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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트럼프 소방수, 남편은 저격수···3주뒤 이 부부 운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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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지난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전야제 만찬에 참석한 켈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선임고문(왼쪽)과 조지 콘웨이 변호사 부부.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전야제 만찬에 참석한 켈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선임고문(왼쪽)과 조지 콘웨이 변호사 부부.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래에 있는 진단 기준 중 어느 것을 충족하지 못합니까?”

[박현영의 워싱턴 살롱] #트럼프 최장 보좌한 '충신' 켈리앤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 아닌' 남편 #조지 콘웨이, 트럼프 낙선 운동 선봉 #"최고 바보", "패배자" 대통령과 설전

지난해 3월 19일 미국 워싱턴의 변호사 조지 콘웨이(56)는 트위터에 자기애성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진단 기준을 나열한 사진을 올리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공격한 것이다.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반격했다. "흔히 미스터 켈리앤 콘웨이로 불리는 조지 콘웨이는 아내의 성공에 매우 질투심을 느끼고, 그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자리를 주지 않은 데 대해 화가 났다. 나는 그를 거의 알지 못하지만, 그냥 봐도 완전한 패배자, 지옥에서 온 남편!"

그다음 달 트럼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6년 자신의 대선 캠프를 염탐했다는 주장을 펴자 조지는 트위터에 "미친 도널드(#Deranged Donald)가 돌아왔다"고 썼다.

"미친 도널드가 이런 일을 해도 톱뉴스도 안 된다. 왜냐하면 미친 도널드가 하는 다른 모든 정신 나간 일 속에 묻히기 때문"이라고 조롱했다. 이 해시태그는 그날 오전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트럼프 탄핵 사태 때는 직접 CNN에 출연해 트럼프를 "범죄자", "병적인 거짓말쟁이", "최고 바보(Idiot-in-Chief)"로 부르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백악관 회의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백악관 회의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켈리앤 콘웨이(53) 전 백악관 선임 고문의 ‘상사’인 트럼프 대통령과 남편 조지가 이처럼 트위터로 공개 설전을 벌이면서 콘웨이 부부는 워싱턴에서 가장 주목받는 커플이 됐다.

지난 8월 말 부부는 다시 화제에 올랐다. 딸 클로디아(15)가 소셜미디어에서 ”엄마가 내 인생을 망쳤다“며 공개 비판하자 켈리앤은 "가족에게 집중하겠다"면서 사임했다. 조지도 공동 설립자로 참여한 트럼프 낙선 운동 단체 ‘링컨 프로젝트’ 활동을 쉰다고 밝혔다.

소름 끼치게 트럼프 대통령을 싫어하는 남편과 트럼프 대통령 곁을 가장 오래 충성스럽게 지킨 참모인 아내가 빚어내는 불협화음, 그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딸은 이 가족을 워싱턴에서 트럼프 일가를 제외한 가장 유명한 가족으로 만들었다.

지난 7월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곁에 가장 오래 머물며 충성스럽게 대통령을 변호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곁에 가장 오래 머물며 충성스럽게 대통령을 변호했다. [AP=연합뉴스]

켈리앤은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싸우는 전사(戰士)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과 늘 싸울 준비가 돼 있고, 위기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을 무슨 수를 써서도 구해내는 특급 소방수다.

2017년 대통령 취임식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군중이 왔다는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의 말이 진위 논란을 빚자 켈리앤은 방송에 나와 “거짓이 아닌 ‘대안적 진실(alternative facts)’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팬들은 용감하다고 칭송하고, 비판자들은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비난한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평가했다.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데 이어 2일 켈리앤도 확진 사실을 알렸다.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트럼프 최측근임이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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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남편 조지는 트럼프 대통령을 정조준하는 저격수다. 지난해 말 트럼프 낙선을 목표로 하는 단체 ‘링컨 프로젝트’를 공동 설립했다.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링컨 프로젝트 목표는 “보수주의자와 공화당원, 공화당 성향 무소속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투표로 몰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화당이 의회 다수 석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린지 그레이엄 같은 상원 내 트럼프 조력자들을 낙선시키고, 트럼프 자녀나 심복 그 누구도 나중에라도 대통령이 될 수 없게 하는 것도 목표다.

켈리앤 입장에서는 조지가 워싱턴판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닌 남편'인 셈이다. 최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논란이 된 남편의 해외여행을 말릴 수 없었다면서 쓴 표현이다.

2017년 1월 19일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전야 만찬에서 켈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선임고문과 트럼프 대통령이 춤을 추고 있다. [EPA=연합뉴스]

2017년 1월 19일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전야 만찬에서 켈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선임고문과 트럼프 대통령이 춤을 추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지는 트럼프 당선 때까지만 해도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2016년 선거날 조지는 트럼프 당선의 기쁨과 대선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끈 첫 여성 선대본부장인 아내에 대한 자부심에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러나 정권 출범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주류, 정통 보수주의자 시각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반(反)트럼프로 돌아섰다.

애초 켈리앤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개한 사람은 조지였다. 부부는 2001년 결혼 직후 뉴욕 '트럼프 월드 타워' 아파트에 입주했다. 조지는 대형 로펌의 잘 나가는 30대 변호사였고, 켈리앤은 여론조사 업체를 창업해 꾸렸다.

2016년 11월 대통령 선거 당일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켈리앤 콘웨이 당시 캠프 선대본부장을 소개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켈리앤은 백악관 선임고문에 선임됐다. [로이터=연합뉴스]

2016년 11월 대통령 선거 당일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켈리앤 콘웨이 당시 캠프 선대본부장을 소개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켈리앤은 백악관 선임고문에 선임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당시 아파트 이사회 회의에 건물 이름에서 트럼프 명칭을 빼는 안건이 올라왔는데, 조지가 강력히 반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에게 이사회 멤버로 참여할 것을 제안했지만, 조지는 거절했다.

대신 아내를 추천했다. 그는 2018년 WP 인터뷰에서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아내를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링컨 프로젝트 설립자들은 공화당 베테랑 선거 전략가와 광고전문가들이다. 평생 민주당 후보를 낙선시키는 데 주력해왔다. 지금은 총구를 내부로 돌려 트럼프 대통령을 겨누고 있다.

링컨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100건이 넘는 광고를 제작해 모두 1억4000만 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했다고 더뉴요커는 전했다. 정치광고 같지 않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감각적인 구성, 발 빠른 대응이 특징이다.

코로나19에 걸린 트럼프 대통령이 병원에서 퇴원해 백악관에 돌아온 뒤 마스크를 벗는 장면을 포착한 '숨을 몰아쉬다' 광고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를 배경음으로 써 반향을 일으켰다. 코로나19에 민감한 65세 이상 유권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웨스트포인트에서 연설하고 내려올 때 거동이 부자연스러운 장면을 포착해 링컨 프로젝트가 제작한 정치 광고의 한 장면. [링컨 프로젝트 광고 캡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웨스트포인트에서 연설하고 내려올 때 거동이 부자연스러운 장면을 포착해 링컨 프로젝트가 제작한 정치 광고의 한 장면. [링컨 프로젝트 광고 캡처]

지난 6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웨스트포인트에서 연설한 뒤 계단을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장면을 포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손으로 물잔을 못 들어 다른 손으로 받치는 장면까지 엮어 만든 광고 "#트럼프 건강에 문제"는 170만 명 넘게 봤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1984년 재선 캠페인 광고인 ‘모닝 인 어메리카(Morning in America)’를 패러디한 ‘모닝 인 어메리카(Mourning in America·미국을 애도하다)’는 트럼프 이전 공화당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암울한 음악을 배경으로 넘쳐나는 코로나19 환자, 폐허가 된 주택가, 길게 줄을 선 실업급여 신청자 모습을 통해 암울한 2020년 미국을 보여준다.

이 광고를 선보인 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링컨 프로젝트 구성원을 실명으로 언급하며 ”이기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 "무늬만 공화당원"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프로젝트의 또 다른 목표, '트럼프 긁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날 하루 링컨 프로젝트에는 100만 달러 넘는 기부금이 모였다.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오는 11월 3일 켈리앤이 축배를 들지, 조지가 축포를 쏠지는 알 수 없다.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갈라진, 트럼프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이 가족은 대선이 끝나면 화해할 수 있을까.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