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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체 모형 표류실험 실패했는데, 월북 근거로 들이민 해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해양경찰 대원들이 3일 인천시 중구 연평도 해역에서 북한에 의해 피격돼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 시신 수색을 하고 있다. [뉴스1]

해양경찰 대원들이 3일 인천시 중구 연평도 해역에서 북한에 의해 피격돼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 시신 수색을 하고 있다. [뉴스1]

북한군이 사살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47)씨에 대해 해경이 ‘자진 월북’ 판단을 내린 근거 중 하나로 들었던 ‘더미(인체 모형)’ 표류 실험이 사실상 엉터리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야권은 “정부 발표 발맞추기를 위한 사실상의 사건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실이 9일 입수한 실험 보고서에 따르면 해경은 지난달 26일 저녁 이씨가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인체 모형을 활용한 표류 실험을 했다. 모형의 무게는 이씨의 체중과 유사한 80㎏으로 설정했고 구명조끼도 입혔다. 26일 밤 7시, 9시, 11시와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모두 네 차례 인체 모형을 바다에 던져 표류방향 및 속도를 측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실험부터 말썽이 생겼다. 당시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해경 523함은 저녁 7시 2분에 첫 번째 인체 모형을 바다에 투하했다. 이후 5분 간격으로 모형에 설치된 무선추적기로 위치를 확인했다. 모형은 저녁 7시 7분, 12분, 18분까지 위치가 파악됐지만, 네 번째 위치 확인을 시도한 저녁 7시 48분부터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해경은 보고서에 “(모형을) 원인 미상으로 소실”이라고 적었다.

해경은 위치 확인 신호가 사라진 해상 인근을 수색했지만, 모형을 찾지 못해 상부에 분실 보고를 했다. 같은 날 예정됐던 세 차례 추가 표류 실험도 모두 취소했다. 이후 해경은 이씨 시신 수색을 위해 복귀하던 도중 소연평도 남서쪽 해상에서 어망에 걸려있는 인체 모형을 발견했다고 한다.

해양경찰청 관계자가 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 회의실에서 연평도 실종공무원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해양경찰청 관계자가 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 회의실에서 연평도 실종공무원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표류 실험은 사실상 실패한 실험이었지만, 해경은 지난달 29일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 “인위적인 노력 없이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제 발견 위치까지 표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해당 실험을 이씨의 자진 월북 판단 근거 중 하나로 들었다.

당시 해경은 국립해양조사원 등 국내 4개 기관이 조류 예측 시스템 등을 이용해 이씨가 실종된 이후로 추정되는 21일 새벽 2시부터 다음날 오후 3시 35분 사이 실종자가 단순 표류했다면 소연평도를 중심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남서쪽으로 떠내려갔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경은 “실제로 실험을 했다. 80㎏의 더미로 똑같은 물때(조류 흐름)에 투하했다”며 “예측 시스템과 거의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해경은 지난 3일에도 인체 모형 표류 실험을 하려고 했으나 계획을 취소했다. 해경은 실험 취소 이유를 묻는 안 의원실 질의에 “희생자가 붙잡고 있던 부유물의 종류가 특정되지 않아 동일한 조건의 실험을 구현하기 불가하여 중단”이라고 답변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이 8일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등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모습.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실 제공]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이 8일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등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모습.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실 제공]

안 의원은 “사실상 실패한 실험을 이씨의 자진 월북 근거로 제시한 것은 전형적인 짜 맞추기 수사로 볼 수 있다”며 “해경이 추정하는 무동력 부유물로 북한까지 수십 킬로미터를 거슬러 갈 수 있는지 객관적인 실증실험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경 관계자는 “월북 판단에 대해선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서 확인된 정보가 가장 유력하고 정확한 것이라고 본다”며 “표류 실험 등 나머지 것들은 자료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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