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신안 앞바다 싱싱한 바닷물로 만든 큐브형 소금

중앙일보

입력 2020.10.09 11:00

업데이트 2021.01.20 15:37

[더,오래]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10)

“여보세요. 최 사장님, 잘 지내시죠. 바빠지실 때가 됐네요.”

매년 4월 무렵이 되면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한 도초도라는 섬에서 천일염 염전을 일구는 최 사장에게 전화를 건다. 평소 광양에 있는 매실 농가에서 수확한 우메보시(소금에 절인 일본식 매실장아찌)용 완숙 매실을 주문한 뒤 우메보시를 절이는 데 필요한 만큼 소금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봄부터 여름에 걸쳐 안초비나 유즈코쇼(유자 껍질과 고추를 다져 만든 페이스트 형태의 향신료)를 만들기 위한 소금과 요리교실에서 사용할 소금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휴대전화 너머로 오랜만에 듣는 최 사장님의 기운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오늘도 아침부터 염전을 살펴보고 와서 아이들 아침밥을 챙겨주고, 다시 염전에 갔어요. 수면 시간은 세 시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1년에 몇 번 주문할 때나 소금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을 때만 전화를 하는데, 최 사장은 강한 전라남도 사투리 억양으로 늘 같은 말을 한다. 염전 일은 어중간한 생활 방식으로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염전이 슬슬 바빠질 때라 사장님한테 전화하기가 너무 죄송했는데, 소금은 필요해서요. 이번에는 요리교실 수강생들 몫까지 포함해서 완숙 매실 180㎏ 어치를 주문했어요. 그래서 소금은 40㎏ 정도 부탁드립니다. 늘 보내주시던 매실용 소금으로요.”

그 다음 날이면 소금 40㎏이 우체국 택배로 도착한다. 40㎏은 택배 기사라도 무겁기 때문에 몇 번이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김장은 안 하지만 안초비와 우메보시를 담그는 일은 수강생들과 워크숍 형식으로 연례행사처럼 하고 있다. 5월에는 기장시장에서 수십 ㎏이나 되는 안초비용 작은 정어리가, 6월에는 광양에서 완숙 매실이 배달된다. 택배 기사가 이 집은 대체 무슨 장사를 하는지 의아해하니 나로서는 고개를 숙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다이아몬드 소금. [사진 히데코]

다이아몬드 소금. [사진 히데코]

요리교실에서 도초도의 천일염을 사용한 지 벌써 8년째다. 나보다 먼저 금수향이 최 사장 염전을 취재해 잡지에 게재한 뒤 거래를 시작했고, 곧이어 나에게 ‘목포 남단에 도초도라는 섬이 있는데, 소금 마니아 최 사장 염전의 소금이 달고 맛있다’며 추천해주었다. 수향에게 소개받고 몇 년간 가루소금을 주문해왔다.

가족이 먹을 음식을 차릴 때나 요리교실에서는 프랑스와 영국 소금, 히말라야 암염, 파타고니아 천일염, 일본의 다테가마 소금(외국에서 수입한 천일염을 물에 녹여 진한 소금물을 만든 뒤, 팔팔 끓여 결정을 만드는 소금) 등 세계 각국의 소금을 요리에 맞게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수입하는 소금은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고 주문이 번거로워 주문한 다음 날이면 도착하는 최 사장 소금을 애용하게 되었다. 또 안초비와 우메보시를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서 요리교실 수강생들과도 공유하려고 용도별로 생산연도와 알갱이 크기가 다른 소금을 주문하게 되었다. 이윽고 나도 수향처럼 도초도 염전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끓어올랐다. “최 사장님, 7월 말에 도초도에 가보려고 하는데요. 염전 일이 바쁘셔서 저희가 가도 오히려 방해만 되겠지요?”

도초도 염전에서.

도초도 염전에서.

2017년 여름의 일이었다. 그해 상반기 수업을 모두 마치고 여름방학을 맞아 어디로 갈까 고심하던 차에 문득 도초도 염전에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 최 사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리 바빠도 선생님이 오신다고 하면 언제든 시간을 비워놔야죠.” 강한 사투리 억양에 정중한 말투를 쓰는 최 사장의 씩씩한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남편 휴가에 맞춰 스페인산 위스키와 카바를 한 병씩 챙기고, 즐겨 쓰는 베제카 올리브오일과 스페인산 파프리카파우더를 여행 가방에 넣은 뒤 염전으로 출발했다. 평소 외부 행사로 요리할 때는 내가 사용하는 소금을 꼭 가져가는데, 남편이 “염전에 가면서 소금을 가져가는 바보가 어디 있어요”라며 핀잔을 주었다. 결국 문어와 생선에 두루 잘 어울리는 올리브오일과 파프리카파우더만 가져가게 됐다.

KTX를 타고 목포까지 가 고속선으로 갈아탄 뒤 도초도까지 다시 한 시간. 예상한 것보다 가까웠다. 단순한 우연이지만, 사실 신안군에 있는 섬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금 대학교 3학년인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됐을 때, 도초도와 다리 하나로 연결된 비금도에 간 적이 있다. 당시에는 최 사장도, 도초도의 염전도 몰랐다. 다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년간 살았던 아버지의 고향 사토시마섬이 그리워지는 나는 꼭 다시 도초도에 오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기억이 났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전쟁고아였던 할아버지가 도초도로 오셨어요. 당시 염전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섬 방파제 조성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섬 주민들은 나라에서 제공하는 밀가루로 배를 채우며 방파제나 염전 공사장 일로 생계를 이어갔죠.  중학교를 졸업한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같이 본격적으로 염전 사업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섬 생활이 싫어 고향을 도망치듯 떠난 저도 결국 25년 전에 섬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염전 일에 몰두하고 있죠.”

분명 바빴을 최 사장은 그저 1박만 머물다 갈 우리를 SUV 차량에 태우고 씽씽 달리며 종일 섬을 안내해주었다. 그러면서 섬 생활과 혹독한 염전 일에 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주었다. 몇 시간 후 최 사장이 아는 어부에게 받은 문어와 도초도의 유일한 농협 마켓에서 구입한 감자를 항구 앞 숙소 부엌에서 삶았다. 잘 삶아진 문어에 올리브오일과 파프리카파우더, 염전에서 난 소금을 듬뿍 뿌려 갈리시아풍 문어 요리를 최 사장에게 대접했다. 우리 세 사람은 서울에서 가져온 위스키와 화이트와인으로 기분 좋게 취해갔다.

도초도에서 먹었던 문어.

도초도에서 먹었던 문어.

그날 밤 약속으로 생산연도와 생산 과정이 제각각인 다양한 소금을 연희동 아틀리에로 배달됐다. 최 사장은 나에게 먼저 소금을 어떤 요리에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연구해달라고 주문했다. 서울로 돌아온 지 이틀 후 한 봉지에 5㎏인 소금이 열 종류나 도착해 솔직히 당황하고 말았다. 그때 소금 연구에 집중하면 좋았겠지만, 매일같이 수업과 잡무에 시달리느라 그러지 못했다. 결국 3년간 받은 소금을 요리에 써보기만 하고 연구다운 결과는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수입산 소금이나 국내의 다른 생산자가 만든 소금도 같이 사용하면서 몇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지만, 최 사장 앞에서 연구 성과라고 당당히 보고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안초비와 우메보시를 절일 소금은 필요하고, 가루소금은 요리교실에서 늘 사용하고 있으므로 최 사장에게 연락을 해야만 하니 떳떳지 않은 기분으로 전화를 걸 수밖에 없다. “올해도 안초비의 계절이 돌아왔네요. 항상 주문하는 소금으로 부탁드려요.” 최 사장은 소금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같은 것은 묻지 않고, “매년 보내는 것보다 좋은 소금으로 보내드릴게요!”라는 말뿐이었다.

다음 날, 그 ‘좋은 소금’이 집에 도착했다. 알갱이가 5mm에서 1㎝ 정도 되는 정방형의 다이아몬드 같은 소금이었다. 연구용 소금 중에도 비슷한 게 있지만, 이번에 도착한 소금은 정말 예쁜 소금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소금을 생산하고 남은 고농도 소금물을 재사용해 생산량을 늘려나가는 방법을 취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1년에 8개월간 60회 이상 소금을 생산합니다. 하지만 그 큐브형 소금은 1년에 12개월간 5회밖에 생산하지 못해요. 한 번도 소금을 만든 적 없는 순수한 소금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바닷물에 함유된 미네랄 함유율을 최대한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다만 알갱이가 커서 믹서기로 잘게 쪼갠 다음 안초비와 완숙 매실을 절여보았다. 아직 숙성 중이라 맛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북풍이 쌩쌩 불 무렵이 되면 늘 담그던 안초비, 우메보시와는 어떻게 다른지 맛볼 생각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큐브형 소금을 만드는 염전이 보고 싶어 지난 8월 남편 차로 도초도까지 다녀왔다. 연희동 요리교실에서 인연을 맺은 멤버 몇 명과 목포항여객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하고, 지난번 먹은 갈리시아풍 문어 요리를 다 함께 먹기 위해 똑같은 재료를 챙겨 갔다. 우리는 도초도 선착장 앞 숙소 평상에서 밤이 깊을 때까지 각자 들고 온 화이트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며 최 사장 소금을 향한 열정과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최 사장님에게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소금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염전 일을 이어받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만일 저희 아이들이 염전 일을 해보겠다고 한다면 ‘그러냐. 힘들지만 재미있는 일이지’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내년 봄에는 나도 그동안 미뤄왔던 소금 연구에 관한 성과를 보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키친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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