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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대입 공정성에 목숨 건 정부는 본 적이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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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호 31면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상식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거야 흔한 일 중 하나다. 그런데도 거기에 안주했던 나의 게으름이라니. 요 몇 주 동안 나는 또다시 ‘상식의 배신’을 마주해야 했다. 요즘 내가 맡은 대학평가원에서 요 몇 달 동안 해왔던 대학 공정성에 대한 스터디를 마무리하면서였다.〈중앙sunday 10월 17~18일자 1, 6, 7면〉

수능 전형 늘리면 더 공정해진다는 #정부 생각은 순진함인가 무지인가 #대입시장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계층의 대물림 끊을 방도 찾아야

지난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국감에서 대학입시의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수능 중심 정시전형을 확대한다는 게 골자다. 올 상반기 조국 패밀리의 입시부정 논란이 번지던 중 문재인 대통령이 전격 발표했던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다. 유 장관은 이 방안이 공정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야무지게 믿는 듯 보였다. 여론도 비교적 호의적이다. 과학적 증거는 없는데 왠지 더 공정해 보이는 모양이다.

나도 대입 전형 방식에 따른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던 것으로 봐서 그런 상식에 편승해 있었던 모양이다. 다양한 변수를 넣어 시뮬레이션해보았지만 수능은 고소득 계층에 언제나 더 유리했다. 고소득 계층에 가장 유리한 것은 여기에 논술 전형을 더 넣는 것이었다. 그나마 저소득층에게 가장 유리한 전형은 내신 전형이었다. 그렇다고 전세를 역전시킬 만큼 유리한 건 아니다. 그저 약간 더 유리하다는 얘기다. 이미 입시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어떤 경우에도 소득 계층이 높은 가정 출신 학생이 더 유리하다. 졸업 후 좀 더 고소득 직업을 얻는 데 유리한 소위 명문대의 경우 상위 소득 계층 학생들이 서너 배 정도 더 많다. 저소득층일수록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는 얘기다.

우리는 흔히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옛날 과거시험 치르듯 대대적인 시험을 치르고, 그 시험 성적에 따라 줄을 세운 뒤 높은 성적순으로 포상하듯 명문대에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잘 되는 게 당연하고, 성적이 좀 떨어지는 학생이 명문대학에 가는 건 오히려 불공정하다는 생각. 부잣집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면 그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건 당연하다고 보는 시각은 안정적인 지지를 받는다.

선데이 칼럼 10/17

선데이 칼럼 10/17

그런데 이런 통계가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월평균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53만9000원, 200만원 미만 가구는 10만4000원이었다. 5배가 넘는 차이다. 입시제도의 복잡성을 소위 ‘과외발’로 뚫을 수 있는 계층과 뚫기 힘든 계층의 차이는 이렇게 확 벌어진다. 이런데도 학생 서열을 매겨 줄 세워 대학에 들여보내는 게 과연 공정한 것일까.

우리가 공정사회에 기대하는 것은 개인이 타고난 운(運)이 일생을 좌우하지 않도록 관리해주는 것이다.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부모, 가정환경, 지역, 성별 같은 운이 결정적 장애로 작용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공정사회의 과제다. 이를 관리하지 않으면 출발선의 격차가 일생의 격차로 고착된다. 이는 평등사회, 민주사회가 아니다. 전형적인 신분사회, 차별사회의 모습이다.

내 어린 시절은 전형적인 남녀 차별 사회였다. 요즘 여학생 성적이 우수하고 SKY대에 입학 비율이 늘어나는 걸 보며, 남녀차별 없이 키우는 양육 태도가 여성들의 능력치를 끌어올렸다고들 말한다. 물론 그런 요인도 있을 거다. 하지만 과거 우리 세대엔 진짜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이 대학에 안 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능력치가 낮아 보였다. 당시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은 상업고등학교에 갔다. 그들이 다 빠져줬기 때문에 SKY대가 남성들로 꽉 찰 수 있었던 거다. 그들이 금융권과 종합상사 등에서 복잡하고 자잘한 업무의 뒤치다꺼리를 다 했기에 지금 우리나라 경제성장도 가능했다. 물론 이렇게 국가적으로는 이득을 봤다. 그런데 우수한 여학생들이 SKY대로 갔다면 그보다 나라에 덜 보탬이 됐을까.

요즘 진보 진영에선 학벌 프리미엄을 해체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적으로는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을 대안이라며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나 어디에서 무엇을 배웠느냐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냥 세상은 개인의 능력보다 제도권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로 더 평가하고, 그로 인해 어떤 일을 수월하게 시작할 수도 있고 진입기회조차 얻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대입 공정성이 중요한 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사회에서 그나마 청년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는 공간이 대학이어서이다.

우리가 대학에 기대하는 것은 타고난 격차를 메워주고, 잡아당겨 끌어올려 주는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의 소위 명문대학은 계층을 재생산하는 ‘신분사회의 시녀’ 같은 역할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학 스스로 이를 개혁하려는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교육 당국은 해마다 대학입시의 ‘공정성 코스프레’를 벌이며 어물쩍 넘어간다. 물론 입으로는 공정을 외치며 열변을 토하는 정치인이든 정부든 정말 공정을 위해 목숨 거는 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대입 공정성을 말하려면 최소한 과학적이고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입시제도의 공정성 자체를 평가하고 계산하는 척이라도 하는 성의는 보여야 한다. 수능이냐 내신이냐 비율만 놓고 만지작거리며 전형 방법의 복잡성만 재생산하면서 할 일 다 한 양 생각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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