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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환의 미래를 묻다

‘족집게’ 체코의 날씨예보 앱은 자체 기상관측 장비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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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일기예보와 4차 산업혁명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추석 연휴가 끝나고 한때 기온이 뚝 떨어졌다. 대기 상층부에 북쪽의 차가운 냉기가 밀려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상청의 무뚝뚝한 설명에 따르면 그렇다. 그런데 성큼 다가온 가을을 반기던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혹시라도 지난 여름의 저온 현상이 겨울까지 이어지면 어쩌나 싶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독감에 2018년 겨울과 같은 끔찍한 한파가 겹친다면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3중고가 될 것이다. 몹시 궁금하지만, 선뜻 기상청을 믿을 수도 없다.

미국·EU의 공개 기상 정보 활용한 #‘오픈 이노베이션’의 대표적 사례 #소비자 친화적 그래픽·서비스로 #‘일기예보 망명’ 신드롬 일으켜

예보 실패가 부른 기상 재난

두 달 전 예보에 없던 폭우로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강둑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 인명 희생과 재산 피해를 낳았다. 물에 잠긴 전북 남원. [연합뉴스]

두 달 전 예보에 없던 폭우로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강둑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 인명 희생과 재산 피해를 낳았다. 물에 잠긴 전북 남원. [연합뉴스]

기상청 일기예보에 대한 불만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기상청이 ‘예보’는커녕 ‘중계’조차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특히 지난여름의 강수 예보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기상관측 이래 최장의 장마는 워낙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번번이 놓쳐버린 물 폭탄급 집중 호우는 사정이 달랐다. 제방 붕괴, 산사태, 농경지 침수로 국민이 목숨을 잃었고, 엄청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구책을 찾아 나서고 있다. 아예 기상청 예보를 포기한 ‘기상 망명족’ ‘일기예보 망명족’까지 등장했다. 지구 반대쪽 체코의 예보 앱이 훨씬 더 정확하고 편리하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변덕스러운 날씨에 시달리는 기상청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기상청이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400억 원짜리 슈퍼컴퓨터를 4대나 도입했고,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기상관측용 정지 위성 천리안 2A·2B 호도 운용하고 있다. 전국적인 레이더 관측망을 구축했고, 미국의 기상전문가를 영입해 관리 체계도 정비했다. 일기예보에 필요한 장비와 시스템은 상당히 갖춘 것이다. 이제는 780억원을 들여 영국의 기상예보 수치분석모델인 ‘통합모델(UM)’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을 개발하고 있다.

두 달 전 예보에 없던 폭우로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강둑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 인명 희생과 재산 피해를 낳았다. 경남 하동의 모습. [연합뉴스]

두 달 전 예보에 없던 폭우로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강둑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 인명 희생과 재산 피해를 낳았다. 경남 하동의 모습. [연합뉴스]

그래도 당장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상 예보 환경은 쉽게 개선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시베리아 고기압이 지나오는 북한의 지상 관측 자료는 그림의 떡이다. 레이더 관측과 천리안 위성으로 옹색하게 보완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복잡한 지형도 수치예보모델 구축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다.

체코의 예보 앱 ‘윈디’가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윈디는 2014년 체코의 이보 루카코비치가 개발했다. 전 세계 모든 곳에 대해 5일간의 예보를 제공한다. 놀랍게도 이들은 자체 관측 장비가 없다. 미국 국립기상국의 전(全) 지구예보체계(GFS)와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가 제공하는 전 지구적 공공 기상 자료를 사용한다.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그래픽은 카메론 베카리오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개발한 ‘어스(earth)’라는 소프트웨어로 만들었다. 어스는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낱낱이 공개한 ‘오픈 소스’여서 이를 활용해 윈디를 만들 수 있었다.

윈디는 공개 소프트웨어(오픈 소스)와 개방형 데이터(오픈 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열린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장비와 모델 구축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지 않고도 전 세계의 ‘기상 망명족’들이 찾아오게 만들었다.

윈디를 비롯한 해외 앱의 예보가 언제나 더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장마가 끝나가던 지난 8월 15일의 강수 예보는 기상청의 판정승이었다. 사실 윈디를 통해 제공되는 전 지구적 예보 모델이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두 달 전 예보에 없던 폭우로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강둑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 인명 희생과 재산 피해를 낳았다. 경기 양주의 모습. [중앙포토]

두 달 전 예보에 없던 폭우로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강둑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 인명 희생과 재산 피해를 낳았다. 경기 양주의 모습. [중앙포토]

태풍의 경로와 강도 예보에서도 기상청이 언제나 밀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올해 연달아 찾아온 4개의 태풍에 대해서는 기상청이 모두 ‘판정승’을 거뒀다. 그렇다고 크게 자랑할 일은 아니다. 사실 윈디는 물론이고 미국·일본·중국의 태풍 예보도 우리 기상청의 예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 의미도 없는 도토리 키 재기에 울고 웃을 이유가 없다. 물론 남의 떡은 언제나 커 보이는 법이다. 그렇다고 공연히 내 떡을 내던져버릴 이유는 없다.

기상청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언론에 나오는 일기예보의 성격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특히 일기예보가 TV 뉴스의 소품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은 몹시 안타깝다. ‘비구름이 몰려와 비가 내렸고, 시베리아의 찬바람이 밀려와 추워졌다’는 수준의 해설은 부끄러운 것이다. 기상청에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은경 청장’이 필요하다. 아직도 ‘김동완 통보관’을 잊지 못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기상청이 알려주고 싶은 예보가 아니라 소비자가 보고 싶어 하는 예보를 개발해야 한다. 기상청과 윈디가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윈디는 극히 소비자 중심적이다. 강수든, 바람이든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기상청에서는 원하는 정보를 찾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관료주의에 찌든 기상청

국내 기술로 개발한 기상·환경 정지궤도 위성 천리안 2B호. [중앙포토]

국내 기술로 개발한 기상·환경 정지궤도 위성 천리안 2B호. [중앙포토]

유능한 앱 개발자를 영입하는 것이 도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영혼을 강조하는 창의적인 앱 개발자들이 관료주의에 찌든 기상청에서 얼마나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기상청의 관료주의적 경직성을 벗어던지고, 기상학의 좁은 울타리를 견고하게 지켜주는 칸막이를 확실하게 깨버리지 않는 한, 달성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상학자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용어나 표기법부터 소비자와 친근하지 않다. 기상청이 자랑하는 ‘강수예보 적중률’이 도대체 뭔지, 아무도 만족스럽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태풍의 경로를 예보한 지도에 그려진 서로 다른 크기의 동그라미가 사실은 태풍 위치의 불확실성을 표시하는 것이라는 점 역시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는다. 이로 인해 불확실성이 클 수밖에 없는 태풍 예보가 마치 잘 정해진 민간 항공기의 예정 항로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기후가 변한다면, 그에 따라 기상학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 장마를 새로 정의하는 것은 기상학자의 일이다. 모든 것을 기후 변화 탓으로 돌려버리는 자세는 볼썽사납다.

체코의 예보 앱 ‘윈디’ 화면. 전 세계 모든 곳의 일기예보를 서비스한다. [윈디 캡처]

체코의 예보 앱 ‘윈디’ 화면. 전 세계 모든 곳의 일기예보를 서비스한다. [윈디 캡처]

일기예보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제갈공명과 같은 주술사적 존재가 독점하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이제는 국가의 기상정보 독점권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다. 기상 망명족의 등장이 필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기예보의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가 세계기상기구(WMO)를 중심으로 뭉치고, 각국의 기상 자료는 세계기상통신망체계(GTS)를 통해 통합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세계적 수준의 일기예보를 독자적으로 생산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기상청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영역이 따로 있다. 바로 기상 재난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다. 폭우·폭설·태풍·폭염·한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앞으로 기상청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만 한다.

국가별 일기예보 시대가 저물어 간다

일기예보는 관측·분석·전달의 세 단계를 통해 생산·활용된다. 날씨는 지구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대략 10㎞ 두께의 대류권에서 나타나는 전 지구적 자연현상이다. 따라서 한정된 지역에서의 관측만으로는 정확한 예보가 불가능하다. 1844년 장거리 전신 기술이 개발되기까지는 제대로 된 예보가 불가능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예보의 품질은 관측을 통해 확보한 기상 자료의 정확성과 양에 비례한다. 지상에서의 관측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다. 바다나 오지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대류권 상층부의 기상 정보를 관측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관측 장비를 갖춘 기구나 항공기를 이용하지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개발된 레이더와 1960년대 등장한 기상위성이 일기예보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었다. 천리안 2호와 같은, 적도 상공 3만6000㎞에 올려놓은 정지위성은 일정한 지역에 대한 연속 관측에 사용된다.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대략 850㎞ 상공의 극궤도 기상위성은 하루에 두 번씩 지구 전체에 대한 기상 자료를 수집한다.

이렇게 얻은 기상 자료를 분석해 일기예보를 생산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방대한 유체역학 방정식을 수치해석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엄청난 계산 능력을 지닌 슈퍼컴퓨터가 반드시 필요하다. 더욱이 일기예보를 위한 수치해석에서는 초기의 작은 차이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나비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미래의 일기예보는 국가 수준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가 돼가고 있다. 미국·영국·캐나다·EU가 시도하고 있는 전 지구적 일기예보가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충분한 수의 정지궤도와 극궤도 기상위성, 그리고 슈퍼컴퓨터를 갖춰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제 우리의 일기예보도 전 지구적 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기상청도 이런 변화를 인식하고 그에 맞춰 변화할 때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