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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10억으로 압구정 24억 아파트 산 사람은 '생후 4개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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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일대의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12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일대의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생후 4개월 아이가 현금 10억원으로 강남 아파트를 샀다. 부모나 조부모의 재력 덕을 보는 '금수저'들의 내집 마련 방식이다. 이런식으로 2018년 이후 지난 8월까지 서울에서 9억원 이상 고가주택을 산 미성년자는 14명에 달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약 60만 건의 주택자금조달계획서 세부내역을 분석한 결과 금융 대출이 어려운 미성년자들은 대부분 직계존ㆍ비속의 상속이나 증여, 차입을 통해 주택 구입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 의원은 “최근 3년간 수도권에서 9억 이상 고가주택을 산 미성년자 14명 중 5명이 그런 경우”라고 말했다.

생후 4개월인 A씨(2018년생)는 태어난 해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7차 106.22㎡를 어머니와 함께 24억9000만원에 절반씩 공동매입했다. A씨의 매입 자금 12억4500만원 중 9억7000만원(77.9%)은 본인 보유 금융기관 예금액이었고, 나머지 2억7500만원은 보증금이었다.

소 의원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를 산 것도 웃픈 일이지만 구입비용의 78%를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예금액으로 지불했다는 것도 참 씁쓸한 일”이라며 “강남 부자들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동산을 이용해 부를 대물림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포레스트’ 아파트를 10억6000만원에 매입한 17세 청소년 B씨(2003년생)는 해당 자금 전액을 직계존비속으로부터 증여받아 마련했다.

지난 8월 성동구 성수동1가 동아아파트 53.14㎡를 10억원에 매입한 19세 청소년 C씨(2001년생)도 이 중 8억1800만원은 증여를, 7200만원은 직계존ㆍ비속 차입을 통해 조달했다. 소 의원은 “C씨가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서를 보면 증여 또는 차입을 통해 마련한 8억9000만원 외에도 약 6300만원의 현금 등 기타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금융기관에 예치된 예금도 아니고 6300만원의 현금 등 기타자금을 어떻게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국세청과 국토부가 조사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2018년 이후 수도권에서 9억원 이상 고가주택을 산 이들 중 가장 높은 가격의 주택을 매입한 상위 5명은 주로 금융기관 예금과 전세보증금을 통해 집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아파트를 17억 2000만원에 구입한 16세 청소년 D씨(2004년생)는 예금 8억8000만원과 세입자 보증금 8억4000만원을 합쳐 이 집을 구입했다. 2019년 강남구 도곡동 ‘현대빌라트’를 16억9000만원에 구입한 17세 청소년 E씨(2003년생)도 예금 11억9000만원과 보증금 5억원으로 집을 장만했다.

자기자금 단 1억원으로 서울에 집을 산 청소년도 있었다. 올해 서대문구 북아현동 ‘월드빌라’를 10억원에 산 19세 청소년 F씨(2001년생)는 예금 1억원 외에 직계존ㆍ비속 차입금 6억원과 세입자 전세보증금 3억원을 합해 이 집을 매입했다.

소 의원은 “국토부가 제출한 60만 건의 주택자금조달계획서 분석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부의 대물림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며 “국토부와 국세청은 미성년 주택 구매자들이 편법이나 불법을 통해 증여를 받아 주택을 구매한 것이 아닌지 철저하게 조사해 탈세가 이뤄진 경우에는 탈루 세액을 정확하게 추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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