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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블랙홀에 맞선 지방 초광역경제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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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내셔널 부팀장

최경호 내셔널 부팀장

코로나19와 ‘방역 전쟁’에 한창인 자치단체마다 군불을 지피는 프로젝트가 있다. 17개로 나눠진 광역단체들을 한데 묶는 시·도간 ‘행정구역 통합’ 논의다. 이른바 ‘수도권 블랙홀’에 맞서자며 시작된 공론화는 전국 곳곳을 달구고 있다.

통합의 불씨를 가장 먼저 당긴 곳은 대구·경북이다. 대구 8개 구·군과 경북 23개 시·군을 합쳐 인구 510만 명의 특별자치도를 만드는 게 골자다. 이르면 올해 말 주민투표를 거쳐 2022년 7월쯤엔 통합을 마무리한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여기엔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가 상당 부분 의견을 같이하고 있어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광주광역시는 최근 전남도와의 행정통합을 제안하며 대열에 가세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지난달 10일 통합론을 꺼내 든 게 시작이다. 현재로선 광주시의 구애에 전남도가 어느 정도 화답해주냐에 성패가 달린 모양새다. “통합 찬성” 입장이 강한 광주와는 달리 전남 곳곳에선 “너무도 갑작스런 논의”라는 말들이 나온다. 이 시장은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 5일에도 “김영록 전남지사의 연락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행정통합 논의가 한창인 대구·경북의 코로나19 극복을 응원하는 대형 현수막. [뉴스1]

행정통합 논의가 한창인 대구·경북의 코로나19 극복을 응원하는 대형 현수막. [뉴스1]

부산·울산·경남은 인구 800만 명의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을 하고 있다. 부울경을 묶어 수도권에 대칭되는 한국경제의 축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대전·세종·충남 등 충청권도 대체로 통합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권역별 통합 시도는 지방 경쟁력이 날로 떨어져 간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미 상당수 시·군에선 경제적 낙후를 넘어 ‘인구소멸’ 단계까지 봉착했다. 7일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46%(105곳)가 인구소멸 위험지역이다. 전국 기초단체 2곳 중 1곳은 향후 인구가 줄어 지자체가 사라질 상황에 몰린 셈이다.

도시권 지자체들도 이런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모양새다. 재화와 인구를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현상이 날로 뚜렷해져서다. 행정통합은 이런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초(超)광역경제권을 통해 좁히겠다는 고육지책 중 하나다.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거대한 광역경제권을 지탱할 재정이나 행정 권한 없이 인구만 늘리는 통합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도시권에 예산이나 복지 수요가 쏠리는 후유증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일각에선 “통합 후 낙후성이 큰 도(道) 단위 지자체는 되레 쇠퇴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행정통합은 전 세계적인 추세지만, 상생과 협력 의지가 바닥에 깔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좋은 사업도 서로의 신뢰부터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조급한 통합 시도는 자칫 장밋빛 동행이 아닌, 영원한 결별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최경호 내셔널 부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