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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던져라” 강을준 조언에 날개 단 이대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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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고양 오리온 강을준(왼쪽) 감독과 가드 이대성이 고양체육관 앞에서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올 시즌 우승에 도전한다. 김성룡 기자

고양 오리온 강을준(왼쪽) 감독과 가드 이대성이 고양체육관 앞에서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올 시즌 우승에 도전한다. 김성룡 기자

“대성아. 송도 앞바다에 갑옷은 던져 버렸니? 비늘이 남은 것 같은데.”(강을준 감독) “아직은 완전히 벗어 던지지는 못한 것 같아요.”(이대성)

2020~21시즌 프로농구 9일 개막 #갑옷 입은듯 무거운 몸 가볍게 해 #꼴찌 팀서 우승 후보 변신 오리온 #이, 영웅보다 동료들 도우미 자청

6일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 강을준(55) 감독과 가드 이대성(30)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2020~21시즌이 9일 개막한다. 전초전이던 지난달 KBL(한국프로농구연맹)컵 대회에서 오리온이 깜짝 우승했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 리그 꼴찌였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강 감독이 우승을 연출했고, 주연은 새로 가세한 이대성이었다. 그는 평균 17점·6어시스트로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강 감독이 ‘갑옷론’에 관해 설명했다. 오리온은 5월 자유계약(FA) 시장에서 부산 KT와 이대성 영입전을 펼쳤다. 강 감독은 집 앞 중국집에서 이대성을 만나 농구계 선배로서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TV 중계를 보니 유니폼이 아니라 갑옷을 입고 농구하는 것 같았다. 표정이 어둡고 몸이 무겁더라. 갑옷을 송도 앞바다에 벗어 던져라. 또 하나. 어느 팀에 가도 좋은데, 돈이 아니라 농구에 미친 선수가 돼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바란다.”

이대성의 신혼집이 송도다. 그다음 날 이대성은 오리온 행을 결심했다. 강 감독은 “대성이가 지난 1년간 상처를 받아 선배로서 도와주고 싶었다. ‘눈치 보지 말고 신나게 농구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대성은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뛰던 2018~19시즌 챔피언결정전 MVP였다. 지난해 11월 전주 KCC로 옮겼지만, 부상 여파 등으로 부진했다. 그랬던 이대성이 이번 컵대회에서 갑옷을 훌훌 벗고 훨훨 날았다. 이대성은 “다시 이렇게 웃으며 즐겁게 농구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난 타이틀만 감독이지 애들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강 감독은 사진 촬영 때도 이대성과 스스럼없이 하이파이브와 어깨동무를 했다. 이대성은 강 감독을 “도인”이라고 표현했다. 이대성은 “오리온 입단 초기 재활하느라 코트 밖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한 선수가 어이없이 공을 뺏겼다. ‘이건 혼나겠다’ 싶었는데, 감독님이 손뼉을 쳐줘 놀랐다. 또 아내가 해줄 법한 위로를 감독님이 해준다. 겪어 보니 도인 같다”고 했다. 옆에 있던 강 감독이 받아쳤다.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라고.

고양 오리온 강을준(왼쪽) 감독과 가드 이대성이 고양체육관 앞에서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올 시즌 우승에 도전한다. 김성룡 기자

고양 오리온 강을준(왼쪽) 감독과 가드 이대성이 고양체육관 앞에서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올 시즌 우승에 도전한다. 김성룡 기자

강 감독은 LG 사령탑 시절, 작전타임 때 “성리(승리)했을 때 영웅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승리”가 “성리”로 들렸다. 그 후 ‘성리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니가 갱기(경기)를 망치고 있어”, “완빵(한방) 노리지 말라니깐” 등 ‘어록제조기’로도 불린다. 6월 팀 회식 때 강 감독은 선수들 앞에서 어록을 재연했다. 강 감독은 “회식인데 절집처럼 조용하더라. ‘작전타임이 짧아 맥만 짚은 것’이라고 말한 뒤, 직접 들려줬더니 다들 배꼽 빠지게 웃었다”고 전했다.

KBL은 경기 중 감독과 선수에게 마이크를 채워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이대성이 “감독님이 마이크를 차면 팬들이 좋아할 텐데”라고 운을 떼자, 강 감독이 “지난 시즌 순위대로 하면 나도 차겠다. 팬들이 원하면 타임아웃 때 찰 수도 있고”라고 맞받았다.

강 감독은 그간 이대성과 동반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 이유를 “우리 둘이 손잡고 새롭게 들어왔고, 사실 내게는 기존 선수들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성아, 너 기분 안 나쁘지. 컵대회 우승은 잊고 원팀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오리온은 컵대회에서 평균 96.5점의 화끈한 경기를 펼쳤다. 이대성은 “5명 모두 득점하는 ‘토털 바스켓’이다. 백업멤버가 아킬레스건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믿기지 않을 만큼 능력 있는 동료가 많다. 난 동료들 플레이를 살려주는 게 목표다. 우리 팀에선 누구나 승리를 이끌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양=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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