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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생물 95% 죽었는데, 원인은 오리무중…러시아 해역오염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 캄차카주 일대 해안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해양생물 집단폐사가 일어나고 있다. 바닷속에 퍼진 맹독성 물질이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그 출처가 확인되지 않아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기에 지역 당국이 사고 조사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일 러시아 극동 지역 캄차카주 인근 해안으로 밀려온 해양 생물 사체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일 러시아 극동 지역 캄차카주 인근 해안으로 밀려온 해양 생물 사체들. [로이터=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현지 과학자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는 블라디미르 솔로도프 주지사에게 “할락티르스키 해역 수중 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해양생물 95%가 폐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고했다.

조사위원회는 인근 해역 수심 10~15m까지 내려가 탐사한 결과 대형 물고기와 새우, 게 등을 제외한 저서생물(benthos) 대부분이 폐사했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9월 초부터 해양생물의 사체가 대규모로 떠올라 수질 오염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해 상황이 수치로 확인된 건 처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근 해역에서 파도타기를 했던 서퍼 20명도 피해를 호소했다. 이들은 망막에 화상을 입거나 식중독, 두통, 인후통 증상을 보였다. 수중 탐사에 투입된 과학자들도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캄차카주 할락티르스키 해변의 모습. 수면 위에 거품이 가득하다. [AFP =연합뉴스]

지난 5일 캄차카주 할락티르스키 해변의 모습. 수면 위에 거품이 가득하다. [AFP =연합뉴스]

과학자들은 이번 조사가 캄차카주 해역 일부분만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지역을 확대하면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할락티르스키 해역 오염이 마을 주민들의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5일 세계자연기금(WWF) 러시아 지부는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유독성 오염물질을 지목했다. 해양생물들이 죽어 물에 떠오른 것으로 보아 바닷물에 녹은 오염 물질이 대규모 수질 오염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러시아 지부도 지난 3일 해양동물 사체로 뒤덮인 해변을 찍어 올리면서 맹독성 물질 누출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현지 자연보호 당국의 조사 결과 이 지역의 페놀과 석유제품 농도는 각각 기준치의 2.5배, 3.6배에 달했다.

9월 27일 그린피스가 찍은 캄차카 반도 위성 사진. 해안선 일대에서 유독 화학물질로 추정되는 노란색 띠가 관찰됐다. [AFP=연합뉴스]

9월 27일 그린피스가 찍은 캄차카 반도 위성 사진. 해안선 일대에서 유독 화학물질로 추정되는 노란색 띠가 관찰됐다. [AFP=연합뉴스]

문제는 독성 물질이 언제, 어디서 흘러들어왔냐는 점이다. 지역 주민들과 환경 단체들은 해역 인근에 있는 러시아 군사기지를 의심하고 있다. 최근 캄차카 반도 일대에서 진행한 러시아군 훈련 중 오염 물질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국방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드미트리 코빌킨 러시아 천연자원환경부 장관도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오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사건 초기 지역 당국이 “바닷물에는 문제가 없다”며 조사를 거부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정부가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타스 통신 등 현지 언론은 러시아 재난 당국이 인근 해역을 지나는 유조선에서 페놀 등 화학물질이 바다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빌킨 장관은 이번 수질오염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추가 조사를 진행될 것이라면서도 오염 물질의 출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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