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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해용의 시시각각

그들에겐 주식투자만 공정공평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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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에디터

손해용 경제에디터

대학생부터 사회초년생, 직장인까지 주식투자 광풍이다.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로 불리는 20·30대가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의 선봉에 섰다. 올해 주요 증권사에 신설된 계좌 3분의 2가량은 20·30대 소유다. 대학생 투자대회에는 지난해 배가 넘는 1만 명 이상의 참가자가 몰린다. 젊은층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는 속속 ‘주식 게시판’이 생겨나고, 대학 증권투자 동아리에는 지원자가 넘쳐난다. 지난해 말과 비교한 56개 증권사 신용거래융자 총액은 20대는 133.8%, 30대는 71.6% 늘었다. ‘빚투’(빚내서 투자)에도 거리낌이 없다는 얘기다.

2030은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 #취업은 힘들고, 부동산에 좌절 #주식투자는 마지막 ‘부의 추월선’

재테크 관점에선 이렇게 풀이한다. 0%대의 저금리 시대에는 은행 예적금으로 돈을 불리는 데 한계가 있다. MZ세대의 투자 성향은 기존 세대보다 공격적이라 고위험·고수익 상품을 찾는다. 정보기술(IT)에 익숙해 유튜브·SNS 등을 통해 손쉽게 투자 정보를 얻고, 스마트폰 주식거래에 대한 진입장벽도 낮다. 틀리지 않은 얘기다.

하지만 MZ세대를 만나 보면 절박함이 녹아 있다. 어렵사리 공부해 취직해도, 월급과 저축으로는 수도권 내 집 마련조차 어려운 현실이 그들을 주식투자로 내몰았다고.

MZ세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다. 괜찮은 월급을 주는 양질의 청년 일자리는 계속 줄고 있다. 그나마 생기는 일자리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임시직이다. 취직해도 부모 세대와 달리 자산 증식이 힘들다. 1976년부터 20년간 재테크 필수 아이템이었던 재형저축은 금리가 한때 연 20%를 넘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할 이자다.

부동산 투자는 ‘막차’를 한참 전에 놓쳤다. 부모 세대는 월급을 모아 집을 샀다지만, 지금은 월급 오르는 것보다 집값·전셋값이 훨씬 빨리 오르고 있다. 방향을 잘못 잡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이를 거들었다. 부동산 값은 이미 넘볼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여기에 첩첩 규제로 대출 한도는 확 줄었고, 청약 가점은 나이와 조건이 밀린다. 젊은층은 내 집 마련을 위해 예전보다 많은 허들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젠 주식이라도 잡지 않으면 ‘부의 추월차선’을 타지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 MZ세대는 투자의 세계만큼은 공정·공평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학벌·지연이란 것 자체가 없을뿐더러 조국의 ‘아빠 찬스’, 추미애의 ‘엄마 찬스’ 같은 반칙과 특권이 통하지 않는다. 미래를 아무도 모르기에 투자 리스크도 똑같다. 유일한 평가 잣대는 수익률. 종목과 타이밍을 잘 선택하면 돈을 번다. 이는 물려받을 게 없는 ‘흙수저’들에게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이들의 투자 행렬을 한국 경제가 회복하고, 기업 실적 개선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 MZ세대는 자신의 여건에 맞는 합리적인 경제적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실상은 ‘선택’이 아닌 ‘유일한 생존수단’에 가깝다.

정부는 이런 주식투자 열풍을 즐기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개인투자자를 응원하고 주식시장 활성화에 목적을 둬야 한다”며 투자를 독려하고 공매도 금지 기한 연장, 주식 양도세 조건 완화 등 부양책을 계속 내놓고 있어서다. 정부는 MZ세대의 관심이 부동산에 머물기보다는 자본시장으로 흐르기를 원한다.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고,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청춘을 위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만들지 못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이 지금 정부다. 정부가 더욱 MZ세대를 주식시장이란 탈출구로 내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걱정은 증시 과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떠밀려 들어간 탈출구마저 막히는 것은 아닌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손해용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