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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람사전

가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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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철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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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견디게 하는 고마운 예방주사. 겨울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쌀쌀하고 충분히 외롭다. 모든 생명은 가을을 경험하며 겨울을 이겨낼 힘을 비축한다. 만약 여름 다음이 바로 겨울이었다면 생명의 절반은 얼어 죽거나 외로워 죽었을 것이다.

『사람사전』은 ‘가을’을 이렇게 풀었다. 지금 우리는 가을 한복판에 서 있다. 이른 아침은 겨울이고 한낮은 여름인 계절.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듯 여름과 겨울이 손바닥 마주치며 임무 교대하는 계절. 그런데 이 짧은 교대 순간을 감히 계절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사람사전 10/14

사람사전 10/14

그래, 어쩌면 가을은 없는지도 모른다. 실체는 없는데 우리가 있다고 믿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여름 끝과 겨울 끝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그것을 이어 붙이며 가을이라 우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신은 1년을 봄, 여름, 겨울로 삼등분했는데 우리 인간이 신 몰래 계절 하나를 여름과 겨울 사이에 욱여넣었는지도 모른다. 왜? 필요하니까. 꼭 있어야 하니까.

신이 만들었든, 인간이 만들었든, 실체가 있든 없든 어쨌든 가을이다. 우리는 이 계절에 두 가지 힘을 준비해야 한다. 추위를 이겨낼 힘. 외로움을 이겨낼 힘. 이 두 가지를 들고 겨울로 가야 한다.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준비하는 일이 어려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외로움을 이겨낼 힘을 준비하면 그것으로 추위 따위는 쉽게 제압할 수 있다. 바로 사람이다. 사람의 체온이다.

가을이다. 겨울을 준비하세요. 같은 말이다. 가을이다. 사람을 준비하세요.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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