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감염’으로 흔적을 남긴다. 감염의 경로를 추적하면 바이러스가 어떤 틈을 파고들어 확산하는지, 어떤 방역 대책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중앙일보는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사이람과 함께 지난 10개월간 대한민국을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감염 네트워크를 분석했다.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1월 20일부터 8월 30일까지 수도권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7430명이 분석 대상이다. 방역당국과 지방자치단체의 ‘확진자 접촉 추적 데이터’를 활용했다.
사이람·본지 수도권 1~8월 분석 #1차확진자 중 집단감염이 60% #집단감염 46% 종교시설서 발생 #유흥주점 5.4% 방문판매 4.6% #“감염 우려 큰 곳 우선 방역을”
수도권 코로나19 확산의 결정적 원인은 ‘집단감염’이었다. 분석 대상 중 4480명(60.3%)이 집단감염 관련 확진자였다. 감염원 불명(깜깜이 감염)은 1859명(25%), 해외유입은 1088명(14.6%)이었다. 미식별은 3명이다. 집단감염은 2차·3차 등 ‘n차 감염’으로 지역사회에 퍼졌고 새로운 집단감염을 일으켰다. 지난 5월 초 발생한 서울 이태원 클럽의 집단감염이 대표적이다. 이태원 클럽에서 감염된 인천의 학원 강사는 지역사회로 돌아가 학원 수강생에게 옮겼다. 이후 코인노래방→택시기사→돌잔치→경기도 부천 쿠팡 물류센터로 확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태원 클럽의 1차 확진자는 165명이었고 이들을 통해 59명의 n차 감염자가 나왔다.
이른바 ‘수퍼 전파자’의 위력도 확인했다. 전체 확진자의 약 1%(75명)다. 이들은 개인 간 n차 감염으로 인한 확진자(1112명)의 58.9%(655명)에 직간접적인 감염을 일으켰다. 반면 1차 확진자 중 94.3%는 n차 감염을 전혀 유발하지 않았다. 김기훈 사이람 대표는 “수퍼 전파자는 둘 또는 그 이상의 고위험 집단에 중복으로 소속한 감염자들에게서 주로 생겨난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의 전파 주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짧아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처음 시행한 지난 3월 22일부터 5월 초까지 전파 주기는 4.78일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시행한 지난 8월 16~30일은 전파 주기가 1.8일로 줄었다. 확진자 추적조사를 통해 추가 전파의 연쇄 고리를 차단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 그만큼 짧아졌다는 얘기다.
수도권 집단감염 1차 확진자(3071명)의 절반 가까운 1422명은 종교시설에서 발생했다. 이 중 전광훈 목사의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가 892명으로 가장 많았다. 두 번째로 많은 곳은 경기도 용인 우리제일교회(181명)였다. 이 두 곳에서만 1073명의 집단감염 1차 확진자가 발생했다. 대다수 종교시설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켰지만 일부 교회가 집단감염의 통로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방역당국이 ‘중위험’으로 분류한 종교시설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유흥주점·헌팅포차·노래연습장·방문판매·대형학원 등 ‘고위험’으로 분류한 시설(12종)에서 나온 확진자보다 4.5배 많았다. 고위험 시설 중 집단감염 확진자가 전체의 1% 이상을 넘은 곳은 유흥주점(5.4%)과 방문판매(4.6%)뿐이었다. 중위험 시설 중에선 실내체육시설(1.8%)·학원(1.6%)·공연장(1.2%)에서 집단감염 확진자가 비교적 많이 나왔다. 방역당국의 위험시설 목록에 없는 집회와 요양시설·직장·병원·물류센터 등에서도 집단 감염이 다수 발생했다. 김 대표는 “대다수 중·고위험 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집합 금지 등 예방 차원에서 고강도 방역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집단감염에서 n차 감염으로 확산하는 고리를 끊기 위해 역학 추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백신·치료제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추적 조사가 중요하다”며 “통신비로 (1인당) 2만원씩 줄 돈으로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고 역학 조사원을 보강하는 등 추적 조사 비용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그동안 정부가 전방위적 방역 기조를 이어왔다면 앞으로는 정밀 타격 위주로 대응해야 한다”며 “어떤 영역을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신규 확진자 다시 100명대=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로 완화한 지 이틀 만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다시 100명을 넘었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는 13일 밤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02명 늘어 총 누적 확진자는 2만4805명이 됐다고 밝혔다. 일일 신규 확진자가 세 자릿수가 된 건 지난 7일(114명) 이후 엿새 만이다. 신규 확진자 가운데 지역 발생은 69명이다. 수도권에서만 50명이 나왔다.
김태윤·김경진 기자 pin2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