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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한 시' 비난, 수상으로 위로받아” 美 번역상 2관왕 김이듬 시인

중앙일보

입력

전미번역상을 받은 『히스테리아』의 작가인 김이듬 시인. [사진 김이듬 페이스북]

전미번역상을 받은 『히스테리아』의 작가인 김이듬 시인. [사진 김이듬 페이스북]

김이듬(51) 시인의 『히스테리아(Hysteria)』가 미국에서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 수상했다. 두 상을 운영하는 미국 문학번역가협회(The American Literary Translators Association, ALTA)는 15일(현지시간) 온라인으로 수상작을 발표했다. 한 작품이 두 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며 전미번역상을 한국 작가의 번역 작품이 받은 것도 처음이다.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은 김혜순 시인의 작품이 2012, 2019년 수상한 후 세번째다. 상금은 각 2500달러(약 290만원), 6000달러(690만원)이며 번역자에게 돌아간다.

전미번역상(National Translation Award)은 1998년 제정됐으며 미국에서 출간된 시와 산문을 대상으로 한다.  김이듬의 『히스테리아』는 2014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고 2019년 제이크 레빈, 서소은, 최혜지의 번역으로 미국 액션 북스(Action Books) 출판사가 출간했다. ALTA의 심사위원단은 “의도적으로 과도하고 비이성적인 시들로 구성된 흥미롭고 놀라운 작품”이라며 “민족주의, 서정주의,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면서 한국 여성시학의 계보를 잇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은 아시아의 시 작품으로 수상 대상을 한정한다. 미국 시인이자 불교문학 번역가인 루시엔 스트릭의 이름을 따 2010년 제정했다. 2012년엔 최돈미 번역가의 김혜순 시집 『전 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원작: 당신의 첫)』이, 2019년엔 같은 번역가와 작가의 『죽음의 자서전』이 이 상을 받았다. 한국 시집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수상했다.

김이듬 시인은 2001년 등단했다. 16일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수상자 발표 영상을 보며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펑펑 울었다. 쓰고 싶은 대로 쓰라는 격려와 위로를 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도발적 시어로 과감한 내용을 다뤄오며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김 시인은 “『히스테리아』에 수록된 ‘시골창녀’를 한 세미나에서 낭독하는데 객석에서 ‘시가 이렇게 잡스럽냐!’는 괴성이 나왔을 정도”라며 “음란하고 퇴폐적 문장을 쓴다는 비난까지 들어오며 20년간 시를 썼는데 이번 수상으로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비주류로 묻히는 시인이어도 상관없다, 죽은 후에 읽어줘도 괜찮다 생각하면서 대신 3년 전 일산에 작은 책방을 열었다. 그런데 월세 내기가 힘들어 원형탈모까지 온 지경이었다.”

히스테리아의 미국판 표지. [사진 한국문학번역원]

히스테리아의 미국판 표지. [사진 한국문학번역원]

이번 수상은 2016년 한강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김혜순 시인 『죽음의 자서전』의 2019년 그리핀 시문학상, 올해 김금숙 『풀』의 미국 하비상 등에 이어진 국제 수상이다. 김이듬 『히스테리아』의 번역을 지원한 한국문학번역원은 “2003년 이래로 영어ㆍ프랑스어ㆍ독일어 등 언어권에서 20여 종의 국내 문학이 국제 수상했다”고 집계했다.

김이듬 '시골 창녀' 중

내 마음의 기생은 어디서 왔는가
오늘 밤 강가에 머물며 영감(靈感)을 뫼실까 하는 이 심정은
영혼이라도 팔아 시 한 줄 얻고 싶은 이 퇴폐를 어찌할까
밤마다 칼춤을 추는 나의 유흥은 어느 별에 박힌 유전자인가
나는 사채 이자에 묶인 육체파 창녀하고 다를 바 없다

김이듬 『히스테리아』(문학과 지성사, 2014 중 '시골 창녀'의 부분)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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