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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悚懼〈송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07호 31면

한자세상 10/17

한자세상 10/17

상(商)나라 승상이 하인에게 시장을 둘러보라 한 뒤 물었다. “시장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무언가는 보았을 것이다.” “시장 남문밖에 소가 끄는 수레가 많아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그래, 지금 물은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말라.”

승상은 시장 관리인(市吏)을 불러 야단쳤다. “시장 문밖에 쇠똥이 왜 그렇게 많은가?” 시장 관리인은 승상의 통찰에 놀랐다. 이에 자기 직무를 두려워했다(乃悚懼其所也).

전국시대 법가 사상을 정리한 『한비자(韓非子)』에 실린 ‘송구(悚懼)’의 용례다. 암행 용인술을 말했다.

두려워할 송(悚)은 마음(忄)이 묶인 듯(束) 결박(結縛)당해 두렵다는 뜻이다. 죄를 지으면 두려워 죄송(罪悚)하고, 분에 넘치도록 고마우면 황송(惶悚)한 법이다. 끔찍한 일을 당해 털이 마치 뼈처럼 굳은 듯 곤두서면 모골송연(毛骨悚然)하다.

두려울 구(懼)는 마음(忄)이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며 보는(瞿·볼 구) 심정이다. 볼 구(瞿)는 두 눈(目·目)이 새(隹·새 추)처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다. 놀란 새가슴 마냥 두려운 일이나 위기에 닥치면 벌벌 떨며 공구(恐懼)·위구(危懼)하게 된다.

‘송구’의 용례는 ‘천자문(千字文)’에도 보인다. “이마를 땅에 대어 거듭 절하되, 두렵고 두려워 거듭 두려워해야 한다”는 ‘계상재배 송구공황(稽顙再拜 悚懼恐惶)’이다. 조상을 두려워하고 섬기라는 유가 논리다.

송구의 전고(典故)를 살핀 건 마치 유행어처럼 “송구”를 말하는 정치인이 늘어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이달 초 “경위를 떠나서 매우 송구스럽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정부로서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라 했다. 앞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국회에서 “송구”를 한 차례 말했다. 송구한 정치인으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으뜸이다. 지난해 인사청문회 속기록은 “송구”를 아홉 차례 적었다. 16번 “죄송”했고, “성찰(省察)”도 두 번 말했다.

국립국어원은 “송구하다”를 “미안·죄송하다”로 순화했다. “사죄와 사과, 죄송·미안·송구가 비슷한 개념”이라며 “사과보다는 사죄가, 미안보다 죄송(송구)이 좀 더 무거운 개념”이라고 정리했다. 정말 마음이 두려울 때 “송구”를 입에 올려야 할 터다. 앞으로도 “송구하려는” 정치인은 새겨 두기 바란다.

신경진 중국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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