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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화가’ 변시지, 그림마다 황톳빛 제주 바람이 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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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자그마한 돌섬으로 폭풍이 몰아친다.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고, 작은 초가집을 둘러싼 소나무는 바람 따라 몸이 한껏 휘었다. 사람 하나, 조랑말 한 마리. 변시지(邊時志·1926~2013) 작가의 1982년 작 ‘태풍’ 속 풍경이다.

16일부터 작품세계 재조명 회고전 #석양 물든 바다·땅의 황홀한 변색 #“동양 문인화 정신 깃든 한 편의 시” #낙향해 38년 그린 40여 점 선보여

변시지 작가.

변시지 작가.

캔버스에 바람을 담으려 했던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 5월 변시지의 전 생애 작품을 다룬 화집  『바람의 길, 변시지』(누보)가 출간된 데 이어 이번엔 기획전이 마련됐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6일 개막하는 특별 회고전 ‘변시지, 시대의 빛과 바람’이다. 50세이던 1975년 제주로 귀향해 201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8년간 제주에 머물며 완성한 주요 작품 40여 점이 전시된다.

그동안 미술 시장에선 열렬한 소수 컬렉터가 존재했지만, 대중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았다. 작가는 “1년에 1~2점만 팔아도 된다”며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작품 유통량은 적은 이유다. 이번 전시는 오랫동안 중앙 화단에서 비켜나 있던 변 작가의 작품을 다수 소개하는 드문 회고전이다.

변시지 작가는 1975~2003년 제주 시절 서양화와 동양의 문인화 기법을 융합해 그만의 고유한 화풍을 완성했다. 1982년 작 ‘태풍’, 182x228㎝. [사진 가나아트]

변시지 작가는 1975~2003년 제주 시절 서양화와 동양의 문인화 기법을 융합해 그만의 고유한 화풍을 완성했다. 1982년 작 ‘태풍’, 182x228㎝. [사진 가나아트]

변시지는 1926년 제주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6세 때인 1931년 가족과 일본 오사카로 갔다. 1933년 소학교 2학년 때 교내 씨름대회에서 상급생과 겨루다 평생 지팡이를 짚게 된다. 그의 그림 속에 지팡이를 든 사람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연유다. 1945년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옮겨간 그는 당대 일본 화단의 거장 데라우치 만지로(1890~1964) 도쿄대 교수의 문하생으로 서양 근대미술 기법을 배웠다. 인물화와 풍경화를 집중적으로 그렸다.

2002년 작 ‘바람’, 41x53㎝. [사진 가나아트]

2002년 작 ‘바람’, 41x53㎝. [사진 가나아트]

변시지는 1948년 당시 일본 최고의 중앙화단으로 알려진 광풍회 공모전에서 최연소로 최고상을 받았고, 24세 땐 광풍회 심사위원이 됐다. 일본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작업하던 그는 1957년 서울대 교수로 초빙돼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사회와 화단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1년도 채 안 돼 서울대를 떠났고, 마포고 교사, 중앙대·한양대 등의 강사로 전전하다가 50세에 고향 제주로 돌아갔다. 이후 은둔자처럼 살며 그림만 그렸다.

2002년 작 ‘해촌’, 41x53㎝. [사진 가나아트]

2002년 작 ‘해촌’, 41x53㎝. [사진 가나아트]

변시지의 화풍은 크게 일본시절(1931~1957), 서울시절(1957~1975), 제주시절(1975~2013)로 나뉜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서양화와 동양의 문인화 기법을 융합한 변시지만의 독창적 화풍이 완성된 제주 시절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듯 기존 화풍을 버리고 제주의 향토성을 담으려 치열하게 고민하며 그린 작품들이다.

1995년 작 ‘바닷가의 추억’, 45x130㎝. [사진 가나아트]

1995년 작 ‘바닷가의 추억’, 45x130㎝. [사진 가나아트]

제주도 초기 시절 그림이 황톳빛과 먹선으로 ‘제주의 색’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1990년대 이후의 그림 속엔 휘몰아치는 바람이 두드러진다. 1991년 집중적으로 그린 ‘블랙시리즈’와 거센 폭풍 한가운데서 날갯짓하는 까마귀들을 그린 ‘생존 시리즈’도 여기서 볼 수 있다. 반면 후반의 그림에선 작가 특유의 황톳빛과 선이 더욱 밝고 온화해진 것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생전 “단순히 보이는 풍경화가 아니라, 그들 삶의 맥락과 맞닿아 있는 제주 풍경을, 그들의 독특한 정서를 형상화한 작품을 창작하고 싶었다”며 “현대문명에 밀려 사라져가는 제주의 원형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고 말한 바 있다. 황톳빛 노란색과 마치 먹을 쓰듯 검은 선으로 대상을 표현하는 걸 그때 찾았다고 한다. 특히 황토색은 “현란한 색으로 아무리 제주를 표현해도 어색했다”는 작가가 40년 넘게 익숙한 모든 색과 기법을 버리고 찾은 제주의 색과 빛이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도 눈여겨봐야 한다. 소년과 지팡이를 짚은 사람, 조랑말, 까마귀와 해, 돛단배, 초가, 소나무 등이다. 한결같이 바람 부는 섬에 쓸쓸하게 존재하는 것들이다. 특히 격랑 한가운데 한 점처럼 그려진 돛단배 한 척은 마치 작가의 인장처럼 거의 모든 작품 속에 등장한다. 거친 물살에 위태롭게 흔들리지만 침몰하지 않고 꿋꿋하게 어디론가 향해가는 모습이다.

서양화가 안진희는 박사논문 ‘변시지의 회화세계’에서 “서양의 기법에서 시작해 오랜 실험과 탐색을 거친 후, 동양의 정신과 기법을 수용한 결과물들”이라며 “그의 그림은 단순히 풍경화가 아니라, 동양의 문인화 정신을 반영한 한 편의 시”라고 평가했다.

변시지의 모든 작품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은 바람이다. 바람을 맞으며 온몸을 구부린 채 서 있는 사람, 지붕이 날아갈 듯한 소박한 초가, 흐린 수평선, 멀리 떠나간 돛단배는 마치 운명에 맞선 개인을 넘어서 역사의 수난을 딛고 살아가는 인류를 상징하듯 화난 듯 일렁이는 바다와 하나로 그려진다.

미술평론가 이건용은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실존을 애잔하고 비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했고, 오광수 평론가는 “변시지 개인이 창조한 세계라기보다는 제주도라는 풍토가 창조해낸 세계”라며 “그만큼 순수하고 자생적”이라고 했다.  변시지, 폭풍의 화가를 쓴 서종택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가 제주에서 보낸 38년은 예술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도정이었다. 변시지의 화폭엔 인간 존재의 소슬함, 자연에 대한 외경이 황톳빛으로 상징, 승화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제라도 미술계가 서구 기법과 다른 변시지 예술의 개성과 창의성을 수용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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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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