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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베토벤만 들여다본 피아니스트 "내 손을 다시 찾은 시기"

중앙일보

입력

베토벤의 32개 소나타를 전부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손민수. [사진 목프로덕션]

베토벤의 32개 소나타를 전부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손민수. [사진 목프로덕션]

피아니스트 손민수(44)는 10대 시절부터 국내 음악계의 스타였다. 세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국내 다수의 대회에 입상했다. 18세에 미국 보스턴으로 유학을 떠난 후에도 승전보를 전해왔다. 캐나다 호넨스 국제콩쿠르 한국인 최초우승 후 유럽과 북미에서 연주했고, 미시건 주립대학의 교수를 5년 동안 지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로 임용되면서 2015년 귀국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완주 앞둔 손민수

음악인의 화려한 길을 걸었던 손민수가 지난 3년을 베토벤에 썼다. 2017년 11월부터 총 일곱 차례 베토벤 소나타를 공연했다. 올해 12월 2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마지막 소나타 세 곡을 연주하면서 총 32곡을 완주한다. 베토벤이 26세부터 52세까지 쓴 피아노 소나타를 모두 연주하게 되는 여정이다. “한 작곡가의 일대기와 같은 음악을 전부 연주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3년동안 매일 아침 일어나 베토벤의 편지를 읽고 피아노 연습을 시작했다.”

손민수는 “작곡가를 영웅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바라보면서 연주하고 싶었다”고 했다. 베토벤의 제자나 전기 작가가 쓴 평전 대신 편지만 모아놓은 책을 골라 매일 읽은 이유다. 그 중에서 인간 베토벤을 발견하게 된 대목은 동생과의 일화다. “도박과 술에 빠진 동생을 다독이고 다시 일으키기 위해 애쓰는 편지를 읽고 베토벤이 얼마나 섬세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오로지 베토벤만 생각하며 보낸 3년은 그에게 회복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번 여정을 정리하며 그는 12년 전 손의 부상에 대해 털어놨다. “2008년 12월 31일에 눈길에서 미끄러져 오른손이 부러졌다. 삶에서 절망이라는 표현을 처음 써봤다.” 그는 여러 차례의 재활과 수술을 거치며 2년 동안 연주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오른쪽 손목에는 기다란 수술 자국이 있고, 그 안엔 부러진 뼈를 붙이기 위한 금속 조각들이 여럿 들어있다. “연주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이것 때문이라고 할까봐 어디에도 이야기를 안 했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뉴욕, 보스턴, 로테르담 등 무대에 섰던 연주에서 그의 과거 부상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가 학회에서 그의 손을 사례로 발표할 정도로, 회복은 완벽했다.

“부상 이후로 피아노 연주에서 몸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몸을 약간만 틀어도, 소리가 달라진다.” 특히 베토벤의 한 일생을 돌아보며 건반을 대한 지난 3년을 두고 그는 “손을 다시 찾아내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연주와 병행해 녹음한 음반에서 손민수는 정교하게 베토벤을 그려냈다. 음악보다 앞서 나가는 법이 없는, 세심한 연주다.

베토벤을 끝내면 손민수는 미뤄왔던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바흐 평균율 1ㆍ2권을 완주하고 싶다”고 했다. 초절기교 연습곡은 말그대로 한계가 없을 정도로 어려운 곡들이고, 바흐 평균율은 피아노 음악의 초석이 되는 작품집이다. “리스트의 작품에서는 상처 받은 영혼에 대한 치유가 느껴진다.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들과 같다. 그 승화의 과정을 표현하고 싶다. 또한 어려서는 내가 할 수 없었다고 여겼던 바흐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해보고 싶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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