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그렉시트 조장한 포퓰리즘, 상대편 억압하는 대중독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

2015년 6월 그리스 북부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시위 도중 치프라스 지지자들이 유럽연합 깃발을 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2015년 6월 그리스 북부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시위 도중 치프라스 지지자들이 유럽연합 깃발을 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인물·개념

알렉시스 치프라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알렉시스 치프라스(1974~)
2015~2019년 그리스 총리를 맡았다.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당수로 ‘그렉시트’를 주장하며 집권했다. 자극적 언사로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로 불렸다. 하지만 총리가 된 후엔 ‘그렉시트’를 강하게 피력하지 않았고, 채권국들과의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잃었다.

그리스·미국 등 민주주의 위기 #포퓰리즘 성행, 자유주의 퇴보 #비판에 재갈, 한국도 예외 아냐 #“대통령에 쥐·닭 비유, 지금은?”

야스차 뭉크

야스차 뭉크

야스차 뭉크(1982~)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로 민주주의 위기 연구로 학계에서 주목받는 신진 정치학자다. 하버드대에서 수학했으며 『정의는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이 지도교수였다. 프리랜서 기자로 뉴욕타임스 등에 글을 썼고 뉴아메리카재단의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

알렉시스 드 토크빌

다수의 폭정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사진)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말한 개념.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논리인 다수결이 소수를 억압하는 도구로 쓰일 때 폭정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로 결사·표현의 자유 보장, 적극적 시민참여와 지방자치 등을 제시했다.

“유로존을 파괴시킬지도 모르는 급진적인 ‘해리 포터’.”

2015년 1월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그리스 최연소(40세) 총리로 취임한 시리자(SYRIZA·급진좌파연합)의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를 비꼰 말입니다. 포퓰리즘의 대명사인 그는 잘 생긴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2009년 시리자의 당수가 됐고, 시리자는 2012년 원내 2당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야스차 뭉크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심각한 경제난과 긴축 정책으로 절망에 빠진 그리스인들이 치프라스의 포퓰리즘에 매료됐다”고 말합니다(『위험한 민주주의』).

치프라스는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유로존에 있어 봐야 착취만 당한다는 논리였죠. 그러면서 “채권자는 약탈자”라며 공공연하게 독일·프랑스 등 채권국을 비판했습니다. ‘그리스의 주권’ ‘민중의 의지’ 같은 말로 국민을 자극하면서, 성난 민심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했죠.

취임 직후 치프라스는 부채 탕감을 요구하며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과 재협상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디폴트 위기에 놓인 그리스에 상환 기간을 연장하는 구제안을 제시했지만, 치프라스는 더 큰 혜택을 원했습니다. 채권국들이 난색을 표하자 그리스는 정말 국가부도와 함께 유로존을 떠날 위기에 놓였고요.

이때 치프라스가 내놓은 카드는 국민투표였습니다. 구제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긴 것이었죠. 그러면서 “(구제안은) 그리스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며 국민을 선동했습니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로 회부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분노에 찬 국민들은 61%의 압도적 반대로 구제안을 부결시켰습니다. 투표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치프라스는 아테네의 중심지인 신타그마 광장에서 “48시간 안에 새로운 협상안을 타결시키겠다”며 확신에 찬 어조로 연설했죠. 하지만 국민투표를 뒷배 삼아 EU 집행부를 압박하려던 치프라스의 전략은 먹히지 않았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자신의 빚은 스스로 갚아야 한다”며 무관용 원칙론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당황한 치프라스는 급하게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메르켈은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며칠 후 협상 테이블에는 원안보다 훨씬 가혹한 구제안이 올라왔고, 치프라스는 승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뭉크 교수는 “국민투표로 구제안을 거부한 지 일주일 만에 그리스는 더욱 불리한 협상안에 사인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국민투표로 구제 금융안 부결

‘메르켈에 대한 치프라스의 올인’ 그리스 일간지 ‘Kathimerini’의 만평(2015년 1월 15일).

‘메르켈에 대한 치프라스의 올인’ 그리스 일간지 ‘Kathimerini’의 만평(2015년 1월 15일).

그 결과 그리스는 채권국이 원하는 대로 연금·세제 등 개혁 법안을 제정하고 국유 자산 일부를 해외로 넘겼습니다. 당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재정 주권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죠. 그리스인들도 한동안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OXI(예)’, ‘NAI(아니오)’로 갈려 극심한 내분에 시달렸습니다.

뭉크는 치프라스처럼 의회와 전문가를 무시하고 국민과 직거래하는 포퓰리즘을 현대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지적합니다. 위기의 본질에는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가 놓여있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성숙한 시민이 협치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지면서 다수의 폭정 상태로 빠지고 있다”는 게 뭉크의 진단입니다.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은 원래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한 말입니다. “‘민주’를 다수에 의한 통치로만 인식하고 소수를 억압하는 행태”를 뜻하죠. 인민(people)의 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핵심 의사결정 도구로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 소수 의견은 묵살될 가능성이 생기죠.

프랑스혁명 직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출현한 것처럼 급진적 평등과 다수결 만능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침탈하고 소수를 억압하기 쉽습니다. 이를 교정하는 것이 자유주의입니다. 오늘날 선진국가의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수의 뜻(민주주의)으로부터 소수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자유주의)가 꼭 필요한 것이죠. 만일 자유주의가 없다면 그것은 인민의 독재를 추구하는 전체주의와 다를 게 없습니다.

지난주 개천절 시위에서 정부는 다수의 안전을 내세워 집회·표현의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광화문에 300여대의 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서울 진입로 90곳에 검문소를 설치했죠. 정작 시위대는 드라이브 스루 형태로 퍼레이드를 벌여 전염 우려가 낮았던 반면, 서울랜드 등 놀이동산에는 별다른 조치 없이 수많은 인파가 몰려 감염 위험이 컸습니다.

지난 2월 ‘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를 고발한 사건이나 7월 부동산 입법 강행도 ‘다수의 폭정’이 나타난 대표적 사례죠. 18개 상임위원장 독식에 대해서도 여당은 “절대 과반 다수 의석을 저희에게 줬기 때문”(정청래 의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 헌법 어디에도 ‘승자독식’이란 조항은 없는데 말이죠.

심지어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공동대표는 “총선 결과는 윤석열씨에게 빨리 거취를 정하라는 국민의 목소리였다”고 했습니다. 여당이 다수표를 얻었으니 정권에 껄끄러운 검찰총장은 물러나라는 이야기죠.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도 다수결의 원칙도 아닌 그저 “삼권분립을 무너뜨려 나라를 맘대로 주무르겠다는 욕망”(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입니다.

박희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트라고 여겨왔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분리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최근 ‘조국흑서’ 저자들처럼 여권에 등 돌리는 지식인이 많아지는 것은 집권세력의 반자유주의적 행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민중의 뜻이라며 반대파를 적으로 몰고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것은 전체주의와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국도 민주주의 위기 징후

실제로 뭉크는 민주주의를 택한 문명사회가 언제든 히틀러와 같은 폭정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우려되는 것은 그가 말한 위기의 징후가 우리 사회에 똑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①위기의 원흉을 해외로 돌리고(토착왜구) ②국민의 뜻을 위해 싸운다며(촛불정신) 방해되는 것은 없애려 하고(적폐청산) ③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민중의 통치를 부르짖습니다(검찰의 민주적 통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도 뭉크의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전통의 민주주의도 선출된 독재자의 등장으로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치프라스와 같은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로 오르반 빅토르(헝가리 총리)와 라파엘 코레아(전 에콰도르 대통령)를 예로 듭니다.

빅토르는 취임 후 서서히 검찰과 감사원, 헌법재판소 등에 측근을 기용해 “심판을 매수하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습니다. 코레아는 자신을 독재자로 칭한 신문 ‘엘 우니베르소’에 소송을 걸어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렸죠. 레비츠키와 대니얼은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요. 민주주의의 바른 짝인 자유주의를 되살리는 것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최고 권력자가 행사하는 힘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적)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수의 횡포는 온 사회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큰 해악”이며 “종교적 믿음이 강한 곳일수록 관용의 폭이 좁다”고 설명했죠.

결국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는 것이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는 본질적인 방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고발한 것은 자유주의의 토양을 더욱 척박하게 만듭니다.

“대통령을 쥐·닭에 비유했지만, 그런 걸 금지하면 건강한 비판이나 풍자가 불가능하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었다”는 금태섭 전 의원의 말처럼 과거의 민주당은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집권세력이 자유주의 정신을 되새겨보길 기원합니다.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