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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언택트시대의 놀이터, 트로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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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내가 트로트를 흥얼거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눈물 짜는 노래, 못다 한 사랑을 달래는 즉흥적 가락, 트로트. 가공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를 그냥 흘려보내는 뽕짝이 팝송으로 단련된 세대에겐 먼 곳의 북소리였을 뿐이다. 고령층을 제외하곤 지금의 5060은 청춘스타 클리프 리챠드, 애상의 연인 스키터 데이비스의 노래로 음악세계의 문을 열었다. 가끔은 피터 폴 앤 메리의 반전노래를 따라 부르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절창에 흠뻑 젖기도 했다. 길거리 선술집에서 터져 나오는 ‘번지 없는 주막’은 소음, 또는 기껏해야 취기에 얹는 부모세대의 인생 넋두리였다.

트로트가 언택트 시대 심신 달래 #백성의 음이 흥겨운 곡조가 되는 #치세지음이 훈민정음 창제 본뜻 #차벽에 막힌 광화문 어찌 보실까

그런데 트로트를 흥얼거리다니, 연식(年式)이 좀 된 탓만은 아니었다. 컨택트(contact)의 시간이 막을 내리던 지난 2월, TV조선이 야심차게 기획한 트로트 프로에 그만 걸리고 말았다. 설움과 탄식이 뒤범벅된 가락이 아니었다.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눙치는 청년들의 음조는 인생의 질퍽임을 가볍게 증발시켰고 애끓는 한탄을 짐짓 모른 척 했다. 70년대 팝송과 80년대 운동가요 시대를 싹둑 잘라내고 남진, 주현미, 설운도, 김연자의 색 바랜 정조를 21세기 풍으로 접속한 절창이었다. 주막집 먹태를 올리브유로 발효시켰다고 할까. 내친 김에 먼 곳의 북소리를 불러들였다. 트로트 원조들의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계속 들으시겠습니까?’ 휴대폰 음악 앱이 가끔 지쳐 물으면 ‘물론!’을 꾹 눌렀다. 트로트는 급기야 내 마음의 놀이터가 됐다. 언택트시대의 놀이터, 트로트가 없었다면 지난 10개월을 어떻게 건너왔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놀이터는 밖에 있었다. 크고 작은 광장들, 골목길, 커피숍, 식당에서 빚어낸 컨택트 스토리가 감정의 질료였고 행동의 보고(寶庫)였다. 비대면 행동은 사회구성의 요소가 아니고 따라서 사회과학의 분석대상도 아니었다. 자아는 물론 인격과 품성도 모두 대면 접촉에 의해 형성되고, 제도와 규범이 사회행위를 빚어낸다는 명제 위에 사회과학이 구축됐다. 그런데 미물에 불과한 코로나가 20세기 대명제를 간단히 물리쳤다. 대면행위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두 내면세계로 몰려들었다. 그 공간은 우선 낯설었고 보잘 것 없었다. 위축된 대면접촉에서 수혈되지 않는 자아(自我)의 재고가 날이 갈수록 고갈됐다. 행복과 충만을 자가 발전해야 했다. 마음의 놀이터가 필요했는데 여기에 트로트가 화답했다.

트로트는 서양가곡, 아리아와는 달리 준비운동 없이 듣고 부를 수 있는 범속한 노래다. 격조 높은 수양과 성찰 없이도 서민의 심신을 아무렇게나 달래준다. 비록 사랑과 출세, 만남과 작별에 관한 싸구려 감흥이 주를 이뤄도 대면접촉의 추체험 지평을 열어주고 감정이입 끝에 웃음과 눈물을 솟게 한다. 여기에 ‘다 함께 차차차’로 몸까지 들썩이면 코로나에 대적할 언택트 시대의 저항에너지로는 손색이 없다. 내 마음의 풍차가 따로 없다.

그게 세종대왕이 바랬던 바다. 문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들이 마음속에 고인 한(恨)과 정(情)을 퍼내는 비행체. 문자는 불명확한 감성의 실체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발성을 통해 생명을 돋게 한다. 표음문자로 발성된 감성과 정조가 급기야 음색과 가락에 실리면 통치의 최고봉인 음악정치에 닿는다. 한자는 논리 언어, 훈민정음은 감성 언어다. 백성의 성(聲)이 조화를 이뤄 흥겨운 곡조를 이룬 것, 치세지음(治世之音)이 훈민정음 창제의 최고 목표였다.  비록 한자의 발음기호로 출발했지만, 감성을 채집한 문자는 창가와 판소리로, 심지어는 포고문으로 진화해 지금의 광화문 광장을 이뤘다.

그런데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 백성을 어여삐 여겨 스물여덟 자를 만든’ 세종대왕은 한글날 차벽에 갇힌 채 나홀로 놀이터에서 트로트를 독창하는 백성을 굽어보고 있다. ‘보릿고개’를 열창하는 14세 소년 정동원은 초근목피가 무슨 뜻인지 모르나 발음이 전해준 조부세대의 정서를 어렴풋이 느낀다. 한글 가락이 세대의 감흥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탁이 ‘막걸리 한잔’을 외치면 한잔 걸친 듯 취기가 오른다. 언택트 시대여서 감흥은 곱절이다. 트로트는 모든 방송사로 번졌다. 마치 속요가 창가로, 창가가 포고문으로 진화하였듯, 트로트로 분출되는 내면의 용암은 어디로 향할까. 세종대왕은 눈치 채셨을지 모른다. 서민적 에너지를 가득 실은 합주(合奏)가 광장을 막아선 차벽과 전경에 밀어닥치고, 나홀로 논리에 젖은 실세의 비답(批答)을 밀어제칠 징후를 말이다.

논리는 오류를 품지만, 감성은 흘러넘친다. 감흥보다 원성이 높은 논리는 분명 오류다. 외로운 세종대왕상, 광화문 광장이 텅 빈 한글날의 풍경은 성(聲)과 운(韻)에 충실했던 촛불혁명이 불과 3년 만에 퇴색하고 있음을 알리는 불길한 신호. 그래서 사람들은 노(老)가수 나훈아에게 몰려갔다. 인심에서 나온 음(音)을 서민적 가락에 실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감동을 전하는 한 예인(藝人)의 열창에서 초심을 읽은 것은 행복이었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