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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던 김정은이 세번 웃었다, '괴물 ICBM' 외 또다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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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주석단에 올랐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수차례 웃음을 터뜨렸다. 앞서 눈물을 훔쳤던 연설과 달리 군부대가 행진을 시작하자 돌변했다. 이날 북한은 신형 전략무기를 대거 공개했다.

[박용한 배틀그라운드]

북한 주민 앞에서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던 김 위원장을 웃게 한 결정적인 세 번의 순간이 있다. 기존보다 크기가 커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ㆍ수중발사탄도미사일(SLBM), 지난해 집중적으로 시험 발사했던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가 등장할 때였다.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열병식 행사 초반 연설 도중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군 병력과 무기가 행진을 시작하자 표정을 바꿔 파안대소를 이어갔다. [조선중앙TV 캡처=뉴시스]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열병식 행사 초반 연설 도중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군 병력과 무기가 행진을 시작하자 표정을 바꿔 파안대소를 이어갔다. [조선중앙TV 캡처=뉴시스]

열병식 장내 아나운서는 ICBM을 이끈 부대가 등장하자 “열병식의 최절정”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조선의 힘을 보여주는 시간”이라며 자부심도 드러냈다. 이날의 초점은 열병식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신형 ICBM에 쏠렸다. 이날 처음 공개된 미사일로, 기존 화성-15형(사거리 1만3000㎞, 탄두 중량 1t)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북한은 열병식에서 신형 ICBM의 구체적인 능력은 드러내지 않았다. “김정식 상장이 지금 거대한 전략 무력을 이끌고 김일성 광장을 통과해 나갑니다”라고 설명했을 뿐, 명칭이나 세세한 설명은 아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외형에서 몇 가지 추정은 가능했다. 북한 말대로 ‘거대한’ 무기였다.

10일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한 신형 ICBM은 화성-15형이 실렸던 9축(18바퀴) 이동식 발사차량(TEL)보다 길어진 11축(바퀴 22개)에 실렸다. 북한은 신형 ICBM을 열병식 마지막 순서에 공개했다. [노동신문=뉴스1]

10일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한 신형 ICBM은 화성-15형이 실렸던 9축(18바퀴) 이동식 발사차량(TEL)보다 길어진 11축(바퀴 22개)에 실렸다. 북한은 신형 ICBM을 열병식 마지막 순서에 공개했다. [노동신문=뉴스1]

신형 ICBM은 기존 화성-15형과 비교해 길이는 21m에서 24m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직경도 다소 늘어 2m 수준으로 평가된다. 미사일과 함께 처음 등장한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 차량도 커졌다. 기존 9축(18개) 바퀴는 11축(22개)으로 늘었다.

미사일 엔진이 커져 탑재할 수 있는 탄두 중량도 무거워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미사일 크기를 늘린 목적은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신형 ICBM 무게를 기존 화성-15형(60t)에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100t 전후로 추정한다.

울던 김정은도 웃게 한 북한의 신형 전략무기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경축하는 군중시위가 진행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름을 펼친 가운데 인공기와 노동당기가 등장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경축하는 군중시위가 진행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름을 펼친 가운데 인공기와 노동당기가 등장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신형 ICBM은 탄두 무게를 늘려 탄두 내부에 ‘다탄두 미사일(MIRV)’ 탑재를 시도했다는 추정이 나온다. 탄두를 여러 개 탑재하면 동시에 다양한 목표를 개별적으로 공격하게 된다. 이를 막아내는 요격 미사일이 격추에 성공할 확률은 크게 떨어진다.

물론 이번에 공개된 신형 ICBM이 다탄두 미사일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의문만 커진 상태다. 북한이 탄두 내부를 공개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2~3개 이상의 탄두를 탑재하는 기술을 어느 정도 발전시켰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10일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병 부대 행진을 보며 웃음을 보였고 옆에 있던 이병철 당중앙 군사위 부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10일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병 부대 행진을 보며 웃음을 보였고 옆에 있던 이병철 당중앙 군사위 부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북한이 거대한 미사일을 TEL에 싣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정된 지상 시설에 보관할 경우 선제공격을 받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촘촘한 감시망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 기습공격 하겠다는 전략의 결과다.

물론 차량에 탑재했지만 한계도 여전하다. 열병식을 앞두고 일각에서 우려했던 고체 연료 방식은 아직 적용 못 한 것으로 보인다. 고체연료는 액체연료보다 발사 준비시간이 짧아 사전 징후 포착이 더 어렵다.

신형 ICBM은 기본적으로 바로 앞 차례에 등장한 화성-15형과 유사하다. 핵심적인 기술은 화성-15형 시험 발사로 이미 입증됐다. 그런 점에서 화성-15형이 갖는 의미가 중요하다. 이날 열병식에서 아나운서는 화성-15형이 등장할 때 “세계 최강 절대병기, 우리의 대륙간탄도로케트 종대”라며 한 컷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일성 ‘시작’, 김정일 ‘본격’, 김정은 ‘완성’ 

화성-15형은 이미 3년 전에 완성됐다. 이날도 “적들을 공포와 전율로 몰아넣었던 역사적인 2017년 11월 29일”이라며 2017년의 시험 발사를 강조했다. 북한 당국이 ‘11월 대사변’이라고 평가하는 그 날이다. 북한은 화성-15형 시험 발사 성공으로 그토록 원하던 핵무기 능력이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췄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화성-15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화성-15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핵무기는 폭발 시험에 성공하더라도 이를 멀리 날려 보내는 미사일 기술까지 완성해야 전략무기로 쓰일 수 있다. 화성-15형의 최대 사거리는 1만3000㎞ 수준으로, 미 본토 전역이 사정권이다. 미국 플로리다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별장까지도 표적에 들어온다. 김 위원장이 북ㆍ미 핵 협상을 앞두고 ‘핵 버튼’을 과시한 배경이다.

북한 내부에선 ICBM의 성공은 김 위원장의 성공이기도 했다. 화성-15형 성공의 핵심은 2017년 3월 실험했던 ‘백두산’ 신형 엔진 덕분이다. 김 위원장은 엔진 개발 현장을 직접 찾아 개발자를 지원하고 독려했다. 엔진 분사 시험에 성공했을 때는 개발자들을 업어주며 ‘3ㆍ19혁명’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10일 열병식에 화성-12형 미사일도 등장했다. [노동신문=뉴스1]

10일 열병식에 화성-12형 미사일도 등장했다. [노동신문=뉴스1]

이날 열병식에는 화성-12형도 함께 등장했다. 화성-12형도 전략무기로서 그 능력은 충분하다. 2017년 4월 처음 시험 발사했는데 최대 사거리가 8000㎞ 안팎이어서 미 알래스카를 공격할 수 있다.

북한은 화성-12형이 등장할 때 김일성 광장에 걸린 ‘김일성ㆍ김정일’ 대형 초상화를 확대해서 보여줬다. 김일성 집권기인 1980년대부터 시작된 미사일 개발, 1990~2000년대 김정일 집권기에 본격화한 핵·미사일 개발, 2010년 이후 김정은 집권기에 완성된 전략무기를 과시하는 순간이다.

신형 SLBM 등장, 바다에 숨어 쏘는 핵미사일 

북한의 전략무기는 단순히 사거리만 늘리는 방향으로 고도화하는 게 아니라서 더 큰 위협이다. 열병식에서 “세계 최강의 병기, 수중전략 탄도탄”이라며 소개한 신형 SLBM인 북극성-4형은 이미 개발에 성공한 북극성-3형을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

10일 열병식에서 북한은 신형 SLBM '북극성-4ㅅ'을 처음 공개했다. [노동신문=뉴스1]

10일 열병식에서 북한은 신형 SLBM '북극성-4ㅅ'을 처음 공개했다. [노동신문=뉴스1]

북극성-3형은 지난해 10월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SLBM은 액체추진 연료가 아닌 고체연료를 사용했다. 원통형 발사대에서 밀어내는 콜드런칭 방식으로 발사된 후 자세를 수정한다. 연료 주입 시간이 필요 없어 빠르게 발사할 수 있다.

잠수함이 수면 가까이 올라와 언제라도 쏠 수 있어 매우 위협적이다. 여기에 핵무기도 실어 쏠 수 있다. 북한 매체는 북극성-3형이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며 전 세계 어디라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했다.

이날 처음 공개된 ‘북극성-4ㅅ’은 진수가 임박했다고 추정되는 3000t급 잠수함(로미오급 개량형) 또는 새롭게 개발 중인 신형 잠수함(4000~5000t급)에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크기는 기존 북극성-3형(사거리 3000~4000㎞)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2019년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 열렸다. 이날 열병식에는 중국 094A형 핵잠수함에 탑재하는 SLBM 쥐랑(JL)-2가 등장했다. [연합뉴스]

2019년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 열렸다. 이날 열병식에는 중국 094A형 핵잠수함에 탑재하는 SLBM 쥐랑(JL)-2가 등장했다. [연합뉴스]

권용수 전 국방대학교 교수는 “중국의 다탄두 SLBM JL-2(쥐랑-2, 사거리 7000~8000㎞)와 유사해 보인다”면서도 “크기가 북극성-3형과 비슷하다면 쥐랑-2와 달리 전략적 목표는 미국령 괌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사일 길이가 북극성-4형(10m)은 쥐랑-2(13m)보다 짧기 때문에 최대 비행거리도 그만큼 줄어든다.

신형 SLBM 개발 조짐은 이미 오래전에 드러났다. 북한 매체는 2017년 8월 23일 김 위원장이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방문한 소식을 전하면서 북극성-3형 도면이 드러난 사진을 공개했다.

10일 열병식에선 북극성 계열 중 지상에서 발사하는 북극성-2형도 등장했다. [노동신문=뉴스]

10일 열병식에선 북극성 계열 중 지상에서 발사하는 북극성-2형도 등장했다. [노동신문=뉴스]

이날 열병식에선 북극성-2형도 등장했다. 북극성 미사일의 지상 발사형으로 궤도형 TEL에 장착했다. 바퀴가 아닌 궤도형 차량이라 산악 지형에도 은밀하게 숨을 수 있다. 지상에서도 즉각적인 공격능력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노동신문은 2017년 2월 “새로운 전략 무기체계인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전략탄도탄 ‘북극성-2형’ 시험 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북한은 그해 4월 5일에는 한 번 더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급소 타격” 신형 단거리 3종 최초 공개 

10일 열병식에선 북한이 지난해 시험 발사에 집중했던 신형 단거리 미사일도 대거 등장했다. 열병식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다. [노동신문=뉴스1]

10일 열병식에선 북한이 지난해 시험 발사에 집중했던 신형 단거리 미사일도 대거 등장했다. 열병식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은 “적의 급소를 타격”한다며 지난해 시험 발사에 집중했던 ‘신형 단거리 무기 3종 세트’도 공개했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며 TEL에서 발사할 수 있다.

신형 전술 지대지미사일은 한국군 전술 미사일 시스템(ATACMS)과 형상이 유사하다. ATACMS는 신속 재장전이 가능하고, 탑재 탄두 중량이 큰 특징을 가진다.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러시아 ‘이스칸데르’와 닮아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린다. 종말 단계에서 회피 기동이 가능해 요격이 어렵다.

10일 열병식에선 신형 단거리 미사일도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유사한 형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공개했다. [노동신문=뉴스1]

10일 열병식에선 신형 단거리 미사일도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유사한 형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공개했다. [노동신문=뉴스1]

열병식에서 아나운서는 방사포가 등장하자 “주체화 현대화로 강위력한 공격형 타격집단”으로 설명했다. 이날 모습을 드러낸 초대형 방사포는 400㎜ 이상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지난해 8월 25일 함남 선덕에서 발사한 발사체를 두고 ‘초대형 방사포’라고 지칭했다.

10일 열병식에선 최근 개발에 성공한 신형 방사포를 대거 등장시켰다. [노동신문=뉴스1]

10일 열병식에선 최근 개발에 성공한 신형 방사포를 대거 등장시켰다.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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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포는 한국군의 다연장로켓과 같다. 발사관 여러 개를 묶어 로켓 여러 발을 짧은 시간에 쏟아낸다. 북한은 이미 사거리가 늘어난 300㎜ 방사포를 실전에 배치했다. 2000년대 이후 사거리를 늘리고 유도 기능을 탑재해 명중률을 높였다. 로켓이지만 미사일처럼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는 사거리가 늘고 정밀도가 높아져 한국군 지휘 시설과 공군 기지를 타격할 목적으로 배치됐다고 분석된다. 북한이 ‘눈에 박힌 가시’처럼 여기는 공군 스텔스 전투기 F-35A 출격기지가 위치한 중부권까지 공격 범위가 늘어났다.

이날 김 위원장이 시종일관 ‘파안대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차고 넘친다. 한국군의 근심은 더 무거워졌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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