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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종전선언·비핵화 따로 놀 수 없다는 건 상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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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호 04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5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청사에서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5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청사에서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미국을 방문 중인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5일(현지시간) “종전선언에 대해 한·미 간에 다른 생각은 없다”며 “종전선언과 비핵화가 따로 놀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서 실장은 이날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30여 분간 면담한 뒤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면담 #“한·미 양국 간에 다른 생각 없다” #방위비 분담금은 원칙론 재확인 #SCM 성명에 ‘주한미군 유지’ 빠져 #미 하원 “실망스럽다” 우려 목소리

서 실장은 “굳건한 한·미 동맹이 얼마나 깊이 있게 잘 관리되고 있는지 서로 공감하고 확인했다”며 “북한 열병식 이후 한반도 정세에 대한 평가도 공유했고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지 등 양국 현안에 대해서도 폭넓고 생산적인 얘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지난 13일 방미한 서 실장은 지난 14일엔 카운터파트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났다.

서 실장의 이번 방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촉구한 뒤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모았다. 이에 대해 서 실장은 “(종전선언에 대해) 특별히 깊이 있게 얘기하진 않았다. 종전선언 문제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면서도 “항상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던 문제라 한·미 간에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 정치권과 외교가에서는 그동안 종전선언이 언급될 때마다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된 것인지, 아니면 아무 조건 없이 별도의 선언으로 추진되는 것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 서 실장은 “종전선언은 비핵화 과정에서 선후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또는 비핵화와의 결합 정도가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일 뿐 비핵화와 따로 놀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며 “너무 과다한 해석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서 실장은 한·미 현안 중 하나인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대해서는 “이번 만남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며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합리적으로, 또 상호 수용 가능한 선에서 타결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4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거론하며 “미국의 납세자들이 불공평하게 돈을 더 낼 수는 없다”고 압박한 데 대해 그동안 유지해온 원칙론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발언 수위를 조절한 셈이다.

그는 이어 ‘남북관계를 한·미 동맹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해나갈 방침이냐’는 질문에 “남북관계는 단순히 남북만의 관계라고 할 수 없다”며 “모든 것들이 미국과 주변국들과 서로 논의하고 협의하면서 진행할 문제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다”고 답했다. 이번 방미가 SCM 일정과 겹친 데 대해서는 “공교롭게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 가운데 미 의회에서는 SCM 공동 성명에서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 문구가 빠진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 하원 군사위원회 민주당 대변인은 15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서 “이번 SCM 논의가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 규모에 대한 명확성을 제공하는 기회가 되지 않아 실망스럽고 우려된다”고 밝혔다. 미 하원 군사위원장이 민주당 소속인 애덤 스미스 하원의원이란 점에서 이 발언은 위원장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변인은 “북한이 국제 안보에 중대한 위협으로 남아 있어 유능하고 지속적인 억제 태세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주한미군 유지에 관한 미국의 입장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스미스 위원장 등 미 상·하원 외교위와 군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 4명은 지난 9일 에스퍼 국방장관에게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 입장을 이번 SCM 공동성명을 통해 재확인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런 만큼 SCM 이후 미 하원 군사위에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온 것은 해당 요구가 묵살된 데 대한 공개 유감 표현으로 해석된다.

미 의회 차원에서 주한미군 감축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대변인은 “주한미군 병력의 임의적 감축은 국가 안보를 훼손하고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공약 확인 노력을 약화시킬 뿐”이라며 “미 의회는 초당적으로 이런 임의적 접근 방식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 상원과 하원이 지난 7월 2021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주한미군을 현 수준(2만8000명) 이하로 감축하는 데 대해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놓은 점을 언급한 것이다.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동맹국들의 안보를 저해하지 않으며 ▶동맹국들과 협의한 경우 등 국방수권법에서 명시해 놓은 감축 조건을 방패 삼아 트럼프 행정부의 독단을 막겠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미 중앙정보국(CIA) 북한분석관을 지낸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VOA에서 “공동 성명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알 수 없지만 2만8500명이라는 주한미군 규모는 전임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공약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압박하기 위해 미국 측이 의도적으로 ‘주한미군 규모 유지’라는 문구를 공동 성명에 반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주한미군 감축이 예상보다 빨리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에스퍼 국방장관이 미군의 역내 재배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만큼 주한미군 감축을 실제 선택지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서울=이근평 기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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