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항명과 역항명의 시대

중앙일보

입력 2020.10.1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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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에디터

조강수 사회에디터

지난해 9월 조국 사태의 소용돌이를 뒤로하고 해외로 떠났던 전직 검찰 간부가 최근 귀국했다. 자가격리 중인 그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10개월 만에 천지개벽한 검찰 조직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검찰은 거악 척결이 사명
인사권자 좇는 신주류 유감
윤석열, 계속 목소리 내라

“예전에 수사에 정치를 개입시키려는 검찰총장을 비토하기 위해 연판장을 돌린 적이 있다. 권력을 견제하고 거악을 척결한다는 검사 본연의 임무를 지키려고 ‘정당한 항명’을 주도했다. 하지만 서울동부지검의 추 장관 아들 건 처리 과정을 보며 요즘 검사들은 조직보다 개인의 영달을 좇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들이 강력한 수사 중립 의지를 가진 검찰총장을 제치고 인사권자인 대통령(또는 장관) 쪽으로 알아서 엎드리다니. 항명의 참뜻에 역행하는 ‘역(逆)항명’의 시대 아닌가.”

다 계획이 있었던 건지, 얼떨결에 이리됐는지는 모른다. 검찰 내 신주류로 터 잡은 추미애 사단이 꾹꾹 눌러왔던 화약고가 법정에서 터졌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강기정에 5000만원 전달”이란 폭탄 발언 얘기다.

굳이 법정에서 폭로한 이유는 뭘까. 검찰 수사(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지난 4월 검거·구속된 이후 김씨는 사건에 연루된 청와대와 여권 인사 이름을 댔다. 청와대 행정관,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 등이 그렇게 구속됐다. 하지만 지난 8월 검사장급 간부 인사 전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돌연 남부지검장이 사직하고 그 자리에 추 장관 측 인사가 부임하면서 수사는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금품 로비 의혹이 불거진 기동민 의원 등 전·현직 정치인 조사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민감한 진술들은 슬그머니 묻혔다. 수사 동력이 떨어지며 사건은 수면 아래로 깔렸다. 누가 봐도 수사 축소·은폐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서소문 포럼 10/13

서소문 포럼 10/13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를 받는 옵티머스 환매중단 사건 수사도 같은 길을 걸었다. 여권 인사 로비 의혹을 뒷받침하는 진술과 문건이 진작 나왔는데도 본격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이모 행정관이 옵티머스 주식 지분 9.8%를 갖고 있다가 여직원 명의로 차명전환했다는 진술을 받고도 모른 체했다. 전형적 봐주기 수사다.

이씨의 법정 증언 이후 국민은 몰랐고 검찰은 쉬쉬했던 사실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 헤엄치는 오리의 물 위 자태는 우아해 보이지만 물 아래쪽에선 오리발이 여러 번 왔다갔다한다. 호수의 주인을 위해 관람객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오리도 힘들다. 지금 신주류 검찰의 자화상이 딱 그 모양이다.

검찰이 현 정부의 개혁 대상 0순위에 오른 결정적 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였다.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분산해야 한다는 논리가 거기서 나왔다. 그 이전엔 ‘권력의 시녀’라는 게 개혁 명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검찰 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 보장에 방점이 찍혔다. 하지만 추 장관이 취임 후 네 차례 검찰 인사를 통해 검찰 주류를 특정 지역 출신으로 재편한 결과는 도루묵이다. 몇 단계 더 심화돼 ‘권력에 매우 충실한 시녀’가 만들어진 형국이다. 정치권 수사 때 수사 대상 여야 인사 숫자까지 균형을 맞추려 했던 흔적은 사라지고 없다.

검찰 본연의 사명은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는 거악(巨惡)의 척결이다. 죽은 권력과 산 권력에 차별을 둬선 안 된다. 법의 여신이 휘두르는 칼은 죄의 무게에 따라 공정해야 한다. 지금 그런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수사도 증발해 버린 지 꽤 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서울중앙지검·남부지검 지휘부의 패싱이 수인한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라임·옵티머스엔 권력형 게이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윤 총장이 두 사건의 주요 진척 상황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것은 ‘유령 총장’ 취급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무리 장관과 총장이 척을 졌다고 해도 검사와 검사장, 검찰총장까지 반목한 적은 없었다. ‘검찰 내분’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윤 총장이 신세 한탄이나 하며 뒷짐 지고 있을 때는 아니다. 직을 걸고 전국에 생중계되는 국정감사장에서 상급자의 수사 방해를 거침없이 폭로하던 7년 전 그 검사는 어디로 갔나. 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건에는 차마 나서기 어려웠을 수 있다. 이제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어제 옵티머스 수사팀 추가 증원 지시는 첫걸음이다. 독립적 특별수사본부 설치도 고려해봄 직하다. “총장은 그때 뭘 했느냐”는 후배들의 물음에 어떤 답을 낼지 번민해야 할 때다.

조강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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