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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자본을 마주하는 전위적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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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중국 전위미술의 역사는 공권력과의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9년 별들(인민)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싱싱(星星)화전’이 열리고 마오쩌둥을 풍자한 작품들이 관객을 끌자 공안국은 전시를 폐쇄했다. 10년 후에도 상황은 계속됐다. 1989년 ‘중국 현대예술전’에서 두 발의 권총을 발사하는 행위예술이 펼쳐지자 전시는 개막 당일 중단됐고, 미술관을 폭파시키겠다는 투서가 이어지자 보름 만에 막을 내렸다. 척박했던 1980~90년대 미술을 이끌어 온 주신스(朱金石)와 송동(宋冬), 2000년대를 대표하는 류웨이(劉韡) 3인으로 구성된 부산시립미술관의 ‘상흔을 넘어’전(~2021.2.28)에서 우리는 중국 전위미술의 생존방식과 마주하게 된다.   

1989년 천안문 사태 후 미술관 전시를 금지당하자 주신스는 자신의 아파트에, 구겼다 펴기를 수십 번 반복한 화선지를 쌓아 올려 전시한 후 이를 불태워버렸다. ‘무상’이란 제목의 설치작품은 서양의 ‘프로세스 아트’와 닮았으나 ‘가장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大象無形)’는 도덕경의 철학과도 닿아 있다.

류웨이, 단지 실수일 뿐 II - 6, 2009, 531x160x375㎝, 목재·아크릴·철.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류웨이, 단지 실수일 뿐 II - 6, 2009, 531x160x375㎝, 목재·아크릴·철.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송동은 겨울 밤 천안문 광장에 배를 깔고 누워 바닥에 살얼음이 생길 때까지 40분간 입김을 불어넣었고 해가 뜨자 얼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송동의 고독한 행위는 천안문 사태 후의 심리적 실어상태를 치유하기 위한 종교의식과도 같았다. 사진으로 남은 이들의 작업은 상업화로 물들기 이전 순수한 전위정신을 보여준다.

2000년대가 되면 작가들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비엔날레를 통해 국제무대에 성공적으로 입성한다. ‘포스트 마오 세대’의 대표주자 류웨이는 북경의 대규모 철거로 생긴 창틀, 문짝을 나사와 경첩으로 조립해 고딕 성당을 연상시키는 ‘성전’으로 재탄생시켰다(사진). ‘현재의 물질문명은 과거의 파괴와 폐허를 담보로 한다’는 발터 벤야민의 개념을 구현한 듯한 ‘단지 실수일 뿐’ 연작은 작가가 고용한 수십 명의 팀원(농민)들에 의해 완성됐다. 지적능력과 육체노동이 철저히 분리된 류웨이의 작업방식은 서구의 어떤 작가보다도 자본주의적이다.

북경올림픽을 전후해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한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인식한 정부의 너그러워진 정책 탓에 중국 현대미술가들은 서구 미술시장의 가장 흡인력 있는 작가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국내 활동에 대한 여전한 감시는 2009년 ‘중국현대예술전 30주년기념전’이 정부에 의해 강제 취소된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다. 작가가 허용된 전위정신이라는 모순된 틀 안에서 작업하는 한, 정부와 현대미술의 밀월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상흔을 넘어’전은 역사를 견뎌 낸 미술의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본과 전위의 경계에 선 21세기 중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