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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민의 직격인터뷰

“잘못 인정하는 게 리더, 도덕적으로 책임지는 능력 회복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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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87년생 초선의원이 86세대에 던지는 고언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87년의 정의가 독재에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정의는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민주화 주인공들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잡을 때, 우리 사회의 케케묵은 과제를 청산하고 우리가 맞은 과제들에 용감히 부딪혀갈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한때 변화의 동력이었던 사람들이 어느새 기득권자로 변해 변화를 가로막는 존재가 돼버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방역-집회 자유 동시 보장 논의없어 #드라이브 스루 불허는 우려스러워 #도덕적 사안을 사법 영역으로 미뤄 #패턴화·반복 되니 국민이 실망해 #추 장관, 스스로 일 키워 더 정쟁화

지난달 국회 대정부 질문에 나선 1987년생 초선 의원의 작심 발언이 파란을 일으켰다. 정부와 민주당의 운동권 출신인 86세대를 정조준한 비판 발언에 ‘용기 있는 바른 소리’ ‘희망이 보인다’는 격려 글이 쇄도했다. 주인공은 올해 33세의 정의당 장혜영 의원(비례대표). 그 역시 불공정 이슈에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청년 정치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유독 불공정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장 의원은 “도덕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을 계속 사법의 영역으로 미루고 있기 때문”이라며 “도덕적으로 책임지는 능력을 회복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게 리더의 가치인데, 모든 사람이 다 보고 있는 결점을 감추려만 한다”는 쓴소리도 했다.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 5일 그를 중앙일보의 서소문 구사옥에서 만났다.

장혜영 의원은 ’명문대 졸업해 돈 잘 버는 트랙을 달리면, 돈은 잘 버는데 제 시간의 주인공은 될 수 없겠다 싶었다“고 자퇴 이유를 설명했다. 장진영 기자

장혜영 의원은 ’명문대 졸업해 돈 잘 버는 트랙을 달리면, 돈은 잘 버는데 제 시간의 주인공은 될 수 없겠다 싶었다“고 자퇴 이유를 설명했다. 장진영 기자

대정부 질문 발언이 화제다.
“국회의원 되고 첫 대정부 질문이었다. 이틀 동안 지켜보면서 좀 실망했다. 민생과 연관되는 중요한 정책들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여당은 너무 지나치게 (정부를) 감싸는 발언들만 하고, 그런 와중에 자리는 많이 비어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직격탄을 받은 사람들이 이 꼴을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싶어 급히 원고를 수정하게 됐다.”
86세대를 ‘기득권이 돼 변화를 가로막는 세력’이라고 비판했는데 어떤 모습에 실망했나.
“민주당이 불평등 문제를 말로만 할 뿐, 그때(80년대 민주화운동) 싸웠던 것처럼 뜨겁게 할 수 있는데 동참하지 않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이제 사회 고위층이 된 일부 86세대가 과연 우리가 바랐던 모습인가? 도덕성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위법은 아니다’ ‘진짜 더 나쁜 놈들도 있다’ 하면서 우리가 바라는 도덕성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당당하게 자기 변호를 하는 걸 보고 이질감을 느꼈다. 그런 모습이 국민이 그들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같은 청년들의 정서를 잘 알 것 같다.
“또래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굉장히 체념하고 있고 분노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2017년에 매우 큰 사회 변혁에 대한 분위기가 있었고 저 또한 고무됐었다. 그러나 과연 일상에서의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이 됐나 하면 그렇지 않다. 살기 좋아지지도 않았고, 여전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무슨 뜻인가.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친구와 대화하면서 아차 싶었던 게 있다. 우리가 코로나 대응에서 완전 거꾸로 했던 게 아닌가? 복지관이나 학교 등 공적인 시설이 제일 먼저 닫았지 않나. 사실은 반대가 돼야 했었는데. 그런 반성을 하게 되는데 (정부는) K방역에 대한 높은 평가만 내세우는 것 같다.”
이 정부 들어 유독 불공정 논란이 잦다. 청년들은 왜 공정 이슈에 민감할까.
“문재인 정부가 먼저 들고나온 키워드가 공정이다. 그런 만큼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시행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기대와 다르게 흘러간다. 공정 뒤엔 경쟁이 숨어있다고 보고, 각자도생에 익숙해진 청년들은 복지제도나 정책이 어떤 정의에 기여하는 것인가가 이해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 등 상징적 인물들이 보여준 모습이나, 그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정부가 제시했던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니 실망한다.”
인천국제공항(인국공) 사태는 결국 사장 해임으로 이어졌다. 정부의 잘못은 뭘까.
“인국공 문제를 공정 이슈로 보는 것은 담론 바꿔치기에 가깝다. 진짜 근원적 해답은 좋은 일자리가 무엇이냐,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애당초 정규직으로 해야 하는 일을 비정규직으로 쓰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문 대통령이 37번이나 ‘공정’을 말했지만 공허하다고 반박했는데.
"공정 매트릭스에 빠져있다. 말이란 게 반복하면 할수록 의미가 또렷해져야 하는데 (대통령의 말이) 추상적이라는 느낌이다. 정부가 청년들을 생각하는 게 구체화하지 못한 채 반복을 통해서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려 하는 것 같다. 공정이 중요하니까 무엇을 하겠다고 가야 하는데 구체적인 게 없다.”
불공정 논란의 정점은 조국 사태였다. 추미애 사태에 이르기까지 집권당의 대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조국 사태 때는 정치를 시작하기 전이었었지만, 저는 당연히 데스노트로 날려야 하는 사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의당의 대처는 저의 생각과 달라서 실망스러웠다. 정의당이라면 사회의 모순을 약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얘기했어야 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직접 전화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여당 대표로 있으면서 사적인 자녀 문제로 군에 연락했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었다. 그런데 자꾸 위법은 아니라고 하니, 총리 말대로 민망한 일이다.”
야당은 장관 사퇴를 요구한다.
"추 장관이 일을 키운 측면이 있다. 초반에 소상하게 밝히고 소명했으면 검찰까지 가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었다고 생각한다. 초기 대응이 굉장히 부적절했고, 그래서 훨씬 더 정쟁화된 측면이 있다.”
여당이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도 불공정 블랙홀에 갇혀 중요한 국정 과제와 개혁을 추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도덕적으로 책임지는 능력을 회복해야 할 것 같다. 도덕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을 계속 사법의 영역으로 미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과도하고, 패턴화되어서 반복되는 것 같다. 사람이 늘 잘할 수는 없지 않나. 자기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게 리더의 가치인데 모든 사람이 다 보고 있는 결점을 감추려만 한다.”
왜 민주당 내에선 그런 지적이나 자성이 없을까.
"(민주당이) 굉장히 위계 질서화되고 있다. 비판하는 사람은 내친다. 그런 본보기를 보고 누가 목소리를 내겠나.”  
개천절의 광화문 집회를 차벽으로 원천 봉쇄해 기본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한글날 집회도 불허하겠다고 한다.
"방역을 지키면서 동시에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충분히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 소규모 집회같이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원천 봉쇄하는 태도가 우려스럽다.”
국민의힘 박결 청년위원장이 부적절한 홍보 문구를 쓴 게 논란이 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유독 청년 정치인들의 실수나 잘못이 크게 부각된다는 지적도 있다.
"그 벽을 누가 대신 깨주지는 않을 것 같다. 청년 정치인 당사자들이 뚫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혁신위원장 맡으면서 추진해온 청년 정의당 만드는 프로젝트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조국 사태와 지난 총선 국면에서 정의당에 실망한 사람이 많다. ‘정의당에 정의가 없다’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너무 아프게 말씀하면 속상하다. (웃음) 정의당의 정체성은 가장 불평등한 약자의 눈에서 정치하는 정당이다. 그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저도 당을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다. 저는 정의당이 지난 총선 때 인삼 농사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인삼 농사는 한 번 짓고 나면 지력을 어마어마하게 빨아들여서 다음 해엔 농사를 못 짓는다. 지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객토도 하고 거름도 주어야 한다. 청년을 비롯해 더 새로운 사람들이 정의당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과감한 혁신을 해야 한다. 이번에 새로 구성되는 지도부와 함께 정의당의 앞날을 위해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장혜영 의원

연세대 재학 중이던 2011년 교내에 이별대자보를 붙이고 중퇴, ‘SKY 자퇴생 사건’으로 명성을 얻었다. 장애인 시설에 보내진 여동생을 집으로 데려와 돌보는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을 만든 영화감독이자 인권운동가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에 영입,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됐다.

이정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