로그래머는 “단편 출품작 중엔 기후, 환경. 미세먼지 등 문제의식이 두드러졌다”면서 “미래가 안 보이고 답답한 코로나19 시대를 살면서 SF적 상상력을 통해 이를 극복할 힘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제는 나흘간 일정을 마치고 18일 폐막한다.

춘천=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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