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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play=costume+play…가면처럼 위장 ‘코스프레 정치인’ 많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06호 15면

콩글리시 인문학

영화 스크림 가면.

영화 스크림 가면.

그곳에 가면 모두가 가면을 쓰고/늘 서로 가벼운 넉살을 떨면서 살가운 표정으로 웃어/감언이설 가득 찬 그 거머리 소굴/시꺼먼 입술과 머릿속 잔뜩 차 있는 썩은 욕망, 또 위선/완전히 본색을 가로막고 있던 망토 뒤의 넌/잔머리로 마음껏 잇속만 편히 쏙 파먹지

러시아 작곡가 하차투리안의 왈츠 가면무도회의 노랫말 일부다. 원작은 러시아 문호 레르몬포트의 희곡 ‘가면무도회’로 당시 러시아 귀족사회의 허위와 부패를 고발하고 있다. 몇 년 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갔을 때가 마침 2월 초였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화려한 가면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수천 명의 사람이 가면을 쓰고 천사의 복장, 귀족의 복장, 무도회의 복장으로 춤추고 행진한다. 가면축제 기간에는 남녀의 구별 없고 계급의 차이와 빈부의 격차도 사라진다. 원래 가면이나 탈은 서민의 것이었다. 귀족을 풍자하기 위해서 신분을 감추고 지배층을 비판하고, 때로는 귀족의 흉내를 내면서 축제를 즐겼다. 특히 베네치아의 가면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애인을 만나러 갈 때, 도박장에 갈 때, 정부(情婦)를 만나러 갈 때 애용되었다. 이렇게 가면의 본질은 위장이고 허위이고 속임수다.

이와 비슷한 말로 코스프레가 있다. 위장의 뜻은 같지만, 가면은 ‘마스크’에 초점을 두고 코스프레는 ‘옷’에 방점을 둔다. 게임이나 영화, 비디오, 만화, TV의 인물을 모방하여 같은 복장에다 언행을 흉내 내는 놀이나 행위가 코스프레다. 의상 costume과 놀이 play, 곧 costume play를 줄여 만든 콩글리시다. costume drama처럼 시대극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코스프레가 정치적 용어로 쓰인다. 언젠가 홍준표 의원은 “서민 코스프레 하는 패션 좌파들이 한국 정치권에 참 많다. 밤에는 강남 룸살롱을 전전하고 낮에는 서민인 척한다”고 말했다. 조국의 아내 정경심 교수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구속된 유일한 이유가 검찰개혁, 공수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위장하는 경우 피해자 코스프레다. 한동훈 검사장을 압수 수색하면서 주먹을 휘두른 부장검사가 되레 병원에 입원해서 링거 맞고 있는 사진을 언론에 배포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아들의 군 복무 특혜를 둘러싸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그동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국민 앞에 대놓고 27번 거짓말한 것으로 들통났다. 의혹 관련자들을 불기소처분하자 “막장 시녀 검찰”이란 비난이 빗발치고 야당은 수사가 아니라 은폐 공모, 방조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오죽하면 검찰 내부 통신망에서는 “치가 부들부들 떨린다. 검찰을 자기들의 개로 만드는 게 검찰개혁이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여당은, 근거 없는 의혹으로 정치공세를 편 야당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든 한 마리 양이 양 떼 전부를 망친다(One scabbed sheep will mar a whole flock). 영국 속담이다.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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