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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제3세계 여성 지원…‘민족을 품고 세계로’ 갈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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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호 11면

창학 100주년 덕성학원 안병우 이사장

안병우 이사장이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내 운현궁 양관 앞에 섰다. 양관은 1984년까지 덕성여대 본 캠퍼스로 활용됐다. 김경빈 기자

안병우 이사장이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내 운현궁 양관 앞에 섰다. 양관은 1984년까지 덕성여대 본 캠퍼스로 활용됐다. 김경빈 기자

“전 조선 1000만 여성이여, 다 내게로 오라.”

독립운동가 차미리사 야학 모태 #3·1운동 계승, 여성 교육 출발점 #정원 14% 감축, 점진적 구조개혁 #인격·덕성 갖춘 인재 육성 방침

근대 신여성 1세대였던 차미리사 선생은 대부분 문맹이었던 조선의 부녀자들에게 “공부하라” 외쳤다. 여성이 교육을 받아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인정받을 수 있고, 민족의 자주 독립도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미국에서 유학 후 고국으로 돌아와 배화학당 교사로 일하던 차미리사는 독립운동의 물결에 동참해 여성 계몽운동에 나섰다. 1920년 4월 19일 차미리사가 창설한 조선여자교육회 산하 부인야학강습소는 지금의 덕성여대로 이어져 내려온 여성교육의 출발점이었다. 올해는 창학 100년이 되는 해다.

운현궁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서울 덕성여대 종로캠퍼스에서 학교법인 덕성학원의 안병우 이사장을 만났다. 안 이사장은 2012년부터 덕성학원 이사를 지내다 지난해 제14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 한국기록학회 회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신대 명예교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안 이사장은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출범한 유일한 민족사학, 조선 여성의 힘으로 세운 여성교육기관이라는 자부심을 덕성학원은 가지고 있다”면서 “새로운 100년을 맞아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교육의 가치를 세계와 공유한다는 비전을 세웠다”고 말했다. 1923년 근화학원에서 1938년 덕성학원으로 이름을 바꾼 법인은 현재 운현유치원과 운현초, 덕성여중·고, 덕성여대를 운영하고 있다.

차미리사 선생은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제대로 평가하게 된 건 약 20년 전이다.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의 연구로 차미리사 선생이 독립운동에 기여한 사실이 밝혀지고 2002년에서야 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차 선생은 선각자였다. 그가 설립한 조선여자교육회는 남성 중심 엘리트 교육이 아닌 대중적 여성 교육을 지향했다. 주 교육 대상은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평범한 여성들, 특히 결혼한 부녀자들이었다. 부인야학강습소는 학생 18명으로 시작해 1년 만에 17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귀밑머리 여학생부터 쪽진머리 부인, 소박데기 구식여성까지’ 다녔다고 한다. 이후 정규학교인 근화여학교로 승격됐고, 1930년에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 수업을 듣는 여성들을 위해 근화유치원도 열었다. 지금으로 보면 직장어린이집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격변 속에서 학교도 부침이 있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근화여학교 학생 20명이 앞장서서 참여하다 경찰에 끌려갔다. 이들은 최근 독립유공자로 모두 인정받았다. 조선총독부의 압력으로 교명이 ‘근화’에서 ‘덕성’으로 바뀌었고 차미리사 선생은 교장직에서 물러났다. 송금선 교장이 자리를 이어받아 덕성여자초급대학의 인가를 받았다. 한국전쟁 중에는 피난지인 부산 용두동에서 수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는 학과를 늘려나갔고 캠퍼스도 확장했다. 그러나 송 교장의 아들 박원국 이사장은 자의적 재단 운영으로 학내 갈등을 일으켰고, 교육부가 임시이사를 파견하기도 했다. 8년 전부터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현재는 완전히 정상화했다. 대학의 자율성도 최대한 존중하고 있다.”
덕성여대는 재작년 구조조정 대학에 이름을 올렸다.
“원래부터 규모가 작았던 터라 그동안 정부가 정원감축을 전제로 실시한 여러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최근 2년 동안 정원을 14% 감축하며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올해는 신입생을 단과대학 단위로 통합 선발했다. 1학년 때는 다양한 전공 기초와 교양과정을 이수하고 2학년에 올라갈 때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학생들의 선호에 따라 점진적인 구조 개혁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대학가는 비대면 수업에 따른 등록금 인하 논란이 시끄럽다.
“우리는 비교적 갈등이 크지 않았지만 선제적으로 등록금 일부 반환을 결정했다. 모든 재학생에게 수업료의 4%에 해당하는 약 7억5000만원의 특별장학금을 지급했다.”
미래 교육에 대비한 덕성의 지향점이 있다면.
“융·복합 체계 속에서 협업과 배려심 등 전통적 의미의 인격과 덕성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한국인이자 세계인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덕성여중·고 학생들에게는 프랑스·독일·일본 방문과 백두산 순례 등을 매년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100년을 위한 계획은 무엇인가.
“이제 나라는 독립됐고 여성교육은 대중화됐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여성들이 많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100년을 맞은 덕성의 슬로건은 ‘민족을 품고 세계로’다. 차미리사 선생의 뜻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북녘 동포와 제 3세계 여성들에 대한 지원과 교류가 필요하다. 조선의 유학생 한 명이 고국에서 100년 갈 학교를 세웠듯,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어떤 일을 해낼지 모르는 일이다. 또 미래 바이오산업의 핵심인재 양성을 위한 약대 6년제 전환 등 덕성여대의 르네상스를 위한 노력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

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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