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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가장 존경받는 직업 vs 가장 저평가된 직업, 소방관이 말하는 소방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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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복과 우비를 착용한 소중 학생기자단이 환하게 웃으며 걷고 있다. 왼쪽부터 맹서율(서울 중대초 5)·김율아(경기도 소하초 6) 학생기자·이준율(경기도 호동초 5) 학생모델·한채연(경기도 불곡중 1) 학생기자.

방화복과 우비를 착용한 소중 학생기자단이 환하게 웃으며 걷고 있다. 왼쪽부터 맹서율(서울 중대초 5)·김율아(경기도 소하초 6) 학생기자·이준율(경기도 호동초 5) 학생모델·한채연(경기도 불곡중 1) 학생기자.

궁금하지 않나요

소방관이 사막서 마라톤 뛰고 폐소방복 새활용하는 이유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해 24시간 깨어있는 이들이 있어요.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싸우고 사람을 구하죠. 화재를 진압할 뿐만 아니라 재난·재해를 비롯한 위급 상황에 출동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지기도 합니다. 이들이 누구냐고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타인을 책임지는 수호자, 소방관이에요. 2016년 포털사이트 알바몬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방관·구급대원은 대학생이 꼽은 ‘존경하는 직업’ 1위에 올랐어요.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 가장 저평가된 직업’ 1위로 선정됐죠.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걸맞은 대우는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에 정부는 소방관 처우 개선과 효율적 재난 대응을 위해 지난 4월 1일 전국의 모든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했죠. 이번 주 소년중앙은 국민의 안전과 소방관 권리 보장을 위해 뛰는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4대 극지 마라톤에 도전하는 정은주 전남 담양소방서 소방관과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Upcycling)한 제품을 제작·판매해 수익금 일부를 소방단체에 기부하는 이승우 119레오 대표인데요. 소방관은 무슨 일을 하는지, 국가직 전환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소방관 권리 보장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함께 알아볼까요.

글=박소윤 기자 park.soyoon@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율아(경기도 소하초 6)·맹서율(서울 중대초 5)·한채연(경기도 불곡중 1) 학생기자·이준율(경기도 호동초 5) 학생모델

2019년 11월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소방공무원법, 소방기본법, 지방공무원법, 지방자치단체에 두는 국가공무원의 정원에 관한 법률, 지방교부세법, 소방재정지원특별회계 및 시도소방특별회계 설치법 등 소방관 국가직화 6개 법률안과 소방복합치유센터 설립 근거가 담긴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이 통과됐어요. 1973년 2월 지방소방공무원법 제정 이후 47년 만에 지방직 소방공무원 5만2516명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거죠. 소방공무원 국가직화에 따라 소방관 처우 개선은 물론, 소방서비스의 지역 격차도 해소될 전망이에요.

맹서율·김율아 학생기자·이준율 학생모델·한채연 학생기자(왼쪽부터)가 일일 소방관으로 변신했다. 방화복·우비를 착용한 소중 학생기자단의 모습.

맹서율·김율아 학생기자·이준율 학생모델·한채연 학생기자(왼쪽부터)가 일일 소방관으로 변신했다. 방화복·우비를 착용한 소중 학생기자단의 모습.

국가직 전환 이전 소방공무원의 근무 여건은 매우 열악했어요. 특히 인력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였죠. 2017년 기준 소방공무원 운영정원은 법정 정원(5만8976명)의 68.9%인 4만605명에 그쳤습니다.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 인구는 ▶2017년 1091명 ▶2018년 1004명 ▶2019년 926명으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지만, 일본(779명)·미국(911명)보다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었죠. 소방공무원 1명이 담당해야 하는 면적의 지역별 격차도 상당했어요. 서울은 0.09㎢인데 비해 강원은 5.22㎢로 여의도 면적(2.9㎢)의 약 2배에 달하는 크기를 소방공무원 1명이 담당해야 했죠.

이렇게 소방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근 5년 사이 2509명의 소방공무원이 공무 중 다치거나 사망했어요. 매년 평균 502명에 달하는 숫자죠. 순직(직무 수행 중 사망)과 공상(공무 수행 중 입은 부상)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습니다. 순직과 공상을 인정받지 못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매년 10여 건에 이르지만, 이 중 20%가량만이 순직·공상을 인정받았죠. 공무상 재해 증명 책임조차 소방관 개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방관 트라우마’도 문제로 꼽혔어요. 소방청이 2019년 5~6월 두 차례에 걸쳐 전국 소방공무원 5만22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5.6%인 2704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죠. 우울증 위험군은 2203명(4.6%), 극단적 선택 위험군은 2453명(4.9%)에 달했고, 참혹한 현장에 노출된 경험은 연간 평균 7.3회였어요. 소방공무원의 평균 수명이 69세로 공무원 직군 가운데 가장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죠. 이는 한국인의 평균 수명인 81세보다 무려 12년 짧습니다.

소방직 국가직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건 2014년부터예요. 광주 소방헬기 추락사고 등으로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이 알려지면서 처우 개선을 위해 국가직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죠. 소방공무원이 직접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등에서 1인 시위도 했고요. 이후 2019년 4월 4일 강원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을 계기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사흘 만에 정부 답변 기준인 20만 명의 동의를 얻었죠. 문재인 대통령이 소방공무원 국가직화 법률안의 신속 처리를 호소하면서 같은 해 11월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2020년 4월 1일 지방직 소방공무원 5만2516명이 국가직으로 바뀌었습니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우선 재난이 일어났을 때 초기부터 관할 구분을 초월한 대응이 가능해지죠. 과거에는 관할에 얽매여 초기 출동이 늦어지기도 했는데요. 국가직화 이후에는 관할 소방서보다 더 가까운 이웃 지역 소방서가 있다면 두 소방서에서 모두 출동할 수 있습니다. 지역별 격차도 줄어들고 있어요. 중앙정부에서 인력·시설·장비 등에 직접 투자함으로써 광역 시·도에 따른 소방 역량·서비스 차이를 개선하고 있죠. 열악한 근무 환경·스트레스·고위험에 노출된 소방공무원에 대한 처우도 개선되는데요. 소방관 치료와 공무상 재해 입증 자료 확보 및 연구를 맡게 될 ‘국립 소방병원’이 오는 2024년 충북혁신도시에 건립될 예정입니다.

소방의 소명 품고 달린다, 정은주 소방관 

전남 담양소방서 소속 정은주 소방관. 지난해 8월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에 도전한 정 소방관은 119레오와 함께 ‘정은주 소방관 250㎞ 사막을 달리다’ 펀딩을 진행했다.

전남 담양소방서 소속 정은주 소방관. 지난해 8월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에 도전한 정 소방관은 119레오와 함께 ‘정은주 소방관 250㎞ 사막을 달리다’ 펀딩을 진행했다.

소방관은 무거운 장비를 차고 부상자를 부축해야 합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죠. 전남 담양소방서 소속 정은주 소방관은 과거 산악구조대로 근무하며 ‘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대요. 오지 마라톤에 도전한 이유이기도 하죠. 4대 극지 마라톤 중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정 소방관은 지난해 8월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을 앞두고 이승우 119대표 대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어요. 바로 ‘정은주 소방관 250㎞ 사막을 달리다’ 펀딩입니다. 정 소방관이 달리는 모습이 담긴 물병과 소방관들이 입던 방화복으로 제작한 텀블러백을 리워드로 제공한 펀딩을 통해 126만8000원이 모였고, 제작비·배송료를 제외한 금액에 정 소방관과 이 대표가 기부금을 보태 총 82만8130원을 대한민국재향소방동우회에 전달했죠. 해당 기부금은 투병 중인 소방관을 위해 쓰일 예정입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국민의 생명과 동료 소방관을 위해 달리는 정 소방관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소셜캠퍼스 온을 찾았습니다.

채연 소방관이라는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9~2016년까지 직업군인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때 현장에 투입됐죠. 구조 활동을 하면서 제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 앞으로도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꿈꿨고, 결국 꿈을 이뤘어요.

서율 제 친구의 장래희망도 소방관이에요. 소방관이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아직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우선 소방관이 적성에 맞는지 알아보는 게 가장 중요해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마냥 멋있어 보일 수 있지만, 힘들 때도 잦습니다. 현장 활동을 하다 보면 뜨거운 불길과 싸워야 하고,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많은 피를 흘리는 부상자를 보게 될 수도 있어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하고, 다양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직업이죠. 트라우마가 생겨 고통받는 소방관도 있답니다. 소방관이 되고 싶다면 소방 안전체험관, 소방관 직업체험교실 등을 방문해 각종 재난 상황을 가상으로 체험해보면 좋을 거예요.

채연 소방관의 가장 큰 고충이 사고 현장에 대한 트라우마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말을 들었어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에요. 인구 10만 명당 극단적 선택을 한 소방관이 31.2명에 달하죠.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12.1명보다 2.6배나 높은 수치예요. 그만큼 마음이 아픈 소방관이 많다는 뜻이겠죠. 저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합니다. 하늘·산·나무를 보며 뛰는 걸 좋아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땀을 흘려요.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상쾌해진 기분이랍니다. 소중 친구들도 스트레스를 받을 땐 머리를 비우고 가볍게 달려보세요. 마음의 짐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준율 소방관이 되려면 체력도 좋아야 하고, 용기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 직업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소방관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항목은 무엇인가요.

소방공무원이 되려면 ▶필기시험 ▶체력시험 ▶신체·인·적성 검사 ▶면접 등 임용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요. 무엇보다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합니다. 사고 현장에는 정해진 답이 없어요. 언제 어디서든 위험이 도사려 생명을 위협하죠.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력을 지녀야 위협을 이겨낼 수 있고, 요구조자뿐 아니라 동료, 나아가 자신의 생명까지 구할 수 있습니다.

준율 소방관이 된 후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현재 전라남도 담양에 근무하고 있어요. 지난여름 담양에 500㎜가 넘는 폭우가 내리면서 마을 대부분이 침수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죠. 119 신고 시스템조차 마비될 정도였어요. 담양소방서의 모든 소방관이 비상 소집돼 인명구조를 시작했는데, 소방차량이 부족해지자 다들 개인 차량을 몰고 담양 이곳저곳을 누비며 구조 활동을 펼쳤죠. 장비는 잠수 슈트와 로프뿐이었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몸을 던져 침수 지역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현장과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서율 4대 극지 마라톤에 출전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소방관 활동만으로도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은데, 마라톤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계를 이겨내자.’ 소방관이 된 후 제가 쭉 지녀온 신념입니다. 앞으로 어떤 현장에 출동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마다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 생길 거예요. 하지만 소방관이기에 이겨내야죠.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더 강해지기 위해 극지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칠레 아타카마 마라톤,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을 완주했고, 남은 이집트 사하라사막 마라톤, 남극 마라톤까지 완주할 계획이에요.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에 도전했을 때처럼 119레오와 기부 프로젝트를 계속할 거고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고, 금전적 도움이 필요한 곳에 힘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라톤은 제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율아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후 달라진 점이 궁금해요. 개선됐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요.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후 인력·장비 충원과 함께 처우 개선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어요. 특히 지방의 경우 서울보다 소방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는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죠. 그런데도 지역별 격차는 여전히 남아있어요. 2020년 8월 기준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 인구가 가장 많은 세 곳의 평균 담당 인구수는 1233명인 데 비해 가장 적은 세 곳의 평균 담당 인구수는 458명으로 2.69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죠. 꾸준하고 체계적인 충원이 필요해요. 추가로  개선됐으면 하는 점은요. 소방관 동료들이 다치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대부분 퇴근 후 사비로 치료를 하거든요. 작은 부상은 공상 인정이 힘드니까요. 이런 작은 부상이 쌓이면 큰 부상으로 이어지곤 하죠. 공상 인정에 대한 기준이 완화됐으면 해요.  

서율 소방관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인가요.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마음가짐이죠. 국민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소방관입니다. 국민의 안전이 소방관의 안전이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소방의 소명입니다.

영웅의 옷을 새활용한다, 이승우 119레오 대표 

이승우 119레오 대표가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한 가방을 메고 포즈를 취했다.

이승우 119레오 대표가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한 가방을 메고 포즈를 취했다.

“서로가 서로를 지킨다.” 119레오(REO·Rescue Each Other)에 담긴 메시지예요. 119레오는 수명을 다한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새활용)해 가방 등 패션 상품을 제작하고 수익금 절반을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건국대학교 동아리 프로젝트로 시작해 2년 만에 법인으로 성장했죠. 이 대표를 비롯한 멤버들은 암 투병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펀딩과 문화행사를 통해 소방관들의 권익 향상 활동을 진행하고 있어요.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119레오 사무실을 찾은 학생기자단이 정은주(맨 왼쪽) 소방관에게 불에 그을린 폐방화복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119레오 사무실을 찾은 학생기자단이 정은주(맨 왼쪽) 소방관에게 불에 그을린 폐방화복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대표가 119레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고(故) 김범석 소방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입니다. 8년간 사고 현장을 누빈 김 소방관은 희귀암인 혈관육종암 판정을 받고 7개월 만인 2014년, 31살의 나이에 눈을 감았죠. 평소 건강했던 김 소방관을 떠나보낸 유가족은 공무상 상해를 인정해 달라며 공무원연금공단에 순직유족보상을 청구했지만 거부당했어요. 질병과 공무 수행의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죠.

“공무원은 공무원연급법에 따라 공상 승인을 받아야 치료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죠. 그런데 증명 책임이 당사자·가족에게 있어 어려움을 겪는 케이스가 많아요. 당시 암 투병 소방관 150여 명 중 공상 인정 사례는 1~2건에 불과했죠. 공상 승인을 받지 못하면 엄청난 치료비를 개인이 감당해야 하죠. 각종 유독물질과 사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소방관의 공상 승인을 일반 공무원과 똑같은 조건에서 심사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일었어요.”

지차체 소방서에서 수거한 폐방화복. 2중 물세탁·가공 과정을 거쳐 가방으로 재탄생한다.

지차체 소방서에서 수거한 폐방화복. 2중 물세탁·가공 과정을 거쳐 가방으로 재탄생한다.

모두가 알지 못했던 부분을 알리면서 암 투병 소방관에게 실질적인 도움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중 탄생한 게 바로 119레오예요. 구급자·로프·사다리 등 여러 소방장비가 있지만, 소방관을 지켜주는 방화복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사업 초반 주변의 반응은 냉랭했다고 해요. 폐방화복을 수거하기 위해 퇴직한 소방관을 위한 단체인 대한민국재향소방동우회와 전국 각지의 소방서를 찾았지만, 모두 고개를 저었죠. 이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수차례 문을 두드렸고, 서울 강동·강북, 인천 계양 소방서 등에서 폐방화복을 받게 됐어요.

디자인은 이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이 직접 합니다. 어떻게 하면 디자인과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죠. 뛰어난 질은 덤입니다. 방화복은 섭씨 500도의 열기에도 견디는 특수소재 아라미드 섬유로 만들어지거든요. 폐방화복으로 만든 가방도 그만큼 튼튼할 수밖에 없죠. 가방 외에도 소방관이 안전을 위해 소지하는 로프 연결용 금속 고리 카라비너에서 모티브를 얻은 카라비너 팔찌, 소방관이 실제 현장에서 사용한 소방호스를 뒤집어 만든 카드지갑 등 다양한 제품을 제작합니다.

폐방화복·소방호스 등을 활용해 만들진 119레오의 제품. 백팩·크로스백·슬링백부터 지갑·팔찌까지 다양하다.

폐방화복·소방호스 등을 활용해 만들진 119레오의 제품. 백팩·크로스백·슬링백부터 지갑·팔찌까지 다양하다.

소방관이 실제로 사용한 소방호스를 업사이클링해 만든 카드지갑.

소방관이 실제로 사용한 소방호스를 업사이클링해 만든 카드지갑.

폐방화복을 활용해 만든 자수 키링. 화재와 재앙을 막아준다는 상상의 동물 ‘해치’를 수놓았다.

폐방화복을 활용해 만든 자수 키링. 화재와 재앙을 막아준다는 상상의 동물 ‘해치’를 수놓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폐방화복이 가방으로 새활용되나요?”(채연) “방화복은 법적으로 3년이 지나면 폐기돼요. 지자체 소방서에서 폐방화복을 수거하죠. 불에 그을린 부분도 있고, 때가 탄 부분도 있기 때문에 깨끗하게 세척해야 합니다. 2중 물세탁한 방화복을 분해한 후 가방·지갑·파우치 등 용도에 맞게 원단을 잘라 새 제품으로 만들죠. 실밥이 지나간 자리는 활용할 수 없어 소방복 한 벌로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은 한정돼 있어요.” 폐방화복과 업사이클링 제품을 비교해본 소중 학생기자단이 깜짝 놀랐어요. “방화복이 정말 무거워요”(준율) “가방은 깨끗한데 폐방화복은 여기저기 더럽네요. 정말 같은 소재 맞나요?”(율아)

이준율(왼쪽) 학생모델과 한채연 학생기자가 각각 119레오 메신저백·백팩을 착용했다.

이준율(왼쪽) 학생모델과 한채연 학생기자가 각각 119레오 메신저백·백팩을 착용했다.

“소방관 권리 보장과 업사이클링 제품에 관심이 생겨서 구매했어요.” 서율 학생기자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어요. 119레오 키링이었죠. “서율 학생기자 같은 친구들을 만나면 119레오의 취지와 의미가 잘 전달된 것 같아 정말 뿌듯해요. ‘소방관 권리 보장에 동참하고 싶다’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되니 좋다’는 피드백이 많죠. 현직 소방관 중 119레오 제품을 직접 구매해 사용하는 분들도 있어요. ‘고맙다’는 한마디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맹서율 학생기자가 119레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백팩을 들어보였다. 넉넉한 수납공간이 마음에 든다고.

맹서율 학생기자가 119레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백팩을 들어보였다. 넉넉한 수납공간이 마음에 든다고.

김율아 학생기자가 멘 크로스백은 작고 가벼워 나들이용으로 적합하다.

김율아 학생기자가 멘 크로스백은 작고 가벼워 나들이용으로 적합하다.

119레오는 글로벌 사회적 기업을 꿈꾸고 있어요. 한국뿐 아니라 지구 각지에서 땀 흘리는 소방관의 처우 개선을 위해 힘쓸 예정이죠. “전 세계에서 소방관에게 방화복이 공급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10여 개 정도예요. 정말 안타깝죠. 일부 개발도상국의 소방관은 방화복이 없어 우비를 입고 화재 현장에 출동한다고 해요. 선진국의 방화복을 재활용해 개발도상국의 소방관에게 새로운 방화복을 공급하고 싶어요. 선순환을 만드는 거죠.”

지난해 9월 김 소방관이 공무상 상해 소송에서 5년 만에 승소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김 소방관의 유가족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보상금 부지급 결정 취소소송 사건에서 “진료기록 등을 살펴본 결과 망인의 공무 수행과 질병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은 부당하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했죠. 그 자리에는 이 대표가 있었습니다. “승소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는데 울컥했죠. 이제 시작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방관이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주체로 인식되는 날까지 계속해서 달릴 거예요.”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정은주(맨 왼쪽) 소방관, 이승우(맨 오른쪽) 대표와 119안전센터 앞에 선 소중 학생기자단.

정은주(맨 왼쪽) 소방관, 이승우(맨 오른쪽) 대표와 119안전센터 앞에 선 소중 학생기자단.

이번 취재를 통해 소방관의 고충에 대해 알게 됐어요. 소방관이 되기 위해서는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고, 현장 출동을 위한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도요. 실제로 소방관이 입는 방화복을 들어봤는데 매우 무거웠습니다.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장비까지 들고 출동해 화재를 진압하고 생명을 구한다니 소방관이 존경스러웠죠. 119레오는 소방관만큼 멋진 일을 하는 단체였어요.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 해 제품을 만들고, 수익금은 소방관을 위해 기부한다고 해요. 앞으로 119레오 같은 사회적 기업이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김율아(경기도 소하초 6) 학생기자

평소에도 재난 상황에 맞서 우리를 지켜주는 소방관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번 취재를 통해 소방관의 권리 보장과 처우 개선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방화복을 입어봤는데, 1분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겁고 답답했습니다. 여름이 아닌데도 땀이 비 오듯 흘렀죠. 힘들게 일하는 소방관을 생각하며 일상생활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119레오에서는 소방호스 뒷면으로 제작한 카드지갑이 인상 깊었어요. 가볍고 튼튼한 데다가 환경 보호와 기부까지 할 수 있어 일석삼조였습니다.  맹서율(서울 중대초 5) 학생기자

불이 무섭지 않냐는 제 질문에 정은주 소방관님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고 생각하면 불이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라고 하셨어요. 정말 멋진 대답이었어요. 정은주 소방관님은 동료 소방관을 돕기 위해 극지 마라톤도 두 개나 완주하셨대요. 119레오와 힘을 합쳐 기부 캠페인도 진행했죠. 세상에는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119레오가 널리 알려져 더 많은 소방관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준율(경기도 호동초 5) 학생모델

항상 우리 국민을 위해 힘써 주시는 소방관. 국가직 전환 전에는 지역에 따라 인력·장비 격차가 심했지만 국가직 전환 이후 훨씬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어요. 우리의 안전을 위해 생명을 걸고 일하는데, 정작 우리는 고마움을 모르고 있었다는 걸 느끼게 됐죠. “국민의 안전이 소방관의 안전이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고 싶다”는 정은주 소방관님의 말씀이 취재 후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119레오의 제품은 폐방화복으로 업사이클링해 만든 만큼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죠. 우리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멋진 일을 하는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한채연(경기도 불곡중 1)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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