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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없는 학종…'번역가 엄마' 불합격 '전기기술자 아빠' 합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강의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강의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2019학년도 성균관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응시했던 한 수험생은 부모 등 친인척의 직업을 직접 기재했다는 이유로 서류 검증 과정에서 불합격했다. 자기소개서에 '번역을 하셨던 어머니'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똑같은 전형에서 교사추천서에 '전기기술자셨던 아버지'라고 쓴 수험생은 서류 검증에서 '문제없음' 처리됐다. 심지어 어머니가 아동센터에서 근무한다고 기재한 두 명 수험생은 각각 서류 검증에서 '불합격', '문제없음'으로 처리됐다. 동일한 서류 평가에서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13일 교육부가 건국대·경희대·고려대·서강대·서울대·성균관대 등 6개 대학에 대한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정시 확대를 앞두고 진행한 13개 대학 학종 실태조사에 따른 후속 조치다. 당시 교육부는 고교등급제 적용이 의심되는 6개 대학에 대해 추가 감사를 진행키로 하고, 지난해 11월 13일부터 12월 6일까지 이들 대학의 학종 운영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각 대학의 불공정 사례가 총 14건 적발됐다. 성균관대가 4건으로 가장 많았고 건국대 3건, 고려대·서강대·서울대 각 2건, 경희대 1건 순이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중징계 7명, 경징계 13명 등 각 대학 관계자 108명에게 신분상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지난해 감사의 중점 점검 대상으로 밝혔던 고교등급제 적용 의혹은 확인 되지 않았다. 대학가에선 "교육부의 감사가 대입 정시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성균관대, 불공정 사례 4건 적발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내 자리한 600주년 기념관 전경. 성균관대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내 자리한 600주년 기념관 전경. 성균관대

성균관대 2019학년도 학종 서류검증위원회에서 부모 등 친인척 직업을 기재한 응시자 82명 중 45명을 불합격 처리했다. 하지만 또 다른 37명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처리했고 이 중 4명이 최종 합격했다.

이 대학은 2명이 교차 평가해야 하는 2018·2019학년도 학종 서류전형에서 평가자를 1명만 배정해 두 번 평가하도록 하고, 2019학년도 학종에서 교사추천서 유사도 '의심' 또는 '위험수준'인 서류를 별도 소명없이 평가 진행한 사실도 적발됐다

교육부는 성대에 관계자에 대한 중징계 등 신분상 조치를 내리고 서류 검증 과정에서 친인척 직업을 기재해 탈락한 이들에 대한 구제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점수 번복·전원 탈락도 적발 

학생들이 거리 두기를 유지하며 시험을 치르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학생들이 거리 두기를 유지하며 시험을 치르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점수를 번복하거나 지원자 전원을 탈락시킨 사례도 적발됐다. 건국대는 2019학년도 학종 고른기회전형 면접평가에서 특성화고 출신 지원자 모두에게 부적격을 부여했다가 심의위원회의 지적을 받고 한 명에 대한 점수를 번복해 합격 처리했다.

서울대도 문제점을 지적 받았다. 서울대의 2019학년도 지역균형선발 면접에서 모 학과는 '40%는 A등급 이상을 부여하라'는 학교 자체 권고사항과 달리 '학업능력 미달'을 이유로 지원자 전원에게 과락인 C등급을 부여해 한 명도 선발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건국대에 경징계 및 경고, 서울대에 기관경고 조치하도록 했다.

'정시 확대 위한 명분 쌓기' 비판도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7차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7차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특별감사를 통해 교육부는 학종의 일부 불공정 사례를 확인했다. 하지만 지난해 감사를 예고하면서 밝혔던 각 대학의 '고교등급제 의혹'은 확인하지 못했다. 때문에 대학가에선 "학종의 불공정성을 밝히겠다는 목표와 달리 사실상 대통령이 공언한 정시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였다"는 반발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감사 결과를 만들기 위해 학생 선발 공정성에 직접 관련되지 않은 문제에도 과도한 징계를 내렸다"며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부정 논란이 불거지며 정부가 사태를 무마하는 차원에서 각 대학의 학종을 문제삼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구본창 정책국장은 "교육부가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마련하면서 이뤄진 감사"라며 "학종이 도입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이 입시 비리를 저지르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경미·남윤서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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