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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퇴각인줄 알았는데 야근각” 웃픈 현실 노래하는 아프리코레

중앙일보

입력

데뷔 앨범 ‘밥 먹어’를 발표한 아프리코레 일렉트로 밴드 트레봉봉. [사진 칠리뮤직코리아]

데뷔 앨범 ‘밥 먹어’를 발표한 아프리코레 일렉트로 밴드 트레봉봉. [사진 칠리뮤직코리아]

“밥먹어 잘먹어 밥먹어 같이먹어”
지난 8월 말 발매된 아프리코레 일렉트로 밴드 트레봉봉의 데뷔 앨범 ‘밥 먹어’의 동명 수록곡 노랫말이다. 흥겨운 아프리카 리듬부터 구슬픈 한국 뽕짝, 신나는 일렉트로닉에 이르기까지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의외로 귀에 쏙쏙 꽂힌다. “헤이 칼퇴각이다” “헤이 먹방각이다”를 외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만 현실은 “이시간에 업무지시 인성갑이네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사 덕에 “야근각”이기 때문. 덕분에 식사를 거르고 잔업을 할 때면 주문처럼 우물거리게 된다.

데뷔EP ‘밥 먹어’ 발매한 밴드 트레봉봉 #흥겨운 아프리칸 뽕짝에 일렉트로 더해 #실제 경험담서 출발한 ‘알바송’ 등 주목 #“언어보다 사운드 중요…다양한 실험”

최근 서울 목동 칠리뮤직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이들은 “일상을 그대로 담은 6곡이 수록된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앨범 발매 직전까지 닭볶음탕 집에서 아르바이트했던 보컬 김도연이 “시간아 빨리 가라 한 시간만 버티자”고 되뇌던 말이 타이틀곡 ‘알바송’의 출발점이 되는 식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친절함을 베푸는 내 이름은 알바생/ 내가 진짜 누군지는 궁금하지 않아/ 그게 내 알바야”라는 노랫말에는 2030 세대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누구나 한 번쯤, 아니 사실 매일같이 하는 생각이어서 그런지 직장인들도 많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항상 친절 베푸는 알바생”의 속마음은

트레봉봉 ‘밥 먹어’ 앨범 재킷. [사진 칠리뮤직코리아]

트레봉봉 ‘밥 먹어’ 앨범 재킷. [사진 칠리뮤직코리아]

노래가 선사하는 풋풋한 느낌과는 달리 이들은 모두 중고신인이다. 2000년 3호선 버터플라이로 데뷔한 기타리스트 겸 시인 성기완이 2018년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출신 뮤지션 아미두 디아바테와 꾸린 AASSA(아프로 아시안 싸운드 액트)가 트레봉봉의 전신이다. 국악 정가를 전공한 보컬 한아름이 개인 사정으로 팀을 떠나면서 전인원밴드ㆍ서울전자음악단 등에서 객원 보컬로 활동하던 김도연이 합류했고, 세션으로 함께 해온 드러머 김하늘과 키보디스트 최윤희가 정식 멤버로 들어오면서 5인조로 재정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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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과 함께 사우스클럽으로 활동했던 최윤희는 “인디밴드는 처음이라 걱정했는데 훨씬 자유롭다”며 “팔릴지 안팔릴지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미미시스터즈와 예리밴드 등에서 활동했던 김하늘은 “경험이 우리 팀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트레봉봉’은 프랑스어로 매우라는 뜻을 가진 ‘Tres’와 사탕을 뜻하는 ‘bon’을 합해서 만든 말로 AASSA 데뷔앨범명이기도 하다. 김하늘은 “‘bon’에는 좋다는 뜻도 있어서 팀명으로 택하게 됐다”며 “여성 멤버 비중이 높아지면서 분위기도 좀 더 모던하게 바뀐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AASSA, 전인권밴드, 미미시스터즈, 사우스클럽 등 다양한 팀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이 모였다. [사진 칠리뮤직코리아]

AASSA, 전인권밴드, 미미시스터즈, 사우스클럽 등 다양한 팀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이 모였다. [사진 칠리뮤직코리아]

일렉트로닉 요소가 짙어진 것도 AASSA와 다른 점이다. 김하늘은 “아프리카와 한국 음악이 만났다고 하면 전통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제 세계 어디서나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시대가 됐다”며 “언어와 장르가 달라도 얼마든지 현대적으로 함께 풀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도연은 “처음 AASSA 공연을 봤을 때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악기 소리에 매료됐다. 아미두가 직접 나무로 만든 어쿠스틱한 악기 소리가 차가운 전자음과도 잘 어우러졌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김도연의 성량이 굉장히 좋아서 그 큰 악기 소리를 뚫고 나온다”고 칭찬했다.

“한국서 음악 배우려면 비싸…안타까워”

2012년 경기 포천의 아프리카예술박물관 공연단으로 선발돼 한국에 오게 된 아미두는 “멤버들 덕분에 한국에 한국어가 많이 늘었다”고 했다. 2014년 임금체불과 인종차별 문제가 불거지면서 단원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한국에 남아 음악을 계속하는 길을 택했다. 음악가 계급인 ‘그리오(griot)’ 출신으로 13대째 음악가로 살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부천 복지관에서 동생과 함께 아프리카 문화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나 한국 오기 전에 한국 몰랐어요. 한국 사람들도 아프리카 몰라요. 그래서 가르쳐줘야 돼요. 서로 알게 되면 눈도 커지고 귀도 커져요. 한국은 음악 배우는 데 돈 많이 들어요. 아프리카는 공짜인데. 그래서 가난한 사람, 부자인 사람, 아이들도 다 보여요. 안타까워요.”

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성기완과 막내 최윤희의 나이 차는 29살에 달하지만 음악 작업은 민주적으로 이뤄진다. 성기완은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올 밴드가 아니다. 그러다 꼰대 소리나 듣는다”며 웃었다. “서로 한 마디씩 던지면 그게 쌓여서 형태를 갖춰가죠. 처음부터 주제 잡고 시작하면 재미도 없고 딱딱해지잖아요. 젊은 친구들이라 그런지 재밌는 아이디어도 많고. 요새는 말을 펼쳐서 늘어놓기보다는 하나로 모으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줄임말도 많이 쓰고 반복적인 후크송도 많잖아요.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1위를 하는 것처럼 언어의 경계도 사라지고 의미보다는 사운드 자체가 중요해졌죠. 한국어ㆍ영어ㆍ프랑스어ㆍ아프리카어가 뒤섞인 팀이니 앞으로 더 흥미로운 실험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됩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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