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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수사 단서를 ‘가짜’로 몰고 가는 여권…켕기는 게 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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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펀드 하자 치유’라는 이름의 문서가 있다. SBS가 옵티머스 내부 문건이라며 공개해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5월 옵티머스 경영진이 금융감독원 조사 대책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안에는 ‘정부 및 여당 관계자들이 프로젝트 수익자로 일부 참여돼 있고, 펀드 설정 및 운용 과정에도 관여’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옵티머스를 직간접으로 도운 정·관계 인사 이름도 적혀 있다.

법무장관과 원내대표가 나서니 더욱 수상 #법치 의지 의심스러워…특검 수사 불가피

검찰은 이 문서를 수개월 전에 확보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파악한 문서의 출처와 작성 경위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내용의 진위를 확인해 사실에 부합하면 해당 인물들의 불법행위를 밝혀내는 게 검찰이 마땅히 할 일인데 그런 작업을 벌인 흔적은 없다. 옵티머스 실체 파악에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는 자료가 사실상 방치됐다. ‘정부 및 여당 관계자’라는 표현에 검사가 화들짝 놀라 그대로 덮은 것 아닌가.

국정감사에서 이 문서가 거론되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허위 문건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김태년 원내대표가 직접 취재했고 ‘염려할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고 기자들에게 이야기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국회에서 “좀 조작돼 있는 문건”이라고 말했다. 여권과 정부 기관이 문건 내용을 허위로 몰고 가는 모양새다.

검찰이 내용의 실체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는데도 여권 핵심 인사들이 거짓이라고 앞다퉈 방패막이를 하니 더욱 수상하다. 검찰에 수사하지 말라고, 나서면 다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상적인 법무부 장관이라면, 거리낄 게 없는 여당 원내대표라면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겠는가.

언론 취재로 문건에 언급된 사업들은 실제로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의 신빙성은 그만큼 커졌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에 대해 수사를 해야 한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극에는 권력층의 비호나 도움 없이는 성사되기 힘들었을 일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공공기관들이 수백억원의 자금을 넣었고, 금융감독원은 펀드 운용 문제를 포착하고도 대충 덮었다. NH투자증권은 펀드 운용사에 대한 검증 없이 수천억원을 끌어들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 내부에 “어느 것도 성역이 될 수 없다.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지시하며 라임·옵티머스 사건에 관심을 보였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대통령 말과 법무부 장관 행동이 어긋나니 진실 규명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스럽고 국민은 혼란스럽다. 이 정권에 과연 법치(法治) 의지가 있는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젠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로 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야당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켕기는 게 없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