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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윤석열과 국민은 핫바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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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대훈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1국장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언론에 나고서야 알았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고백은 서글프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는 라임자산운용 전주(錢主) 김봉현씨의 법정 증언이 8일 보도된 뒤 토로했다고 한다. 서울남부지검이 넉 달 전에 확보하고도 뭉개고 있던 이 폭탄급 진술을 검찰의 최고 책임자인 윤석열은 까맣게 몰랐다. 정·관계 로비 정황이 담긴 옵티머스의 ‘펀드 하자 치유’ 문건 내용도 서울중앙지검의 ‘보고 누락’ 탓에 패싱당했다. “살아 있는 권력 비리에 엄정하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치켜세웠던 윤석열을 이렇게 핫바지로 추락시키는 게 검찰 개혁이구나 싶다.

라임·옵티머스에 권력형 비리 의혹 #정·관계 인사 등장하는 로비설 돌고 #검찰의 부실 수사 겹쳐 게이트 조짐 #진실 드러나도록 국민 눈 부릅떠야

진짜 검찰총장은 따로 있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3일 “(라임·옵티머스 사건의 여권 인사 연루 의혹을) 직접 취재를 했고, 염려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단다. 바로 전날 명색이 현직 검찰총장이 “철저히 수사하라”고, 먹히지도 않겠지만, 내린 지시가 무색하게 “문제없다”고 수사 지침을 내린 셈이다.

이 정권에서 부정부패가 노출되면 대응하는 정형화된 패턴이 있다. 조국·윤미향·추미애 사태에서 지겹도록 목격한 패턴이다. 우선, 불거진 의혹에 진실 공방으로 프레임을 비튼다. 양심에 손을 얹고 누가 봐도 라임·옵티머스 사건엔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1조원이 넘는 돈을 놓고 청와대는 물론 정·관·금융계 인사가 줄줄이 엮여 있고, 펀드 사기꾼과 그들의 로비 리스트가 설치고, 검찰의 수사 부실이 뒤섞인 전형적인 권력형 게이트다. 여당에선 “근거 없는 거짓 주장이나 의혹 부풀리기”라고 일축한다.

김봉현이 제정신이 아닐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공개된 법정에서 청와대 실세에게 뇌물을 상납했다고 자신의 죄를 까발리겠나. 강기정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다. 청와대에서 선의의 만남은 있었으나, 5만원짜리 현금다발 5000만원은 미수에 그친 배달 사고라며 결백을 호소한다. 오래전에 이런 폭로 내용을 파악했던 검찰은 이상하게 강기정에게 묻지도 않고 서류를 덮었다. 김봉현이 미친 사람이라면 더불어민주당 의원, 청와대 행정관 등 힘깨나 쓴다는 인사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뿌렸다는 그의 주장도 허튼소리였어야 했다. 그런데 행정관의 5000만원 수수 등 허풍이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검찰 수사가 왜 청와대 앞에서 멈췄는지 의심스럽다.

두 번째 패턴은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면 ‘검찰 수사를 기다려 보자’며 물타기를 시도한다. 옵티머스의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 쟁쟁한 인사의 이름이 나오고, 이 중 성공한 로비도 있어 나름 신빙성이 있다. 검찰은 지난 7월 문건을 진작에 확보하고도 왠지 미적댔다. 펀드 사기 공범의 아내인 30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 옵티머스 지분을 숨기고 근무한 사실도 드러났다. 공직 비리 감시와 사정을 관할하는 민정수석실에서 그런 행태가 벌어졌다면 깃털이든 몸통이든 불순한 경위를 검증하는 게 상식이다. 검찰은 그를 단 한 차례 참고인 조사하고 봐줬다.

여론이 나빠지자 문 대통령이 그제 “성역은 없다.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주문했다. 청와대가 개입된 사건인데도 사과는 없었다. “대통령을 흔들고 정부를 흠집 내는” 의혹을 적절히 처리하라는 뜻일까.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린 것인지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이 수사팀을 증원하며 뒷북 법석을 떠는 모습을 보니 쓴웃음이 나온다. 축소·은폐 등 비정상적 수사를 지휘하고 진실에 콧방귀도 안 뀌던 사람이 뜬금없이 ‘수사 쇼’에 나선 느낌이다.

문 대통령은 집권 전 “정치검찰은 정권의 주구(走狗)가 돼버렸다”라고 비판했다. 사냥개가 된 검찰을 바꾸겠다는 게 개혁 구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개혁 검찰’은 권력형 비리에 면죄부를 남발하는 견찰(犬察)이 됐다고 세상은 손가락질한다. 검찰이 충견, 사냥개, 애완견 하며 이렇게 자주 동물에 비유되는 경우는 독재 정권 시절에도 없었다. 거악(巨惡) 척결은커녕 권력의 해바라기 검사들만 득실거리는 게 개혁이라면 문재인 정권은 성공했다.

세 번째 패턴은 음모론을 내세워 선악 구도로 몰아가는 수법이다. 알다시피 정의와 공정은 프로파간다의 도구가 됐다. ‘사람이 먼저’는 우리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상대에겐 무관용이고, 자기편에겐 무한 관용이다. 남의 허물은 단죄하고 자신의 잘못엔 눈감는다. 라임·옵티머스 사건도 그렇게 흐를 공산이 크다. 정권에 대한 불신이 거칠어지면 토착왜구론을 또 꺼내 들지도 모른다.

공돈에 맛 들인 사람들이 정권을 받쳐주니 권력이 국민을 업신여긴다. 미안한 시늉조차 사라질 정도로 오만해졌다. ‘악의 평범성’을 설파했던 한나 아렌트가 정곡을 찔렀다. “전체주의 지배가 노리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사실과 허구 혹은 참과 거짓을 더는 분간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이다.” 실체적 진실은 증발하고 잔챙이 몇 잡고는 흐지부지 끝내려는 게 마지막 패턴일 것이다. 그게 성공하지 못하도록 다들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윤석열처럼 국민도 핫바지가 된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