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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봉사상' 만든 학부모 유죄…법조계 "정경심 불리해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아들이 하지도 않은 봉사활동 확인서를 고등학교에 제출해 봉사상을 받게 한 학부모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비슷한 혐의로 재판 중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판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시작은 2010년 11월 열린 ‘G20 청소년 발표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부모 이모씨는 자신의 고등학생 아들이 몸이 아파 대회에 출전할 수 없게 되자 다른 학생을 대신 출전시키기로 했다. 여기에는 교사 권모씨의 도움이 있었다. 대회에서 받은 우수상은 이씨 아들의 수상 실적으로 기재됐다. 권씨는 이후 “G20 발표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미래가 촉망된다”는 내용의 추천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른 학교 교사를 통해 아들이 서울의 한 병원에서 84시간의 봉사활동을 한 것처럼 기재된 가짜 확인서를 발급받았다. 이를 학교에 제출해 아들은 2010년 학교장 명의의 봉사상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이씨 아들은 경희대 한의예과에 입학했고, 이씨와 그를 도운 교사들은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유죄→2심 무죄→대법원 “다시 심사하라”

1심은 “대학 학력이 중요하게 취급되는 현실에서 그릇된 자식사랑에 기인해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 전형 자료를 제출했다”며 해당 혐의들에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이씨가 G20 발표대회와 경희대에 행한 업무방해 혐의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고교와 관련된 부분은 무죄를 선고했다. 업무 담당자가 허위의 확인서를 가볍게 믿고 불충분한 심사를 한 것이므로 이씨가 봉사상 선정 업무를 방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의 판단은 또 달랐다. 학교는 학생이 제출한 봉사활동 확인서의 내용이 진실하다는 것을 전제로 수상자를 선정할 뿐, 확인서가 위조됐음을 확인하는 것까지 심사할 의무는 없다고 봤다. 학교장은 이씨가 제출한 확인서대로 아들이 봉사활동을 했다고 착각해 수상자를 선정했고, 이씨의 행동은 학교장의 봉사상 선정 업무를 방해할 위험을 발생시켰다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2심으로 돌려보냈다.

“삐뚤어진 모정” 법원, 최순실에도 유죄 선고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최순실씨. [뉴스1]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최순실씨. [뉴스1]

대법원은 이화여대 입시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의 판례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딸 정유라씨가 서울특별시승마협회와 대한승마협회에서 봉사활동을 한 사실이 전혀 없음에도 허위의 봉사활동 확인서를 학교에 제출해 청담고 교사들의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자녀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불법과 부정을 보여주었고, 급기야 삐뚤어진 모정은 결국 자신이 아끼는 자녀마저 공범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며 최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2심 역시 “청담고 교사가 협회에 별도로 문의해 기재 내용을 다시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에서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최씨는 2018년 징역 3년이 확정됐다.

“정경심 교수에 매우 불리한 판례”

'사모펀드 및 자녀 입시비리' 등의 혐의를 받는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 [뉴스1]

'사모펀드 및 자녀 입시비리' 등의 혐의를 받는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 [뉴스1]

이는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혐의와도 유사하다. 정 교수는 딸의 동양대 표창장과 영어영재교육원 봉사활동 확인서 등을 위조해 입시에 활용했고, 대학들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정 교수 측은 정상적으로 발급받은 문서라는 입장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정 교수 재판부도 대법원의 판례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만약 재판부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 교수가 허위의 서류를 대학교 입시에 활용했고, 딸의 합격까지 이어졌다고 본다면 충분히 업무 방해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현직 검사는 “정 교수에게 매우 불리한 판례인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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