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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 사진 합성…'온라인 수업' 교권 침해에 멍 드는 교사들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서울 용산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스승의 날을 맞아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지난 5월 서울 용산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스승의 날을 맞아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 정모씨는 지난달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으로 학생들과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던 중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욕설에 깜짝 놀랐다. 정씨는 “음성 변조한 목소리로 본인 이름을 붙여 ‘XX놈, 개XX’라는 욕설을 내뱉었다”며 “도가 지나친 행동에 참담했지만 누가 욕을 했는지 알 길이 없어 수업을 그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욕설은 한 두 마디에 그쳤지만 짧은 순간 수업에 참여한 학생 17명이 욕설을 듣고 당황한 정씨의 모습을 화면 너머로 지켜봤다.

욕설 난무 온라인 수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지난 3월 초·중·고에서 시작한 온라인 수업이 시행 7개월째를 맞았다. 2학기 개학 후에도 코로나 19 재확산에 따라 등교수업 중단, 온라인 수업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교사들이 온라인 수업에서 일어나는 교권 침해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온라인 수업에서 교사를 향한 막말·욕설이다.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 A씨는 지난달 초 온라인 수업 중 학생으로부터 욕설을 들어야 했다. A씨는 “수업을 시작할 무렵 학생들이 초대된 방에서 갑자기 ‘얼굴 X 같다’라는 외모 비하 발언이 나왔다”며 “이 발언이 나오고 나서 바로 한 학생이 방을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당시 온라인 수업에 출석한 학생들을 일일이 확인한 결과 수업에 결석한 학생의 이름을 사칭한 한 학생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하지만 이 학생이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A씨는 “본인 신분을 숨기면서까지 수업에 참여해 욕설을 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며 “학생과 교사와의 신뢰를 저버린 몇몇 학생의 행동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하기가 두렵다”고 털어놨다.

교사 얼굴 사진 희화화

부인과 함께 찍은 교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한 학생이 비속어를 적고 손가락으로 모욕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 해당 학생은 이러한 사진을 원격수업 프로그램 배경사진으로 설정했다. [독자 제공]

부인과 함께 찍은 교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한 학생이 비속어를 적고 손가락으로 모욕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 해당 학생은 이러한 사진을 원격수업 프로그램 배경사진으로 설정했다. [독자 제공]

교사의 초상권 침해도 온라인 수업으로 나타난 교권침해의 새로운 사례다. 지난 3월 온라인 수업을 도입할 당시에도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 화면을 캡처해 교사 외모를 평가하거나 캡처한 얼굴 사진을 부적절하게 합성해 유포하는 데 대한 우려가 있었다. 수도권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부인과 함께 찍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한 학생이 비속어를 적어 온라인 수업 프로그램 배경 사진으로 해놓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 5월 교사노동조합연맹이 발표한 ‘교사의 교권 인식과 코로나 대응’이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 2585명 중 58.1%가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교권침해를 걱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여교사 응답 비율이 남교사보다 높아 상대적으로 더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교권침해 예방을 위해 어떤 조치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교사들은 ‘얼굴 노출을 최소화한다’(41.5%), ‘쌍방향 소통을 최소화한다’(22.5%)고 답했다.

“대책 없이 쌍방향 수업 강조”

교사들은 온라인 수업에서 교권침해가 발생해도 교육청과 학교가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학교나 교육청에 피해를 호소해도 ‘가해 학생을 찾기 어렵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한다”며 “교사에게만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온라인 예절이나 책임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온라인 수업에 따른 교육활동 침해에 대해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예방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며 “교권 침해를 막기 위해 줌에서 수업 대기실을 활용할 것을 권고하고, 피해교사에 대한 심리상담 지원 등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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