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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갑중갑이 만든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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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직장인 3000명에게 과거로 돌아가면 어떤 직업을 준비하겠냐고 물었더니 셋 중 하나꼴로 공무원을 꼽았다는 조사가 나왔다. 압도적 1위다. 2위인 의사·변호사의 두 배에 달한다. 생각해 보면 돈 들여 조사까지 할 필요 없는 당연한 결과다. 갑중갑의 끗발과 위세가 우선 폼나지만 일단 한번 들어가기만 하면 실직 걱정 없는 만고강산에 실속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례 하나가 추가됐다. 서울시가 최근 신규 임용자에게 1억원을 6년간 1% 금리로 대출해 주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행정 서비스 높이겠다는 큰 정부 #공익 빙자한 정책폭주, 무능으로 #‘제비뽑기 전세’ 코미디 만들었다

사실 기획재정부나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엔 훨씬 큰 액수의 특혜성 대출이 많다. 공기업 중엔 초·중학교 자녀를 둔 직원에게 사설 학원비, 대학생 자녀에겐 학자금, 아파트 사택 제공에 사택 관리비까지 제공하는 곳도 즐비하다. 그래서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은 ‘신이 내린 직장’과 ‘신도 못 가는 직장’ ‘신도 모르는 직장’ 등으로 나뉘어 불린다. 하지만 그게 공직이고 대상이 공무원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재원이 시민 세금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은행에서 생활자금을 빌리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공무원은 자기들 복지 늘리는데 왜 나랏돈을 펑펑 쓰냐는 질문이다. 가뜩이나 높은 임금 인상률과 늦은 퇴직 연령을 고려하면 공무원이 누계로 최대 10억원 정도를 더 번다는 분석까지 나와 있다. 그럴 법한 게 한 해 3조원 넘는 공무원·군인연금 적자를 메우는 데 들어가는 돈 역시 세금이다. 20년째 정부가 매년 부족분을 채워주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퇴직 공무원 연금을 주려고 세금을 낸다.

특히 이 정부 들어 신의 직장인 공직과 ‘가재·붕어·개구리 직장’ 간 격차엔 가속도가 붙었다. 20대 9할이 실업자란 이구백, 십대들도 장차 백수란 십장생의 우울한 유행어가 만들어졌지만 자기들 일자리는 풍년이다. 전 정부가 끝날 때 100만 명 수준이던 공무원 정원은 지난해 말 110만 명을 넘어섰다. 30년 만에 최대 규모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농사짓는 사람도, 주민도 줄었는데 농림부와 지자체 공무원은 늘었다. 문제는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확 늘리겠단다.

그 길의 끝이 어딘지는 세계 1등 도시가 이미 보여줬다. 코로나로 콜록이는 맨해튼 거리는 지금 쓰레기가 제때 수거되지 않고 노숙자가 늘어가는 중이라고 한다. 뉴욕시 재정 위기 때문이다. 그럼 글로벌 경제 수도는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시는 관광수입 급감에 핑계를 돌리지만 전문가들은 지금 시장의 고용 잔치를 첫손가락에 올린다. 그가 공무원 노조 요구를 받아들여 수만 명을 신규 채용하면서 연금·퇴직금 규모와 얽혀 예산 고갈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추가 차입이 어려워 2만 명 넘는 공무원이 해직될 판이다.

우린 사정이 다르다 치자. 공무원 한 사람의 평생 유지비용이 30억원 정도라는데, 그러면 정부 행정이나 공공 서비스가 눈에 띄게 좋아졌을까. 민간 부문 일자리가 수십만 개 사라진 ‘실업 민국’에서 서민들은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모여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고 제비뽑기로 전셋집을 구했다. 세금으로 만든 4대강 보를 세금 퍼부어 부수고, 멀쩡한 원전은 세워둔 채 실체도 불분명한 그린뉴딜 사업에 75조원을 뿌리겠다는 정부다. 당장 수술대에 올려야 할 공무원·군인연금은 미뤄 조지고 국민연금엔 ‘총선 낙선자’를 연거푸 이사장에 임명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정부의 존재 이유다. 하지만 있어야 할 곳엔 없고 없어야 할 곳에만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솔선수범이 없다. 재정이 거덜나도 공무원은 늘린다. 있는 건 공익을 빙자한 정책 폭주다. 자화자찬의 감성팔이 홍보와 아집도 있다. 국민이 체감하는 불공정은 조국·추미애·윤미향 사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 전 분야에 뻗어 있다. 부동산이든, 뭐든 자신 있다는 정부의 나랏일이 왜 이 모양인가. 순진한 척 정부 믿지 말고 각자도생하라는 뜻인가.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