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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지방분권 1번지의 경험·노하우는 미래 자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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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제주특별자치도 15년 성과와 과제

2017년 11월부터 가동 중인 제주도 한경면의 30㎿ 규모 탐라해 상풍력발전 단지. 3㎿ 풍력발전기 10기로 약 2만4000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2017년 11월부터 가동 중인 제주도 한경면의 30㎿ 규모 탐라해 상풍력발전 단지. 3㎿ 풍력발전기 10기로 약 2만4000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지난 8일 오후 3시쯤 제주도 서귀포시 영어교육 도시 공공청사 앞. 관광객 발길이 뜸한 곳으로 이국적 냄새가 물씬 풍겼다. 대규모 현대식 학교 건물과 넓은 운동장, 주변의 저층 아파트 단지. 도시로 이름을 붙인 이유가 실감 났다. 길가 영문 간판이 지향점을 일러주었다. ‘The World Comes to Jeju, and Jeju Goes to the World(세계가 찾는 제주, 세계로 가는 제주)’.

권한 4600건 이양받아 고도 자치권 #2030년에 ‘탄소 없는 섬’ 실현 비전 #독자 관광산업 체계로 입도객 3배로 #공항·항만과 쓰레기 인프라 과제

이곳에 설립된 국제학교는 한국국제학교(KIS) 등 4개교. 모두 한국 법인이 운영하는 유치원~고교 통합 학교로 내외국인 모두 입학이 가능하다. 다른 지역 국제학교(외국교육기관·외국인학교)와 달리 국제화된 전문 인력 양성을 담은 제주특별법으로 내국 학생 제한이 없다. 올 8월 기준 4개교 재학생은 4062명으로 내국인(3655명)이 90%다. 외국 학생은 중국(47%)·미국(20%)·영국(15%) 순이다.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제주·브랭섬홀 아시아·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의 3개교 운영 주체인 (주)제인스 안유신 담당은 “3개교의 9월 초 재학생 충원율은 78.4%로 글로벌 국제학교 법인이 운영하는 학교에 손색이 없다”며 “졸업생들이 해외 굴지의 대학에 다수 입학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학교로 유학 수지 7000억 개선 효과

제주도 대정읍 가파도는 ‘탄소 없는 섬’의 아이콘으로 가정 집 곳곳에 태양광 설비가 갖춰져 있다. [사진 제주도청]

제주도 대정읍 가파도는 ‘탄소 없는 섬’의 아이콘으로 가정 집 곳곳에 태양광 설비가 갖춰져 있다. [사진 제주도청]

제주도 추산 유학 수지 개선 효과는 2011~19년 7060억원이다. 학생 외 학부모·교직원의 도내 유입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한몫한다. 이승훈 도 영어교육도시팀장은 “지난 10년간 사업이 영어교육 도시 조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교육 경쟁력 강화 등 국가 차원의 교육 자산 활용에 역점을 둘 방침”이라고 했다.

제주도는 지방 자치·분권의 선도 모델이다. 전국 유일의 특별자치도로 고도의 자치권을 누린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으로 중앙의 권한이 대폭 이양되면서다. 국제학교와 제주형 자율학교 설립의 교육 자치는 그 한 단면이다. 지역 맞춤형 치안 서비스를 하는 도 직속 자치 경찰단은 현재 제주도뿐이다. 제주지방국토관리청 등 7개 특별행정기관도 도로 이관됐다. 관광에 가려진 지방 분권 1번지의 시도들이다. 민기 제주대 교수(지방자치·재정)는 “특별자치도 출범 이래 4660건에 이르는 중앙의 권한이 넘어오면서 도의 자치 행정·입법권 범위가 다른 광역단체보다 확대됐다”며 “하지만 행정·환경 등 분야에서 자기 결정권은 아직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 이래 관광 분야 성과는 두드러진다. 그해 내외국인 합쳐 531만명에서 지난해 1528만명으로 세 배 늘었다. 관광 수입도 2009년 2조원에서 2018년 6조5000억원으로 올라갔다. 여기에는 관광 3개 법의 권한·규제 일괄 이양에 따른 독자적 관광산업 체계 구축이 큰 역할을 했다고 도 관계자는 분석한다. 카지노와 출국 납부금으로 관광진흥기금을 조성한 것은 좋은 예다. 지난해 해외 관광객(172만명)이 2006년에 비해 4배가량 늘어난 데는 180개국 대상 무비자 입국 특례를 빼놓을 수 없다.

제주도의 또 다른 얼굴은 국제자유도시다. 자본 이동과 기업 활동 편의가 최대한 보장된다. 투자진흥지구·부동산투자 이민 제도는 대표적이다. 2006년 이래 국내외 투자 유치는 41개 사업장 9조1000억원이다. 당초 56곳이 투자진흥지구로 지정됐으나 2015년 이래 15곳을 해제했다. 환경보호 등 투자 유치의 3원칙을 세우면서다.

탄소 없는 섬(Carbon Free Island)은 제주도의 비전이다. 8년 전 이를 2030년까지 실현하겠다고 선포했다. 고도 20.5m, 면적 0.9㎢의 가파도(加波島)는 그 아이콘이다. 지난 7~8일 풍랑주의보로 먼발치서 지켜본 섬의 풍력발전기는 흡사 등대였다. 영상을 보니 집터 곳곳이 태양광 설비였다. 섬 주민은 135가구 220명으로,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44.3%다. 풍력발전기 2기(500㎾)와 태양광 발전(48가구·144㎾)을 합쳐서다. 친환경 에너지 자급률은 한때 70~80%였으나 관광객 증가로 식당·카페 등이 들어서면서 감소했다.

지난해 말 기준 도 전체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4.4%(풍력 9.6%, 태양광 4.3%)다. 도는 2030년까지 전체 필요 전력을 신재생에너지로 메워 세계 최고의 청정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풍력발전(2345㎿)과 태양광(1411㎿)을 축으로 4085㎿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8월 말 기준 전기차는 2만699대(전국의 17.5%), 충전소는 1만7843곳이다. 2030년에는 차량 100%가 전기차와 수소차로 대체된다. 김미영 도 저탄소정책과장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선 생산 사업자가 전력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전력거래 자유화의 특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제도 없지 않다. 관광객·인구 증가에 따른 쓰레기 처리와 상하수도 인프라 확대가 필요하다. 공항·항만의 수용 능력도 문제다.

제주도는 그동안의 성과와 과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원희룡 지사를 서면 인터뷰했다.

원희룡 지사

원희룡 지사

제주특별자치도 15년을 총괄한다면.
“대한민국 자치분권의 기본 모형과 제도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제주의 특별자치도 경험은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의 모델이었고, 제주자치경찰제도는 전국 확대의 기틀이 됐다. 영어교육 도시로 국내 교육산업의 경쟁력을 입증했고, 특별자치 정책·사업으로 국가에도 기여하고 있다. 기존의 관광·교육·의료·청정 1차산업과 정보기술·생명공학기술 외에 블록체인·신재생에너지·전기차 등 미래 신산업을 도가 앞서 발굴·육성 중이다. 국세 징수액도 2006년 3736억원에서 지난해 1조8441억원으로 5배 늘었다. 제주도는 사람·상품·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국경 없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방분권의 시범도(道) 운영 15년의 경험과 노하우는 제주를 넘어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다. 한국의 뉴프런티어는 제주 안에 있다고 본다.”

“한국의 뉴프런티어는 제주 안에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본현황

제주특별자치도 기본현황

국제자유도시로서의 과제는.
“15년간 6차례 제주특별법 제도 개선을 거쳤지만 국제자유도시에 필요한 과제들이 번번이 좌절된 점은 아쉽다. 그동안 도 전역 면세지역화 등 실행 방안이 중앙 부처의 지역 형평성 논리에 부딪혀 빛을 보지 못했다. 정부가 지역이 낸 발전 구상에 더 열린 마음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자치분권의 경우 순차적 국가 사무 이양에 따라 정책 자율성이 어느 정도 확보됐다. 그러나 재정 분권의 핵심인 국세 이양, 면세 특례 확대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특별자치도에 걸맞은 재정 확충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변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변화

청정과 공존이 현재의 제주 미래 비전인데.
“비전은 도민이 직접 선택했다. 청정을 위해 환경 보전과 난개발 차단에 힘써왔다. 난개발 방지 3원칙을 정립했고, 중산간 보전 등 가이드라인도 강화했다. 조만간 외국 자본이 일으킨 난개발과 땅 투기를 엄정히 처리해나갈 것이다. 교통·주차난 해소를 위한 30년만의 대중교통 개편, 환경자원순환센터 현대화 등도 청정 차원이다. 공존에는 균등한 기회와 상생이 담겨 있다. 일자리 로드맵 5개년 계획, 청년 혁신 인재 육성과 취·창업을 통합 지원하는 ‘더큰내일센터’, 공공 임대주택 1만호 공급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취약 계층과의 공존을 추구하고 있다.”
향후 역점 분야는.
“코로나19는 대전환의 시기를 불러왔다. 새 감염병에 대비하는 비대면·디지털 환경으로의 전환과 더불어 환경 파괴,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 대응과 저탄소 사회 전환을 축으로 한 제주형 뉴딜은 이런 문제 인식 아래 설계했다. 강력한 방역으로 도민 생명을 보호하고, 전 국민 힐링의 섬을 구축하겠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국 대신 제주를 찾는 분들이 많은 만큼 철저한 방역과 청정 환경에 바탕을 둔 제주다움에 주력하겠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