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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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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1980년대에만 해도 찰과상 같은 상처엔 ‘빨간 약’을 발랐다. 어르신들은 ‘아까징끼’라 불렀고, ‘옥도정기’란 이름도 통용됐다.

군대에선 두통이나 복통에도 ‘빨간 약’을 준다는 농담이 있었다. 지금에야 안 그렇겠지만 상비약이 부족했던 옛날 군대 의무실을 비꼰 얘기다. 어쨌거나 ‘빨간 약’은 만병통치약처럼 두루 쓰였다.

고려대 의과대학 바이러스병연구소 박만성 교수팀이 지난 7일 ‘포비돈 요오드’ 성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포비돈 요오드 성분을 0.45% 함유한 의약품을 배양 시험관에 넣어 항바이러스 효과를 평가한 결과, 코로나바이러스를 99.99% 감소시키는 사실을 확인했다.

상처 소독용으로 많이 쓰이는 포비돈 요오드가 코로나바이러스 퇴치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해외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사멸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만병통치약’으로 부르는 게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물론 직접 흡입하거나 섭취하는 건 금물이다.

사실 아까징끼나 옥도정기는 포비돈 요오드와 다른 성분이다. 통칭 ‘빨간 약’이지만 만병통치약 같던 약품들은 이제 쓰이지 않는다. 아까징끼와 옥도정기 모두 일본에서 온 말인데 아까징끼(赤チンキ)는 붉다(赤)는 뜻의 일본어 ‘아카’와 알코올 용액인 팅크(tincture)를 합쳐 만든 조어(造語)다.

정확한 이름은 메르브로민이지만 상품명인 머큐로크롬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반 만들어져 소독약으로 널리 쓰였으나 수은 성분이 들어있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옥도정기(沃度丁幾)는 요오드(iodine)와 팅크의 일본식 한자 말인 ‘정기’가 더해진 말이다. 피부에 흡착돼 색이 잘 빠지지 않고 포비돈 요오드보다 살균력도 떨어져 역시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아까징끼든 옥도정기든, 포비돈 요오드이든 벌써 반년 넘게 계속되는 코로나19의 ‘만병통치약’이면 얼마나 좋을까. 겪어보지 못한 ‘집콕’ 추석을 보내고 나니 어서 빨리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돼 예전 같은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