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자는 고조선의 사상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07호 21면

노자가 옳았다

노자가 옳았다

노자가 옳았다
김용옥 지음
통나무

도올 김용옥 과감한 주장 #한국 철학 노자 계보 탐색

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또 한 권의 노자(老子) 책을 냈다. ‘노자 5000자’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해설했다. 저자의 노자 번역과 해설이 처음은 아니다. 대만·일본·미국 유학을 마치고 1982년 귀국해 내놓은 첫 책도 『길과 얻음』이라는 노자 번역이었다. 『노자철학 이것이다』와 『노자와 21세기』(EBS 방송 교재) 등을 비롯해 그의 숱한 저서에서 노자는 늘 중심에 있었다.

그에게 노자는 철학함의 출발점이다. 대학생 시절이던 1970년 철학 수업 때 고 김충렬 교수의 노자 강의를 듣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로부터 50년의 세월이 녹아 있는 이 책은 김용옥식 ‘노자 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한 글자 한 글자를 풀이하면서 동서양 철학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종합해 놓았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는 『노자 도덕경』의 첫 구절이면서 노자 철학을 대변하는 문구다. 저자는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 말하여진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고 번역하면서, 특히 ‘늘’로 번역한 ‘항상 상(常)’자에 주목했다. 노자는 ‘상(常)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항상 상’자를 변화가 없는 ‘불변’이나 ‘영원’의 의미로 풀이해선 안 된다고 했다. ‘상도(常道)’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자에게 불변이란 없다. 오직 변화가 있을 뿐이다. ‘끊임없는 변화의 지속’이 노자가 말하는 ‘상도’의 의미라고 저자는 거듭 강조하고 있다.

강요배 그림 ‘중묘지문’. 156x156㎝. 1981년 그릴 당시의 제목은 ‘꽃’이었다. ‘노자’ 1장에 나오는 ‘중묘지문(衆妙之門)’이란 말에 매력을 느껴 그렸다고 한다. ‘뭇 묘함이 이 문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김용옥의 신간 ?노자가 옳았다? 91쪽에 실려 있다. [사진 통나무]

강요배 그림 ‘중묘지문’. 156x156㎝. 1981년 그릴 당시의 제목은 ‘꽃’이었다. ‘노자’ 1장에 나오는 ‘중묘지문(衆妙之門)’이란 말에 매력을 느껴 그렸다고 한다. ‘뭇 묘함이 이 문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김용옥의 신간 ?노자가 옳았다? 91쪽에 실려 있다. [사진 통나무]

이번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노자를 통해 한국 철학의 물줄기를 찾아보려는 시도이다.

위로는 고조선 시대 사상가까지 언급하면서 신라시대 최치원의 ‘현묘지도(玄妙之道)’와 ‘풍류(風流)’를 재해석했고, 아래로는 주자학 일색인 줄 알았던 조선시대에 의외로 노자를 읽은 유학자들이 적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율곡 이이가 노자의 일부를 발췌해 풀이한 『순언(醇言)』을 필두로 조선 후기로 가면서 서계 박세당의 『신주(新註) 도덕경』, 보만재 서명응의 『도덕지귀(道德指歸)』, 초원 이충익의 『담노(談老)』, 연천 홍석주의 『정노(訂老)』 등 노자 주석서가 속출했다.

이 가운데 이충익의 『담노』를 높이 평가했다. 다른 주석서와 달리 주자학의 틀 속에서 노자를 해석하는 한계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자학뿐만 아니라 어떤 권력에도 구속되지 않는 노자의 아나키즘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저자는 “초원 이충익이야말로 『노자 도덕경』이라는 텍스트 그 자체를 현학(玄學)의 본류 속에서 이해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철학사를 통관해보려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노자는 고조선의 사상가이다.” 과감한 선언이다. “『노자 도덕경』을 통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속에 한 사람이 들어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선진 시대의 경전이 그토록 많건만 『노자』처럼 일관된 통일성을 갖춘 문헌은 없다. 그 한 사람이 고조선 시대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매우 확실한 사실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말을 하는 근거의 하나로 저자는 “노자가 중국에서 잘 이해되지 않았고 지금도 노자는 열심히 중국사상가들에 의해 배척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 노자 번역’이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노자 주석서는 아닐지라도 고조선 문명을 이야기하면서 노자를 다시 언급하는 또 하나의 책이 이어질 것 같다.

배영대 학술전문기자 balance@joongang.co.kr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중앙SUNDAY와 월간중앙에 모두 공급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