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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펭수의 국정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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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펭수는 남극에서 태어나 인천 앞바다로 헤엄쳐 온 나이를 더이상 먹지 않는 10살된 펭귄이다. 현재 EBS 연습생 신분으로 200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자이언트 펭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펭수가 최근 언론에 오르내린 것은 이번 주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참고인으로 정식 채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피감기관 일탈 폭로 국감은 #본 기능에서 일탈한 국감 #30일 500개 기관 감사 일정은 #‘펭수 국감 쇼’를 부추길 것

펭수를 참고인으로 신청한 의원 측은 “펭수 캐릭터 저작권을 정당하게 지급하는지 수익구조 공정성을 점검하고, 캐릭터 연기자가 회사에 기여한 만큼 그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EBS가 휴식 없이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는 등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근무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신청 이유를 설명했다. 펭수의 국정감사 출석요청을 철회하라는 국민청원이 등장하였고, 의원 측은 출석의 의무가 없는 참고인으로 채택된 것이기 때문에 나오지 않으면 된다면서 참고인 신청을 철회하지 않았다. 어느 언론사는 펭수가 국감에 출석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하였다.

마치 가짜뉴스처럼 읽혀지는 초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 특별히 새롭지는 않다. 선동열 감독이나 백종원 대표 등의 유명인사가 출석한 적이 있었고, 구렁이, 낙지, 뉴트리아와 벵갈 고양이가 국감에 직접 나온 적이 있으므로 동물의 출연 또한 아주 놀라운 일도 아니다. 물론 가면 뒤의 인물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캐릭터’를 출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신박하기는 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정감사에 대해 누구나 비판의 날을 세우기는 쉽게 되었다. 국정감사가 이제는 기획된 ‘쇼’가 되었다는 것, 그 ‘쇼’는 어떻게 하면 제한된 시간에 500개가 넘는 피감기관들의 수많은 업무 영역이 경쟁적으로 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언론이 보다 관심을 가지고 다룰 것이 무엇인지를 미리 기획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언론의 관심 속에서 의원의 이름이 한 줄이라도 더, 인터뷰 영상이 한 번이라도 더 나가는 것이 보좌진 능력의 척도가 된다는 것. 카메라에 비치는 ‘그림’을 생각하면 유명인과 희귀동물이 있어야 할 것이고, 비리와 폭로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펭수를 부른 것이 카메라를 위해서였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해마다 10월이 되면 의원 보좌진들은 피감기관에 자료를 요청하고, 피감기관의 직원들은 국회법이 규정하는 바, 끝없는 자료의 산을 쌓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해당 기관 99%의 정상적인 업무보다 1%의 일탈을 찾아내고 폭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그래서 보좌진들은 기관장의 법인카드 내역을 형광펜을 칠하면서 읽어야 하고, 음주운전자 기록을 파내는데 갖은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한줄의 기사와 10초의 코멘트를 위해서 말이다. 펭수가 국감장에서 자신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임금체불을 폭로할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의 국감은 피감기관들의 일탈을 찾아내고 폭로하는 행사가 되었다. 일탈을 폭로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감사원이나 형사적 과정의 대상이 되는 일탈을 국회가 나서서 폭로하는 사이에, 더 중요한 국정 운영과 기관 운영의 큰 방향에 대한 논의를 할 시간과 인력을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국정감사가 이런 문제들을 내포하게 된 연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국정감사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제도적 설정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세계의 모든 의회들이 정부, 특히 행정부에 대한 감시(oversight)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는 삼권균형의 매우 주요한 요소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 사안에 대한 매우 상세한 청문회(hearing)나 국정조사(investigation)의 형태를 띠거나, 상시적인 감사기구를 통한 정부 기관들에 대한 통제의 두 갈래로 나타난다. 감사원이 국회의 기관으로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회에게 주어진 시간은 예산을 심의하기 이전의 단 30일, 그 주어진 시간 안에 모든 피감기관들의 모든 사안들을 감사하는 정기 청문회의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감사원이 상시적으로 해야 할 일을 3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500여개의 기관에 대해 한꺼번에, 그것도 기관장이 출석해서 질의 응답하는 오분의 미니청문회를 통해 진행되는 셈이다.

국정감사가 내포한 문제의 또다른 연원은 국회 전문성과 연구기능의 취약성이기도 하다. 우리는 국회라고 하면 300명의 의원과 2700명의 보좌진을 먼저 생각하고, 실제로 이들이 국정감사에서 동분서주하는 주역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입법이라는 것, 정부를 견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국정을 이해하고 행정을 꿰뚫고 있으며 소관기관들의 역할과 고충을, 국민의 삶과 아픔을 깊이 느껴야 하는 일이 아니었던가. 국회가 그런 역량을 기르고 이용하지 않는 한, 우리가 그런 국회를 원하지 않는 한, 펭수는 결국 증언석에 올라야 할 것이고 카메라는 바쁘게 돌아갈 것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