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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진보 금기 깨겠다, 공무원연금·국민연금 통합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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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의당 김종철 신임 대표는 14일 자신의 임기 내 목표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꼽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세 자릿수는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는 고(故) 노회찬 의원이 평소 즐겨하던 농담이다. 오종택 기자

정의당 김종철 신임 대표는 14일 자신의 임기 내 목표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꼽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세 자릿수는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는 고(故) 노회찬 의원이 평소 즐겨하던 농담이다. 오종택 기자

 “민주당이 (무공천) 당헌을 지키는 게 맞다. 선거 연대도 없다. 민주당 귀책사유로 치르게 된 보궐선거다.”

[정치언박싱] #민주당 귀책사유 선거, 연대 없어 #'무공천' 약속 지켜야 정치 신의 #집권 세력, 연금개혁엔 '나 몰라라' #이재명 지사와 진보 경쟁 벌일 것

정의당의 새 사령탑이 된 김종철(50)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종 ‘민주당과 거리두기’를 강조했다. 그는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 “(민주당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당헌을 지키는 게 정치 신의에 맞다”며 “정의당은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고 완주한다”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에 대해선 “대단히 보수화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진보 진영의 입장과 상충되는 얘기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진보의 금기(禁忌)를 깨야 한다”며 “공무원연금·사학연금을 국민연금으로 통합해야 한다. 고소득층은 물론 저소득층에도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공무원·사학연금 통합은 전공노와 전교조에서 반대하는 이슈다.

김 대표의 이런 행보가 최근 여의도 정치권에서 화제다. 심지어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인 ‘메아리’가 최근 이례적으로 정의당에 대해 “보수 세력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지난 14일 오전 김 대표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정의당 당사에서 만났다.

민주당을 향해 내년 서울·부산시장 무공천을 요구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당헌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게 정치 신의에 맞다고 생각해 발언한 거다. 그런데 이건 민주당이 알아서 할 문제다. 그들이 당헌을 지킬지, 아니면 겸연쩍겠지만 ‘이번엔 좀 내겠다’고 하든지, 우리가 내라 마라 한다고 민주당이 따를 것 같진 않다.”
과거 정의당은 민주당과 수차례 후보 단일화를 했다. 이번엔 다른가.
“당연히 서울·부산시장에 정의당 후보를 내서 우리의 선거를 치른다. 민주당의 귀책사유로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선거 연대는 맞지 않는다. 왜 단일화를 하나. 국민의힘이 되지 말아야 해서? 그러면 정의당과 민주당 존재 이유가 그냥 ‘국민의힘 반대파’인 거다. 정의당은 민주당도 아니고 국민의힘도 아니다.”
174석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을 어떻게 평가하나. 
“최근 민주당 모습을 보면 보수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정경제(기업규제) 3법’이라고 해서, 재벌에서 대주주 영향력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감사를 뽑는 법을 냈더니, 그러면 경영권이 위험해진다고 김진표 의원 등 내부에서 반대와 우려가 나온다. 이건 좀 심각하다고 본다.”
경선 기간에 ‘이재명과의 경쟁’을 강조했다.
“민주당이 보수화됐다는 면에서 우리 경쟁 상대는 이재명 경기지사처럼 진보적인 분이라는 뜻이었다. 마침 선거 끝나고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를 받았는데, ‘이재명입니다. 우리 민주당이 진보적으로 가야 하는데…’ 이렇게 얘기하시더라. 제 얘기에 대한 화답이자, 차기 대선을 진보 경쟁으로 끌고 가고자 하는 의사도 담기신 것 같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론’에도 동의하나?
“기본소득론은 장기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재원 규모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게 워낙 많다. 자영업자까지 포괄하는 전국민고용소득보험 도입, 실업급여 확대, 대학 무상등록금, 노인 기초연금 10만원 인상이라든지. 이런 정책을 다 해도, 이 지사가 말씀하신 10만원을 모든 국민에 한 달 드리는 기본소득 정책보다 예산이 훨씬 적게 든다. 그러면 제가 말한 정책을 먼저 하는 게 낫다.”
김종철 정의당 신임 대표(뒤쪽)가 지난 9일 오후 당 대표에 선출된 후 낙선한 배진교 후보의 축하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김종철 정의당 신임 대표(뒤쪽)가 지난 9일 오후 당 대표에 선출된 후 낙선한 배진교 후보의 축하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사실 정치권에서 김 대표의 당선을 예측한 이는 많지 않았다. 결선 투표 상대는 현역 배진교 의원이었다. 배 의원은 정의당 내 최대 계파인 ‘인천연합’의 대표 주자로, 출마 직전 정의당 원내대표였다. 반면 김 대표는 지난 4월 총선을 앞둔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서도 처음엔 순번 20번을 받았을 정도로 당내 기반이 넓지 않다. ‘현역 대 원외’, ‘다수파 대 소수파’ 구도로 치러진 당 대표 결선에서 김 대표의 당선이 이변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의외의 결과였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무난하게 가선 안 된다는 게 제일 컸던 것 같다. 이번에 좀 파격적인 얘기를 많이 했다. 진보·개혁 진영의 금기를 깨는 정책을 정의당이 해야, 그나마 국민들이 우리를 ‘뭔가 유의미한 얘기 하네’라고 볼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당원들이나 국민들이나 다르지 않다고 봤다. 이런 주장에 당원들이 호응했다.”
진보의 금기, 무엇부터 깰 것인가.
“매우 많다. 대표적으로는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군인연금 문제가 있다. 이걸 정부 재정으로 적자를 보전하는데, 10년 후에는 10조원이 넘어간다. 이걸 누가 이해하겠나. 공무원연금, 사학연금은 연금 액수도 굉장히 높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에 통합해서 재정 적자를 줄이고 공평한 노후를 만든다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아무도 안 한다. 필요한데 너무 어려우니깐 안 하는 거다.”
노조에서 강하게 반대할 텐데, 부담은 없나.  
“그분들도 이 구조가 유지될 수 없다는 건 다 아실 거다. 한방에 급격하게 못 하더라도, 이 방향으로 가자는 걸 동의받아야 한다. 공무원 노조 분들이 ‘공무원들은 퇴직금이 없어서 이런 성격의 연금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시면, 그 부분을 보완해드리면서 ‘하지만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현 정부·여당도 꺼내지 못하는 얘기다.
“이 얘기는 특히 민주당이 더 해야 하는 얘기다, 집권 세력이니깐. 그런데 그냥 ‘나 몰라라’ 하는 거다. 실제로는 박근혜 정부 때 공무원 연금에 손을 댔다. 그 전에는 공무원 연금을 물가인상률에 맞춰 늘렸는데, 그걸 박근혜 정부가 동결시켰다.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진보적인 정부인데 지금은 뭐가 전혀 없지 않나. 그래서 국민을 위해 금기를 깨는 정책을 용감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정의당 김종철 신임 대표는 "저소득층에도 세율을 올리는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 복지국가들은 다 그렇게 한다"고도 했다. 오종택 기자

정의당 김종철 신임 대표는 "저소득층에도 세율을 올리는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 복지국가들은 다 그렇게 한다"고도 했다. 오종택 기자

김 대표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정의당 등 진보 정당에서만 활동했다. 2002년 이후 18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장 2번, 국회의원 5번, 공직선거에 7번 출마해서 모두 낙선했다. 진보신당까지 함께 했던 박용진 의원은 민주당으로 옮겨 재선 국회의원이 됐다. 두 사람은 학생운동 시절 같은 민중민주(PD)계열 조직에 몸담았던 긴밀한 사이기도 했다.

민주당 소신파로 불리는 박용진 의원을 어떻게 보나.
“민주당에서 잘하고 있다고 본다. 삼성 비판이나 유치원 비리 문제도 그렇고 잘한다. 다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의 뛰어난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게 한계가 많다. 그런 면에서 박 의원이 개인적으로 열심히 잘하고 있으나, 민주당이 그렇게 움직이기 쉽지 않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당 의석은 6석뿐이다. 법안 발의도 쉽지 않은데?
“사실 어려운 문제다. 극복하는 방법은 정의당이 말한 의제가 국민적 지지를 받는 것이다. 그래야 민주당도 움직인다. 민주당에 ‘이걸 좀 받아주면 고맙겠다’고 허락 얻는 방식으론 더는 안 된다. 현장을 뛰어서 국민 지지를 얻어내면, 민주당도 안 하기 어려워진다. 현장에 답이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 정국에 당원이 대거 탈당했다.
“류호정, 장혜영 의원이 피해자와의 연대를 강조하기 위해 ‘미안하지만 조문은 갈 수 없다’고 했는데, 그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서적인 차이로 탈당하신 분이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정의당이 절대로 외면해선 안된다.”
권영길·노회찬·심상정 같은 선배 세대보다 중량감이 적다.
“무게가 힘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새롭게 정의당에 인물이 있다는 걸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국민들이 ‘정의당에도 저 사람이 하는 거 보니깐 잘한다’, ‘류호정과 장혜영도 잘하고 인물이 점점 늘어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보여드리고 싶다.”

오현석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영상‧그래픽=오종택·황수빈‧김은지

◆김종철=서울에서 태어나 중경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을 지내고 1999년 국민승리21(민주노동당의 전신) 권영길 대표의 비서로 진보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민주노동당에서 대변인과 최고위원을, 진보신당에서 부대표를 지냈으며, 18~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다.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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