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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밥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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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다큐멘터리가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올 때는, 인물의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것은 구구절절한 말이나 설명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스쳐 가는 잠깐의 표정이 말없이 웅변하는 경우가 많다. ‘길 위의 방랑 셰프’ 임지호의 여정을 담은 박혜령 감독의 다큐 ‘밥정’에서 그 찰나는 바로 김순규 할머니의 표정이다.

그영화이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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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셰프는 지리산에서 만난 김 할머니를 10년 동안 찾아뵈며 마치 어머니처럼 모신다. ‘못 먹는 것’으로 여겨져 지천으로 버려진 식물들을 이용한 그의 음식은 ‘자연주의’의 진정한 실천인데, 그날도 그는 의외의 식재료로 맛을 낸다. 그렇게 끓인 국을 국자에 담아 셰프는 할머니에게 드시라고 전한다. 맛을 본 김순규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맛있음’을 표현한다. 82분의 러닝타임 중 극히 일부의 시간이지만, 이 영화의 진심은 그 파안대소 안에 모두 담겨 있다. 그 순간 관객은 느끼고 생각한다. 얼마나 좋은 맛이길래 저렇게 활짝 웃을 수 있는 걸까? 물론 모든 것이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먹는 자에 대한 만드는 자의 ‘정성’이 없었다면, 그것은 헛웃음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밥정’은 ‘밥’을 통해 ‘정’을, 음식은 몸의 허기뿐만 아니라 영혼의 공허함도 채워주는 위대한 그 무엇임을 이야기한다. 코로나와 재해와 온갖 갈등으로 점점 피폐해지는 우리들의 삶과 일상 속에서, 이 영화가 지닌 힐링의 기운과 할머니의 순박한 표정을 권한다.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