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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숙제 해치운 김세영 "다음 목표는 세계 1위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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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셀카를 찍는 김세영. [AFP=연합뉴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셀카를 찍는 김세영. [AFP=연합뉴스]

'메이저 퀸' 등극 다음날 전화 인터뷰 #"남 실수보다 내가 잘해야 했던 경기" #"트로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보관할거야" #"함께 경쟁한 인비언니는 멋있는 사람" #"수식어 자꾸 생겨 좋아...목표 차근차근 이룰 것"

 "숙제를 하나 해치웠어요. 전날까지도 몰랐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뭔가 끝났구나. 해냈구나' 하는 느낌이 막 밀려오더라고요."

12일 밤(한국시각)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홀가분한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편했다. 전날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미국 진출 6시즌 만에 메이저 챔피언에 오른 김세영(27)을 전화 인터뷰했다. 전날 밤 어떻게 보냈는지 물었더니, 메이저 우승을 자축하는 시간보다 우승한 기쁨을 남들과 나누는데 더 할애했단다. "많은 지인들과 연락하고 계속 얘기하느라 시간이 금방 가더라"던 그는 "친구들 중에서 (너무 좋아서) 우는 친구들도 있더라. 왜 우냐고 했는데, 그만큼 기뻐해줘 참 고마웠다"고 말했다.

2015년 LPGA 데뷔 후 매 시즌 1승 이상 거뒀던 김세영이었다. 그만큼 꾸준했고, 어느새 두자릿수 우승(11승)을 거둔 그였어도 메이저 우승은 조금 긴장될 법도 했다. 최종 라운드 전날엔 알람 시계를 잘 못 맞추는 바람에 예정보다 대회장에 30분 늦게 도착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그는 "잠을 못 자진 않았는데 뒤척였다. 알람 시간을 잘못 맞춰놨다. 출발을 6시 반에 했어야 했는데 7시10분에 했다. 호텔 안에선 몰랐다가 출발할 때서야 내가 늦게 나갔다는 걸 뒤늦게 이해했다. 긴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세영에겐 당일 지각이 큰 액땜을 한 셈이 됐다. 그는 "시간에 쫓긴 그런 상황에서 당황했을텐데, 시합 안에서도 이럴 수 있겠다고 하고 마음을 다 잡고 나 자신한테 집중하려고 했다. 오히려 나한텐 좋은 일이 됐다"고 말했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는 김세영. [AP=연합뉴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는 김세영. [AP=연합뉴스]

김세영은 이 대회 첫날부터 우승권은 아니었다. 첫날 1오버파였지만, 2라운드에서 5타를 줄여 선두로 오른 뒤로 우승 기회를 잡았다. 언젠가 해내야 할 메이저 우승이었지만, 한번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로지 남보단 자신에게 더 집중하려고 했다. 김세영은 "파이널 라운드에서 같은 조에서 쳤던 안나 노르드크비스트나 브룩 헨더슨 모두 잘 치는 선수들이고, 다른 선수들 모두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메이저 대회다 보니 좀 더 실수 없는 플레이를 잘 해야겠단 생각이었다. 남의 실수를 바라는 것보다 내가 잘 하는 게 우선이라는 마음으로 나섰다"고 했다. 어려운 코스라는 평가에도 최종 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7개를 기록해 코스 레코드를 세운 그는 겸손함도 빼놓지 않았다. "대회 코스가 처음에 보기를 하면 김 새는 흐름이 있었다. 3~4타 차라도 끝까지 안심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실수 했는데 운도 많이 따랐다. 러프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바운스 돼서 페어웨이에 들어간 게 최종 라운드 때 3~4개 됐다. 이런 큰 대회엔 운도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마인드를 잡는데 좀 더 신경쓴 것으로 알려졌다. 대회 2주 전부터 준비에 집중했다. 그는 "원래 시합 들어가면 스스로 통제하는 스타일이다. 외부적인 것을 의도적으로 차단해서 집중하려는 게 있다. 내가 집중 안 할 때는 성격이 유들유들해서 잘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이번 시합 앞두고 내 감정에 집중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스스로도 이번 대회 우승 비결로 마인드를 꼽았다. 그는 "중계 화면을 본 가족들도 내가 이번에 침착하게 보인다고 하더라. 느낌을 잡고 가려고 했다. 게임을 끌고 가려고 놓치지 않으려고 한 게 표정에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보다 많은 갤러리들 앞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있을 법 했다. 그래도 김세영은 "대회 당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대회 골프장 회원 대상으로 100명 관전을 허용했다. 회원들을 관람하게 해줘 박수 소리도 컸고 우승하는데 크게 축하해줘 마지막 라운드 느낌도 더 받았다"고 말했다. 우승 트로피가 제법 무거웠단 그는 "한국 집에 우승 트로피를 진열해놨는데, 이 대회 우승 트로피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야 하겠다"고 말했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는 김세영. [AP=연합뉴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는 김세영. [AP=연합뉴스]

특히 김세영은 우승 경쟁을 하던 박인비를 향한 고마움도 빼놓지 않았다. 김세영에 5타 차 준우승한 박인비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세영은 언터처블이었다. 메이저 우승자다운 플레이를 펼쳤다"고 진심어린 축하를 보냈다. 김세영은 "인비언니 같은 '대언니'와 대결 구도가 됐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나중에 언니 인터뷰 내용을 봤는데 너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정말 멋있는 언니다. 그런 점에서도 보고 배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상황에 잠시 국내 대회에 나섰다가 지난 8월 미국으로 건너간 김세영은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했다고 했다. 선수들끼리 접촉에 관한 부분에서 조심해지면서 개인 생활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 만큼 좋아진 부분도 있다고 했다. 그는 "가족들을 오래 못 봐서 보고 싶기는 해도 그럴수록 좀 더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혼자 있으면서 한국 언니들이 많이 챙겨주고 있다. 언니들한테 고맙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에 그는 영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을 잠시 놓기도 한다. 요즘엔 인기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애청한다고 한다.

LPGA닷컴 편집장인 스티브 유뱅크스는 김세영의 우승 직후 "김세영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 안티 디바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비춰지면 그는 극적인 순간을 연출한다"고 평가했다. 김세영은 별명도 많다. 역전의 명수, 연장의 여왕, 승부사, 빨간 바지의 마법에 이어 이젠 메이저 퀸도 붙었다. "과찬이다. 이런 과찬은 그래도 받겠다"며 웃으며 말한 김세영은 "수식어가 자꾸 생겨서 좋다. 날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인데,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김세영. [USA투데이=연합뉴스]

KPMG 여자PG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김세영. [USA투데이=연합뉴스]

김세영은 이날 발표된 여자 골프 세계 랭킹에서 2위까지 올라섰다.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낸 덕에 어느새 세계 톱 턱밑까지 쫓아올라왔다. 인터뷰가 공식 발표 전 시간이라 '세계 2위에 오를 것 같다"고 기자가 귀띔하자 그는 "아 진짜?"를 되물으며 '오 나이스(nice)!'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능하다면 세계 1위도 해보고 싶다. 세계 1위에 도전~ 도전해야죠"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이룬 메이저 우승이어서 값졌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것도 많다. 골퍼로서 목표한 바를 차근차근 이뤄가고 싶다.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가야 할 길' 중에선 그랜드슬램, 올림픽, 세계 1위도 있겠지만 그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작년보다 나은 올해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역시 '꾸준함의 대명사' 김세영다운 목표였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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