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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국공 해고자 "정규직이냐"···고용부 "법원에 물어보라"

중앙일보

입력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7월 7일 인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7월 7일 인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고용노동부가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의 직고용 과정에서 해고된 근로자가 자회사 정규직 여부를 묻는 질문에 "법원에서 해결할 일"이라고 답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자회사 정규직일 경우 고용이 보장돼 굳이 직고용의 길을 밟지 않아도 된다. 고용부가 이 판단을 법원으로 미룬 셈이다. 법 집행 기관으로서의 정부 역할을 직고용 정책에 밀려 방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국공 직고용 과정에 자회사 직원 47명 해고…"자회사 정규직 여부 판단해달라" 고용부에 질의

인국공은 올해 들어 비정규직 제로 선언의 실천 방안으로 자회사 직원의 직고용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자회사 직원이던 소방대원 등 47명이 해고됐다. 이와 관련 인국공 소방대노조는 해고된 소방대원에 대해 자회사의 정규직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질의서를 지난 8월 고용노동부에 냈다.

노조가 이런 질의서를 고용부에 제출한 이유는 굳이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직고용될 이유가 없고, 자회사 정규직으로 안정된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들은 "소방대 근로자가 자회사인 인천공항시설관리주식회사와 2018년 1월 1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현재까지 2년을 초과 근무했기 때문에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고용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고용부에 항변했다. 기간제법에는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은 해당 회사의 정규직으로 신분을 전환토록 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직원과 취업준비생 등 청년들이 지난 8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열린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에서 졸속으로 진행된 인국공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비판하며 촛불 대신 스마트폰의 불을 밝히고 있다. 인국공 노조는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 합의 없는 일방적인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이라며 "졸속으로 추진되는 정규직화를 즉각 멈추고,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 노조와 소통하라"고 요구했다. 뉴스1

인천국제공항공사 직원과 취업준비생 등 청년들이 지난 8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열린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에서 졸속으로 진행된 인국공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비판하며 촛불 대신 스마트폰의 불을 밝히고 있다. 인국공 노조는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 합의 없는 일방적인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이라며 "졸속으로 추진되는 정규직화를 즉각 멈추고,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 노조와 소통하라"고 요구했다. 뉴스1

자회사 정규직이면 부당해고와 직고용 정책 실패 논란 자초…고용부 "법적 판단 못 하겠다. 법원에 소송하라"

이 질의서에 대해 고용부는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탈락자 부당해고 관련 질의에 대한 회신'이라는 제목으로 답신을 보냈다. 고용부는 이 회신에서 "노조가 주장하는 자회사 정규직으로의 고용보장 여부는 노·사·전(전문가) 합의서 작성 경위와 내용, 근로계약 체결 경위와 내용, 정규직 전환 절차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되어야 할 사안"이라며 "질의 내용만으로는 법률적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또는 법원 소송 등을 통해 판단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갈등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도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계약서의 계약 기간종료 시점이 명확하지 않아 기간제법을 적용하기가 애매했다"고 질의 회신 내용을 설명했다.

인국공 노조 "자회사 정규직이냐 아니냐" 묻자 고용노동부 "법원에 물어보라"며 회신했다.

인국공 노조 "자회사 정규직이냐 아니냐" 묻자 고용노동부 "법원에 물어보라"며 회신했다.

파리바게뜨에 정규직 직고용 명령 등 그동안의 적극적인 비정규직 정책 행보와 정반대 답변

하지만 고용부의 이 같은 답변은 그동안의 고용 정책 행보와 정반대라는 비판이 나온다. 고용부는 파리바게뜨 등에 대해 기간제법을 적용해 직고용 명령을 직권으로 내리는 등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한 강력한 법 해석과 집행을 해왔기 때문이다.

모 지방노동위원회 관계자는 "그동안의 판례와 노동위원회의 심판 등을 보면 법률적 해석과 집행은 근로자에 유리하게 적용하는 것이 맞다"며 "그동안 고용부도 이런 기조로 법률적 행정해석을 해왔는데, 이번 회신은 그와 배치돼 의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용부가 근로계약 기간이 모호한 점을 들어 법원에 판단을 미룬 것도 이상하다"며 "기간의 정함이 없다는 것은 정규직이라는 얘기이고, 안정된 고용을 보장받는다는 의미여서 그렇다"고 덧붙였다.

"근로자에 유리하게 해석해야"…"자회사 흡수·합병에 해당해 근로 승계해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용부 해석대로라면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자회사 근로만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꼴"이라며 "자회사는 원청회사가 마음대로 폐지하면 끝인가"라고 되물었다. 박 교수는 "회사법적 관계로 보면 흡수·합병에 해당한다. 영업의 양도이므로 근로를 승계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다른 차원이다. 회사 양도에 따라 인국공의 정규직으로 승계하든지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고용 안정을 도모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또 "직고용을 이유로 해고한다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거나 근로자에게 심각한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며 "노동법상 정당한 사유가 없는 부당 해고가 된다"고 덧붙였다.

"법적으론 자회사 정규직인데, 정책 논란에 법원으로 떠넘기며 바른말 못하는 듯"

익명을 요구한 고용부 전 고위관계자는 "노조의 질의에 고용부가 난감했던 듯하다. 법상으론 자회사 정규직인데, 정책이 직고용으로 갑자기 바뀌어 바른말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명확한 해석을 내리지 않고 법원으로 공을 넘기는 애매한 태도를 취한 듯하다"고 분석 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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