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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열린 봄 음악제 “원래 전쟁 중에 음악회 가장 많다”

중앙일보

입력

2006년부터 매년 봄 열렸던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예술감독인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사진 하지영]

2006년부터 매년 봄 열렸던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예술감독인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사진 하지영]

 “흔히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전쟁 때만큼 음악회가 많은 때가 없다고. 정신적으로 어려울 때일수록 음악이 필요한 거에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예술감독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66)은 매년 봄에 하던 음악 축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SSF)’를 이달 열었다. 10~16일 총 8회 공연이었다. SSF의 예술감독인 강동석은 본래 지난 5월 13회의 공연으로 축제를 계획했다. 올해 탄생 250주년인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공연이 잠정 취소됐고, 규모를 축소해 이달 진행했다. SSF는 2006년 시작해 올해로 15년째. 봄이 아닌 가을에 축제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5년 동안 강동석은 위트있는 주제와 소주제로 축제를 꾸려왔다. ‘음악과 미식’(2019년), ‘아시아’(2016년), ‘타향살이’(2013년) 등 각 주제에 맞는 음악을 소개하는 것이 강동석의 장기였다. 강동석은 어려서 신동으로 이름을 알리며 데뷔했고, 10대에 미국으로 떠나 전 세계에서 다양한 음악축제에 참가했던 경험 덕분이다. 매년 SSF는 강동석이 골라주는 색색의 실내악(독주 악기들의 소규모 앙상블) 작품으로 꾸려지곤 했다.

올해 봄에 예정됐던 SSF의 베토벤 프로그램도 기발했다. ‘베토벤의 동시대’ ‘둘은 좋아, 셋은 무리’ ‘불멸의 연인’ ‘럭키 세븐’ 등의 주제 아래 베토벤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할 참이었다. 하지만 이번 SSF의 주제는 모두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잃어버린 봄’ 같은 소주제로 진행됐다.

15일 전화 인터뷰에서 강동석은 “봄이 왔는지도 모르고 봄을 즐기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며 “그래서 대중적인 곡, 사람들이 들으면 아는 곡을 더 많이 넣었다”고 했다. 그간 SSF의 공연들은 국내에서 들을 수 없었던 작품을 다수 소개했다. 21세기 작곡가의 작품뿐 아니라 모차르트 목관 8중주, 슈베르트 ‘시든 꽃’ 주제에 의한 플루트 작품 등 잘 알려진 작곡가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국내 초연하는 것이 SSF의 역할이었다. 강동석은 “올해는 슈트라우스 2세 ‘봄의 소리’ 왈츠,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대공’처럼 청중이 더욱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많이 연주했다”고 했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그는 “2~9월 모든 연주가 취소됐고 집에서 거의 나오지 못한 채 생활했다”고 했다. “여름에 알프스산 자락에 열린 페스티벌에서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며 “청중은 둘째 치고 연주자들끼리 얼마나 감정적이 됐는지 모른다.”  그는 올해 SSF에 대해서도 “음악에 너무나 목말랐던 사람들이 특별히 열광해줘서 뜨거웠다”고 말했다.

SSF를 준비하는 동안 코로나19의 상황이 변했지만 강동석은 “음악 축제는 꼭 개최해야만 했다”고 했다. “관객 없이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방식 등도 고려했다. 하지만 온라인 공연은 깡통 음식 먹는 것과 똑같다. 지금처럼 매체로만 음악을 듣다 보면 습관이 되고 그 현장에서 들었던 소리를 사람들이 잊을까 두렵다.”

강동석은 또 “올해 계획했던 베토벤 공연을 내년이라도 무대에 올릴 것"이라는 계획이다. “베토벤 250주년을 제대로 보낸 음악 애호가가 거의 없을 테니 내년 251주년에라도 베토벤을 정식으로 기념할 수 있지 않을까.”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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