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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타 차가 2타까지...지옥 문 앞 갔다 온 안나린 감격의 첫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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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샷 후 타구를 바라보고 있는 안나린. [사진 KLPGA]

티샷 후 타구를 바라보고 있는 안나린. [사진 KLPGA]

바람은 잔잔했고, 이불처럼 낮게 깔린 구름 속에 기온은 포근했다. 그러나 10타 차를 안고 최종라운드에 나서는 안나린(24)의 마음은 폭풍 속이었을 것이다.

안나린이 11일 세종시 세종필드골프장에서 벌어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오텍캐리어 챔피언십에서 천신만고 끝에 우승했다.

최종라운드 이븐파 72타, 합계 16언더파로 유해란(19)를 4타 차로 꺾었다. 프로 4년 차인 안나린은 첫 우승의 감격을 안았다.

3라운드까지 딱딱하고 빠른 세종필드 그린에서 선수들이 고생했다. 안나린은 악조건에서 혼자 펄펄 날았다. 2라운드에서 그는 버디만 7개를 잡는 완벽한 경기를 했다. 3라운드에서도 16번 홀까지 버디 8개를 잡아냈다. 11타 차의 선두였다. 그러나 17번 홀에서 보기를 하면서 완벽하던 흐름은 깨졌다.

그래도 최종라운드는 10타 차 선두였다. 역대 KLPGA 투어에서 가장 큰 타수 역전승은 8타다. 2009년 유소연 등 3번 나왔다. 그러나 10타가 절대 안전지대는 아니다. 2010년 한국오픈에서 양용은은 10타 앞에 있던 노승열에 역전승을 거둔 바 있다.

10타 차는 매우 크지만 그래서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 많은 타수 차가 역전된다면 오랫동안 남을 뉴스가 되고, 그 주인공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1997년 마스터스에서 최종라운드를 9타 차 선두로 출발한 적이 있다. 겉으로는 여유 있어 보였지만 당시 매우 긴장했다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회고했다. 뒤집어진다면 뒷심이 약한 선수라는 오명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우즈는 97년 마스터스에서 12타 차로 우승했다. 같은 조 동반자인 코스탄티노 로카(이탈리아)가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안나린의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계 랭킹 1위 고진영과 국내 1인자로 올라선 임희정과 한 조였다.

안나린은 4년 동안 우승 경험이 없다. 상금랭킹 40위권을 맴돌던 그는 우승 경쟁을 한 적도 거의 없다. 안나린은 3번 홀에서 보기를 하면서 타수 차가 한 자리수로 줄었다. 4번 홀에서는 충분히 넣을 수 있는 버디 퍼트를 짧게 쳤다.

4라운드 날이 흐려 그린은 부드러웠고 핀은 대부분 어렵지 않은 곳에 있었다. 누군가 많은 타수를 줄인다면 안나린이 흔들릴 수 있다. 조직위는 밋밋한 우승보다 드라마를 원했을 것이다.

추격의 주인공은 176cm의 체구로 장타를 날리려 벌써 2승을 거둔 무서운 십대 유해란이었다. 그는 안나린 바로 앞 조에서 줄 버디를 잡으며 맹렬하게 쫓아왔다.

12번 홀에서 안나린이 또 다시 보기를 했을 때 타수 차는 5로 줄었다. 13번 홀에서 안나린은 티샷을 하고 나서 클럽을 놨다. 또 다시 보기를 했다. 유해란은 14, 15번 홀에서 또 버디를 잡아냈다. 타수 차는 2로 줄었다.

버디를 하나도 못하며 코너로 몰리던 안나린은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오히려 침착해졌다. 14번 홀에서 내리막 3m 버디를 잡아 급한 불을 껐고 파 3인 17번 홀에서 티샷을 핀 1m 옆에 붙여 사실상 우승을 확정했다. 안나린은 지옥 끝까지 갔다가 살아 나왔다.

2017년 데뷔한 안나린은 쇼트게임과 볼스트라이킹이 좋다. 그러나 아이언이 문제였다. 좌우로 휘지는 않지만 거리 조절을 잘 못했다. 그린을 넘어가거나 짧아서 문제가 됐다.

톰 왓슨은 “프로선수가 성공하려면 아이언의 거리 컨트롤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올해 안나린은 아이언의 거리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 그린 적중률이 75%(41위)로 좋아졌다. 1m에 붙인 17번 홀 티샷이 그 증거이며 첫 우승을 했다.

안나린은 "차분하게 하려 노력했는데 잘 안되더라. 파 5인 14번 홀을 앞두고 리더보드를 봤다. 유해란 선수가 쫓아온 것을 보고 꼭 버디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웨지가 자신있어서 2온을 시도하지 않고 3온을 했다. 그 홀에서 버디를 한 이후 주먹을 확 쥐었다. 17번 홀에서는 아무 생각없이 샷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나린은 또 "승부사 기질이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고진영과 임희정이 7언더파 공동 3위다.

한편 인천 잭 니클라우스 골프장에서 벌어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는 김태훈(35)이 최종라운드 1오버파 73타, 합계 6언더파로 우승했다. 4타 차 선두로 출발한 김태훈도 한 때 이재경(21)에 한 타 차로 쫓기기도 했지만 13번 홀과 14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 리드를 지켰다.

우승 상금 3억 원을 받은 김태훈은 시즌 상금 1위(4억6천663만원)가 됐다. 그러나 1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PGA 투어 더 CJ컵에는 “제네시스 대상에 집중하겠다”면서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

세종=성호준 골프전문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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