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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원 필라테스 끊었는데 '먹튀 폐업'…돈 찾는 법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손을 덜덜 떨며 수백만원어치 필라테스 연간 회원권을 '할부 만땅' 결제했는데, 일주일 뒤 찾아간 필라테스 스튜디오는 원장이 야반도주해 폐업 상태라면? 복장 터지는 이 상황에서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내 돈 일부를 되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애 태우는 소송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만 아신다면요.

[금주머니]

필라테스. 셔터스톡

필라테스. 셔터스톡

#할부금에 항변합니다

=할부항변권은 소비자가 할부로 재화를 구입하거나 용역을 제공받기로 했다가 재화에 하자가 있거나 용역을 제공받지 못하게 된 경우, 금융회사(카드사 또는 캐피탈사)에 잔여 할부대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게 한 권리다. 쉽게 말해 남은 할부금을 안 내겠다고 요구하는 권리다.

할부항변권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할부항변권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할부항변권은 할부법 상 할부거래의 요건을 충족한 거래에만 해당한다. 할부거래 요건이란 ①대금을 분할 지급할 것(2개월 이상의 기간 3회 이상 분할지급) ②목적물이 재화나 용역일 것 ③대금 완납 전에 매수인이 목적물을 인도받을 것 등이다. 할부항변권을 인정받으려면 재화 등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거나 할부계약의 무효·취소, 매도자의 하자담보책임 미이행 또는 기타 채무불이행 등으로 계약에 하자가 있어야 한다.

#먹튀 필라테스·학원에 낸 돈 돌려받기

=A씨는 얼마전 회사 근처 B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상담을 받고 연회비 150만원권을 12개월 할부로 결제했다. 그런데 결제 후 두달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스튜디오가 문을 닫고 원장도 연락이 두절됐다. A씨는 신용카드사에 잔여 할부금에 대한 항변권을 주장했다.

문 닫은 점포 모습. 중앙일보

문 닫은 점포 모습. 중앙일보

=C씨는 고등학생 자녀 교육을 위해 개인과외수업 전문 D학원을 찾았다. 학생마다 개인적으로 담당 과외선생님을 붙여준다는 말에 36회 수업분 240만원을 6개월 할부로 결제했다. 그런데 막상 D학원의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 보니 담당 과외선생이 자주 바뀌는가하면, 결국에는 학원 영업이 중단돼버렸다. C씨는 카드사에 잔여 할부금에 대한 항변권을 주장했다.

=신용카드사는 관련 계약서를 검토하고 B필라테스 스튜디오, D학원에 실사를 나가 실제로 영업이 중단됐는지를 확인했다. 실사 결과 B스튜디오와 D학원이 사실상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할부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한 신용카드사는 A씨와 C씨에게 잔여 할부금을 보상해줬다.

#고양이 강아지는 왜 안돼?

=E씨는 한 고양이 분양센터에서 페르시안 고양이 한 마리를 60만원에 6개월 할부로 구매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데리고 온 고양이는 어디가 아픈 건지 잘 먹지도 않고 기운이 없어보였다. E씨는 분양센터를 찾아가 환불을 문의했지만 분양센터 측은 "판매 당시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며 환불을 해줄 수 없다고 버텼다. E씨는 카드사를 찾아 잔여 할부금에 대한 항변권을 주장했다.

페르시아 고양이. 셔터스톡

페르시아 고양이. 셔터스톡

=카드사는 E씨의 할부항변권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고양이 등 애완동물은 '농·축·수·임·광산물로서 제조업에 의하여 생산되지 않은 것' 이라서 할부법 적용 대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치과의사 F씨는 치과 운영을 위해 치과재료 공급상과 치과용 기계장비·원재료 구매계약을 체결하고, 구매대금 결제를 위해 캐피탈사를 찾아 할부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재료공급상이 경영악화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치과용 기계장비 및 원재료 공급을 중단했다. F씨는 캐피탈사에 잔여 할부금에 대한 항변권을 주장했다.

=F씨의 할부항변권 역시 캐피탈사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업자가 '상행위를 위해 구매하는 재화'는 할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서다.

#할부금 완납 땐 될 것도 안 돼

=G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화장품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사은행사로 나눠주기 위해 1년 간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에서 사용가능한 할인권 1000장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매했다. 구매비용 100만원은 신용카드로 3개월 할부 결제했다. 그런데 4개월 후 해당 할인권을 받아주는 프랜차이즈 종류가 점점 감소하는 등, 사용 조건이 구매당시 광고 내용과 너무 달라졌다. G씨는 "사실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며 카드사에 잔여 할부금에 대한 항변권을 주장했다.

스타벅스. pexels

스타벅스. pexels

=G씨의 할부항변권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계약의 내용이 문제라서가 아니다. 할부 기간의 문제였다. 항변권 행사를 위해서는 신용카드사에 대해 아직 내지 않은 잔여 할부금이 남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G씨 사례의 경우 이미 3개월 할부기간이 다 지나 잔여할부금이 없는 상태기 때문에 항변권 행사 자체가 불가능했다.

=잔여 할부금이 남아있더라도, G씨가 사업자로서 해당 할인권을 구매한 것이라면 원천적으로 항변권 적용이 안 되는 것일까? 아니다. G씨의 거래는 사업자로서 상행위를 위해 구매거래에 해당하나, 일반 소비자와 동일한 조건에서 체결된 구매계약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할부법 적용 대상에 해당한다.

#남용했다간 돈 물어낼 수도

=할부항변권 행사를 고려하기 전엔 아래 사항들을 참고해야 한다.

할부항변권 요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할부항변권 요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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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신용카드 등으로 구매했더라도 일시불로 거래했다면 할부법 적용대상이 아니므로 항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설령 할부로 거래했다고 해도 농·축·수·임·광산물, 보험·의약품·부동산, 사업자가 상행위를 위해 구매하는 재화 및 용역 등은 할부법 적용대상이 아닌 거래라 항변권을 갖지 못한다.

=②항변권 행사를 위한 방법은 서면·전화·직접 전달 등이 모두 가능하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할부금의 지급을 거절하겠다는 의사를 통지하면 된다. 다만, 채무불이행 등 항변권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입증해야 하므로 계약서·영수증 등을 꼼꼼히 챙겨놓아야 한다.

=③결제 후 7일 이내인 경우에는 항변권뿐 아니라 철회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항변권은 원칙적으로 구매물품의 하자를 이유로 하는데 반해 철회권은 구매물품의 하자 여부에 관계없이 행사할 수 있다.

=④항변권 행사를 남용했다간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항변권이 끝내 불수용 되는 경우엔, 행사하는 동안 지급하지 않은 할부금에 대한 지연이자가 소급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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