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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억시장 무기화한 中, 한국 기업들 "모델 뽑을때 정치 성향까지 봐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난 7일 미국의 한미 친선 비영리재단인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온라인으로 진행한 밴 플리트 상 시상식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수상소감을 전하고 있다. '밴 플리트 상'은 매년 한미관계에 공헌한 인물 또는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코리아소사이어티 온라인 갈라 생중계 캡처

지난 7일 미국의 한미 친선 비영리재단인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온라인으로 진행한 밴 플리트 상 시상식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수상소감을 전하고 있다. '밴 플리트 상'은 매년 한미관계에 공헌한 인물 또는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코리아소사이어티 온라인 갈라 생중계 캡처

한국 기업들에 중국 주의보가 발령됐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보복 이후 5년 만이다. 중국 네티즌이 방탄소년단(BTS)의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을 문제 삼으며 한국 제품 불매운동에 불을 붙인 게 사건의 발단이다. BTS는 지난 7일 밴플리트상 온라인 시상식에서 “올해 행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의미가 남다르다”며 “우리는 양국(our two nations)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남녀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네티즌이 공세 수위를 올리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휠라 등은 중국 내 BTS 출연 영상이나 BTS가 모델이 된 제품을 내렸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봐야"
해당 기업들은 왜 해당 제품이나 영상을 내렸는 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공식 입장을 내면 오히려 네티즌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으로 업계에선 본다. 이들이 발 빠르게 BTS 삭제에 나선 건 사드 보복에서 얻은 경험칙 때문이다. 롯데쇼핑은 사드 보복이 이어지면서 중국 시장에서 결국 철수해야 했다. 롯데그룹의 중국 진출 전초기지 역할을 맡던 롯데마트는 중국 내 일부 매장에서 발전기를 압수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5대 기업의 한 임원은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봐야 한다는 게 사드 보복에서 한국 기업이 얻은 교훈”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4억 인구를 앞세운 중국의 시장 무기화에 무릎을 꿇은 건 비단 한국 기업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미국프로농구(NBA) 휴스턴 로키츠의 대릴 모레이 단장이 홍콩 시위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자, 로키츠를 후원하던 중국 기업들이 일제히 스폰서 중단을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NBA 경기는 중국 관영 CCTV에서 1년 넘게 사라졌다가 이달 10일부터 재개됐다. 애플과 블리자드도 중국에 굴복한 경험이 있다. 애플은 홍콩 시위를 적극적으로 보도한 미디어 쿼츠 앱을 앱스토어에서 지웠고, 블리자드는 홍콩 지지 구호를 외친 프로게이머를 리그에서 퇴출했다.

BTS 사태, 장기화는 안될 듯
이번 사건은 어떻게 전개될까. 중국 전문가들은 대부분 “사드 보복 때와는 정치·경제적인 상황이 달라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중국학) 교수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한국 반도체가 꼭 필요한 중국 정부 입장에선 네티즌 사이에서 이어진 한국 불매운동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중국 외교부가 12일 오후부터 사태를 가라앉히는 내용의 논평을 내놓고 중국 네티즌들이 이에 호응하고 있는 것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국 네티즌의 반응에 주의하고 있다”며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로 나아가며 평화를 아끼고 우호를 촉진하는 건 우리가 공동으로 추구하고 공동으로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는 “전 세계 반중국 정서를 우려하고 있는 중국 지도부가 반한 감정을 조장하진 못할 것”이라며 “미국과의 갈등, 코로나19 등으로 국제적인 우호 세력을 만들어야 하는 중국 입장을 보자면 아미(BTS 팬덤)를 적으로 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봤다.

기획재정부가 2018년 공개한 '최근 경제동향' 4월호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에 온 중국인 관광객은 작년 3월보다 13.3% 늘었다. 사드 갈등 이후 월 3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던 방문객이 지난달 40만 명 선으로 늘어났다. 방한 중국인 여행객이 증가한 것은 작년 2월 이후 13개월 만이다. 아직 평년 수준을 회복하지는 않았으나 이달 하순 2년만에 재개되는 ’한중 경제공동위원회’에서 중국인의 한국 여행 활성화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15일 오후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이 여행객과 환영객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2018년 공개한 '최근 경제동향' 4월호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에 온 중국인 관광객은 작년 3월보다 13.3% 늘었다. 사드 갈등 이후 월 3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던 방문객이 지난달 40만 명 선으로 늘어났다. 방한 중국인 여행객이 증가한 것은 작년 2월 이후 13개월 만이다. 아직 평년 수준을 회복하지는 않았으나 이달 하순 2년만에 재개되는 ’한중 경제공동위원회’에서 중국인의 한국 여행 활성화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15일 오후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이 여행객과 환영객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만 국내 기업의 고민이 깊은 건 BTS 사태와 같은 사건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중국에서 자국 우선주의와 민족주의가 힘을 얻어가고 있어서다. 사드 보복 피해를 본 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선 광고 모델을 선정할 때도 정치적 성향까지 고민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만일 이런 일이 재발한다면 한국 기업에 냉정한 대응을 할 것을 주문했다. 섣불리 액션을 취하지 말고 일단 사태가 가라앉기를 기다려보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전문가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BTS 광고를 곧장 삭제한 건 중국 네티즌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지 못했다”며 “정치와 경제는 별개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BTS 사태와 같은 사건이 반복될 경우에 대비해 정부 공공 영역과 기업으로 대표되는 민간 부문을 분리해 투 트랙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강준영 교수는 “정부는 물밑 외교력으로 중국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며 “그게 바로 외교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정치와 최대한 거리를 두는 전략으로 대응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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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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