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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반도체, 이대로면 美 못 이긴다”…마윈이 한탄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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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를 읽다 ⑮ : 2004년 미국 수준인 中 반도체 산업

"우리 반도체는 (미국에) 20년 뒤처졌어요."

[진르터우탸오 캡처]

[진르터우탸오 캡처]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의 처절한 한탄이다. 지난 8~9월쯤 한 강연에서 한 말로 보인다. 중국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며칠 전 한 언론이 보도해 알려졌다.

마윈은 강연에서 ‘국뽕’에 취한 중국인에게 일갈한다. 미국이 틱톡과 위챗 규제에 나선 뒤 우쭐해 하는 중국 여론에 대한 질타다. “중국이 애플리케이션(앱)을 훨씬 잘 만드니까 미국이 두려워한다고요? 앱은 응용기술일 뿐입니다. 기초는 연산 능력, 즉 반도체에요.” 이 기술이 미국에 20년 뒤처졌다는 거다.

마윈의 강연 모습.[유튜브 캡처]

마윈의 강연 모습.[유튜브 캡처]

이대로는 미국 반도체 제재에 중국이 꼼짝없이 당할 거라는 게 마윈 생각이다. 그는 “국제 과학기술계로부터 차단되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90나노(nm·1나노는 10억 분의 1m) 수준”이라며 “이건 인텔이 2004년에 만들던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질타. 누구보다 마윈이라 설득력 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반도체 웨이퍼를 합성한 사진. [중앙포토]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반도체 웨이퍼를 합성한 사진. [중앙포토]

매년 중국 최고 부자 1·2위를 다퉈서? 아니다. 반도체 사업을 직접 해봤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연구기관 다모위안(達摩院·달마원)에서 2018년부터 반도체 개발에 매진했다. 진융(金庸) 무협소설에서 무공 비급을 연구하던 소림사 ‘달마원’처럼 인공지능(AI) 기반의 최첨단 반도체를 만든다는 포부를 내세웠다. 이를 위해 중국 국내외 반도체 기업도 여럿 인수했다. 그런 마윈이기에 누구보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정확한 현실을 짚을 수 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중요한 건 앞으로다. 중국 정부도 지금으로선 자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미국에 역부족이란 걸 안다. 그런데도 이른 시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금방 따라잡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8월 26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열린 2020 세계반도체대회 행사장에 한 남성이 들어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8월 26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열린 2020 세계반도체대회 행사장에 한 남성이 들어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이 시도를 안 해본 게 아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3일 칼럼에서 “중국은 오래전부터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따라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자체 산업기반을 개발하는 것에선 번번이 실패했다. 외국 기술의 도움을 받았는데도 그랬다”는 게 SCMP 생각이다.

8월 26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열린 2020 세계반도체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중국신문사진망 캡처]

8월 26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열린 2020 세계반도체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중국신문사진망 캡처]

SCMP에 따르면 중국은 1980년대 상하이에 유럽 반도체 회사와 반도체 웨이퍼 회사를 합작해 세웠다. 하지만 소득이 없었다. 90년대에도 비슷한 시도가 이뤄졌지만 실패했다. SCMP는 “탑다운(Top-Down) 형태로 움직이는 중국 관료조직은 빠르게 변화하는 반도체 산업을 따라가기엔 너무 경직돼 있었다”고 분석한다. 산업에 큰 영향을 주는 중국 관료 조직이 실패 원인이란 얘기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8년 4월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신신반도체(XMC)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8년 4월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신신반도체(XMC)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지금도 비슷하다. 중국 내부에서 제기되는 반도체 자립 회의론의 주요 근거 중 하나다. 중국 정부는 향후 1600조원 이상의 돈을 반도체 기술 개발에 들이부을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 투자는 이미 2018년 시작됐다. 시진핑 주석이 우한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면서 반도체 기술 자립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17회 국제 반도체 엑스포 행사장에서 반도체 관계자들이 전시품을 보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지난해 9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17회 국제 반도체 엑스포 행사장에서 반도체 관계자들이 전시품을 보고 있다.[신화=연합뉴스]

그러나 프로젝트만 쏟아질 뿐 실질적 성과는 많지 않다. 최고 지도자의 관심사항이라 생겨난 정부의 반도체 관련 ‘눈먼 돈’ 을 채 가는 이들만 많았다. 중국 공산당 선전 매체가 실태를 보도할 정도다. SCMP는 “반도체 기술 자립을 위해선 수년간 무지막지한 노력이 필요한데, 초반부터 시도가 흔들린다”고 비판한다.

중국이 내세우는 ‘양탄일성(兩彈一星)’도 잘 봐야 한다.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중국이 강대국 도움 없이 핵폭탄과 수소폭탄, 인공위성 발사 기술을 독자 개발한 걸 말한다. 반도체에서도 이게 가능하다는 건데 SCMP는 양탄일성의 진짜 비결을 소개한다. SCMP는 “과거 소련은 중국과 사이가 좋을 때 수천 명의 핵 과학자와 기술인력을 파견해줬다”며 “홍콩 베스트셀러 작가 장룽(張戎)과 남편 존 할리데이가 쓴 마오쩌둥 관련 저서에 따르면 1960년대 소련이 이들을 철수시키기 직전 마오쩌둥은 미인계와 술을 이용해 중요한 자료를 비밀리에 복사하고 탈취했다”고 전했다. 온전한 자체 개발이 아니란 이야기다.

[신화=연합뉴스]

[신화=연합뉴스]

결국 중국 반도체에 필요한 건 돈이 아니다. 사람이다. SCMP는 “중국은 대만에서 수백 명의 반도체 인력을 빼 오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기술 자립은 요원하다”고 단언한다.

중국은 차세대 반도체 소재 개발도 하겠다고 말한다. 기존 산업을 뒤흔들 기술로 미국의 반도체 족쇄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는 기존 기술을 따라잡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마윈이 강연에서 “중국에 필요한 건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 아인슈타인처럼 세상을 흔들 수 있는 혁신과 발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대 중국에선 이런 인재가 나타난 적이 없다는 게 마윈 생각이다.

"중국이 반도체 자립에 성공한다면 세계 권력 지형이 바뀔 것이다. 실패한다면? 미국과 화해말고는중국에 대안은 없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SCMP가 생각하는 중국 반도체 산업 시나리오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중국은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현재로썬 후자의 가능성이 조금 더 커 보인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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