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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업 정서 풀기’ 숙제 안은 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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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선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선욱 산업1팀 기자

최선욱 산업1팀 기자

이른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는 주요 경영자 단체의 최근 분위기를 한 낱말로 종합하면 ‘체념’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석만 174석인데다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달 “세 가지 법 자체에 대해서 거부할 입장은 아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경영계 입장에서 여당 의석수라는 공식적인 권한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여론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만만치 않다. 회사가 감사위원을 뽑을 때 위원 1명 이상은 기존 이사가 아닌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하는 등(상법 상 감사위원 분리선임) 경영권과 관련된 규제가 대부분이어서, 일반 국민이 보기엔 내 삶과 직결됐다고 느끼기 어려워서다. “우리 입장에선 ‘기업부담법’ ‘기업장악법’인데 민주당이 ‘공정경제법’이라는 이름으로 여론을 선점했다”는 한 경영단체의 분석도 수긍이 간다.

경영계는 “그래도 막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공동 대응을 하기로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6일 이낙연 민주당 대표를 불러 요구 사항을 전달한데 이어, 다음 날엔 중소기업중앙회 등 4개 단체가 모여 반대 의견을 함께 냈다. 한 경영자 단체 관계자는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심정”이라고 전했다.

노트북을 열며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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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이 기업규제 3법을 추진하고, 야당까지 사실상 침묵하게 만드는 힘은 여권 다수 의석보다 반기업 정서에서 나온다. 7일 아침 열린 경총 회장단 회의에서 “반기업 정서가 해소되지 않으면 기업에 대한 규제가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완화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경영계가 목표한 기업규제법 차단을 위해선 여론전에서 이겨야 하고, 그 필수 요소는 반기업 정서 해소다. 하지만 서울 도심 5성급 호텔에서 조찬 모임(7일)을 열어 “기업이 힘든 상황이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이 같은 반기업 정서가 풀릴 것 같지 않다. 과도한 ‘서민 코스프레’라는 가식을 보여주는 것도 역효과를 부르겠지만, 이처럼 세세한 부분에서 트집 잡힐 필요는 없었다는 얘기다.

결국 장기전이다. 지금 경영계는 기업규제 3법 방어에 집중하고 있지만, 집단소송법안과 노동 관련 법안 등 경영계가 꺼려하는 규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를 막고 싶다면 국민 실생활과 관련 있는 논리 개발과 이미지 구축은 지금부터라도 경영계가 서둘러야 할 과제다. 국민 입장에선 나와 내 공동체가 잘 살기 위한 방법이 궁금할 뿐, 노동계와 경영계 중 누가 이기든 상관이 없다.

최선욱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